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량> 이 개봉하길래 트레일러 보고 들떠서 명량대첩 다시 찾아보고 조금 더 공부해보고 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궁금한게, 일본에선 명량 대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소수 병력에 대패해서 조선 침공에 대한 큰 벽이었다 라고 생각할까?
라는 궁금증이 생겨서 위키를 살짝 긁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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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적의 함대가 어란포에 들어온다는 보고를 받고 9월 15일에 벽파진에서 우수영(右水營)으로 진을 옮긴 뒤 장병들에게 “必死則生, 必生則死(필사즉생 필생즉사)”라고 말하고 필승의 신념으로 적의 내습을 기다리고 있었다. 9월 16일 왜선 133척이 어란포를 떠나 명량으로 공격해오자, 13척의 전선과 군사를 정비하여 구루시마 미치후사[來島道總]와 도도 다카토라[藤堂高虎]가 지휘하는 왜선 31척을 격퇴하였다. 이 싸움으로 조선은 다시 해상권을 회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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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명량대첩이라고 불리어, 이순신이 이끄는 소수의 조선수군이 일본군에 승리한 전투로 유명하다. 아지만 실제로는, 조선수군은 일본수군의 선봉을 지리적 이점을 살려 격파한 후에, 전력차를 보아 더 이상의 공격은 하지 않고 퇴각했다. 이에 말미암아 전장의 제해권(해상권)이 일본측으로 넘어와서, 조선수군의 기지인 (전라도) 우수영과 건너편의 진도의 공략을 허용해,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일본수군의 침공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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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되어 있더군요 ㅎㅎ. 자국 이야기 어떻게든 포장하려고 쓴 거 같은데.....
공부 많이 하신 역사게 여러분들 생각이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