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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희와 소손녕의 담판을 결정적으로 이끌어낸 인물, 대도수
게시물ID : history_156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엘파란
추천 : 8/4
조회수 : 1441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1/06/01 21:28:28
993년 거란의 소손녕이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입하고

초반에 고려의 봉산군을 쳐 많은 고려군과 민간인들을 포로로 사로잡으니 한껏 기가 올라서

80만 대군을 이끌고 왔으니 고려는 어서 항복하라 고 큰소리를 쳐댔죠.

이에 겁먹은 고려의 성종과 몇몇 신하들이 서경 이북의 땅을 거란에 넘겨주는 할지론 까지 논할 정도였는데

서희와 이지백이 나서서 절대불가라고 해서 간신히 막아냈음.

그즈음 소손녕은 자신의 말을 고려가 무시하니까 열받아서 다시 남쪽으로 쳐들어갔는데 안융진(평안남도 안주군)이라는 작은 곳에서 중랑장 대도수와 낭장 유방이 이끄는 고려군에 요격을 당해 참패를 당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의외의 패배에 충격먹은 소손녕은 더이상의 무력도발을 자제하고 그저 큰소리만 뻥뻥 치며 회담만 요구했고 고려 조정도 강화론으로 돌아섰으며 이에 서희가 소손녕과 담판을 벌여 강동 6주를 얻어내게 되었져.

이 중랑장 대도수가 누구냐고 하니 사서에는 발해에 귀순한 발해의 마지막 왕자 대광현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에 일격을 가했으니 대도수 입장에선 참으로 통쾌한 설욕이었을듯.

17년뒤 거란의 2차 침입때 대도수는 두 계급 오른 대장군의 직위에 있으면서 서경을 지키고 있었는데 압도적인 열세에 놓이자 부하인 탁사정의 배신으로 서경이 함락되고 거란에 포로로 사로잡혔고 그 뒤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음.

다른 건 몰라도 거란의 1차 침입때 공적으로 따지면 서희 못지 않은데 서희만 뜨고 대도수는 묻혀버린 감이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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