'한국인의 성보' 라는 책을 보니 당태종때 8학사의 한사람인 홍천하가 고구려 영류왕의 요청에 의해 고구려로 들어왔으며, 통일후에 신라에서 당성백에 봉해진것이 시초라고 합니다. 그것이 고려때 개국공신인 홍은열을 시조로 하는 당홍계와 고려고조때 금오위 별장으ㄹ 지낸 홍선홍을 시조로 하는 토홍계로 나누어 진다고 하네요. 그리고 자기 성씨를 남에게 말할때는 "남양 홍가 입니다' 라고 말해야 합니다.
정말 우리 조상님들은 참 쓸모 없는 걸 물려주셨다는 생각이듬. 무슨 용의 기운이나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무공이나 재능이나 그런게 아니고 갈라진 새끼 발가락 발톱이라니 대체 이걸 어따 쓰라는거야;;; 언젠가 갈라진 새끼 발가락 발톱을 만나는 사람을 만나면 서로 발톱을 보여주면서 '후훗, 그대와 나는 동족이었군요.'하면서 싱긋 인사해주는 종친회 목적 진화인가
박혁거세가 그런 사람 인데, 박혁거세는 스키타이 족일 가능성이 많죠. 스키타이 족은 흉노의 두만선우 에게 격파 당하여 둘로 나눠 지는데, 한갈레는 서쪽으로 가서 서한 무제때 장건이 서역으로 가서 흉노를 같이 칠것을 설득 했다는 '대완'이며 한갈레는 동쪽으로 와서 선비산에 거주한 동호가 그 족속이죠. 그 동호의 일파중에 박혁거세가 장성역을 피해 남하하여 진한을 건설 한 겁니다.
It is commonly perceived to be especially prevalent amongst Han Chinese;[1] however, this is partially due to legend, and is not entirely medically proven. [중국에서 전해지는 전설 때문에 한족에게 보편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으나, 의학적으로 증명된 바 없음] The trait is commonly perceived to be widely present among Han Chinese, although this has not been medically proven. It is also present in other ethnic groups. [....다른 민족들에게도 나타남]
좀 뜬금없지만, 김해김씨의 경우 성기 포피에 점이 있다는 루머를 책에서 읽은적이 있는데요.
실제로 중딩때 김해김씨인 친구놈과 목욕탕에 갔다가 그 점을 확인-_-한 기억이 있어요... 물론 이후로는 친구랑 목욕탕 갈일도 없고, 목욕탕에서 처음보는 사람 본관을 물을일이 없었지만.. 이 얘기를 몇년전에 페북에 올렸더니, 아는 여성분이 신기하다며 자기는 팔뚝에 점이 있는데 집안 여자들 다 팔뚝에 점이 있다고 하시던..
우리나라에 중국에서 유래한 성씨가 많은 이유. 신라와 당은 굉장히 오랜 기간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어요. 그런데, 왕건이 신라를 슥삭하고 고려를 세운 겁니다. 당 입장에서는 오랜 기간 말 잘 듣던 신라 덕분에 동쪽 국경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신라가 무너지고 새로운 나라가 생겼으니 괜시리 걱정도 되고 긴장도 되고 그랬을 거예요. 게다가 왕건이 정한 국호가 하필 그옛날 당나라를 위기에 빠트렸던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였으니 당나라의 경계심은 이루 말할 수 없었겠죠. 자고로 싸움은 선빵이잖아요. 당나라는 고려를 두고 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간을 보고 있는 상황이었어요. 왕건은 이런 상황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고려가 먼저 선빵을 칠 수는 없었어요. 건국 초기라 아직 지방 호족들을 확실히 장악하지도 못했고 중앙집권 체제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함부로 전쟁을 할 수는 없었겠죠. 왕건은 이런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당나라에 대한 유화책을 폅니다. 첫번째로 왕씨 가문의 족보를 만드는데, 무려 당나라 황실을 그 뿌리로 만들어버립니다. 고려의 정사인 「편년통록」에는 왕건의 조부 '작제건'을 당나라 선종(혹은 숙종)의 아들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나 또한 당 황실의 후손으로서 같은 집안끼리 싸울 생각이 없으니 당나라 너희도 우리한테 선빵.칠 생각하지 말고 좀 봐줘."라는 의미인 겁니다. - 이게 좀 웃긴게... ㅋㅋㅋㅋㅋㅋ 왕건의 조부는 당 숙종(혹은 선종)의 아들인데, 왕건의 증조모가 고구려 유민인 강호경과 강충의 후손이에요. 게다가 왕건 탄생설화에 이 '강충'이란 분이 한 번 더 등장합니다. 외5대조인 강충에게 지나가던 승려가 "어디어디쯤에다가 집을 짓고 살면 군왕이 나올 것이오." 했대요. 그래서 강충이 그 스님 말대로 했고, 시간이 지나 왕건이 태어났다는 얘긴데... 황해도 신천이 본관인 5대조 이후로 군왕이 태어날 날만 오매불망 기다리며 신라땅에 살아 오던 증조모가 어느날 갑자기 소리소문도 없이 당나라로 가서 당 숙종(혹은 선종)과 결혼해서 낳은 아들이 왕건의 조부 작제건이란 얘긴데... 어느모로 보나 말이 안 되는 얘깁니다만... 왕건은 꽤나 진지하게 족보 위조 작업에 임했고, 덕분에 신천 강씨의 족보까지 꼬이게 됩니다. (네, 제가 신천 강가입니다. ㅋㅋㅋㅋㅋㅋ) 그럼 왕씨만 족보를 조작했느냐? 아닙니다. 고려의 귀족, 호족들이 앞다투어 족보를 조작합니다. 특히 신흥 귀족들이 심했는데요. 지방 호족들이야 신라시대부터 이어오던 성씨의 역사가 있으니 조작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지만 신흥 귀족들은 듣보잡들이 많다보니 가문의 위세를 위해 족보를 조작하는 일이 흔했죠. 거기에 더해 왕이 성씨를 막 내려 줍니다. "넌 이러이러한 공이 있으니 성을 내려주마."하고 내려 주는데, 조상은 성씨를 받은 사람이 알아서 정했습니다. 자기가 시조를 하고 싶으면 하고, 아닌데, 좀 약한데, 싶으면 당나라 황실이나 황실의 종친 쪽에서라도 아무나 하나 갖다가 자기네 시조로 삼고 그랬습니다. 생존을 위한 선택이 유행처럼 번진 것이죠. 따라서 여러분들은 지금이라도 족보를 다시 한 번 들여다 보시고 혹시나 우리 성씨 시조님께서 당나라 황실과 연관이 있으시다, 거기다 시조와 중시조 간의 갭이 상당히 크고 그 사이에 족보가 없이 시조에서 바로 중시조로 건너 뛴다... 그리고... 하필... 그 중시조께서 당나라가 존재하던 시기 고려 사람이다. 그러면 시조에 관한 기록이 뻥일 확률이 상당히 높습니다. 저도 저희 시조님에 관한 기록들 대부분이 뻥일 거라고 짐작은 하지만 감히 종친회에서 말도 못 꺼내고 살살 밑밥만 까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