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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에대하여... 그림첨부(19세)
게시물ID : humorstory_16823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나르시즘AK
추천 : 7/10
조회수 : 1300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09/07/13 10:15:10
유방 [劉邦, BC 247 ?~BC 195] 
중국 한(漢)나라의 제1대 황제(재위 BC 202∼BC 195). 진나라 말기에 군사를 일으켜 진왕으로부터 항복을 받았으며, 4년간에 걸친 항우와의 쟁패전에서, 항우를 대파하고 천하통일의 대업을 실현시켰다.

자 계(季). 묘호(廟號) 고조(高祖). 패(沛:江蘇省 豊縣) 출생. 농가에서 태어났으나, 가업을 돌보지 않고 유협(遊俠)의 무리와 어울렸다. 장년에 이르러 하급관리인 사수정장(泗水亭長)이 되었으며, 당시 여산(驪山)의 황제릉(皇帝陵) 조영 공사에 부역하는 인부의 호송책임을 맡았다. 호송 도중에 도망자가 속출하여 임무수행이 어려워지자, 나머지 인부를 해산시키고 자신도 도망하여 산중에 은거하였다. 

진(秦)나라 말기에 이르러 진승(陳勝) ·오광(吳廣)이 반란을 일으키자 각지에서 군웅이 봉기하였으며, 유방도 향리의 지도자와 청소년층의 추대를 받아 진나라 타도의 기치를 높이 들고 군사를 일으켜 패공(沛公)이라 칭하였다(BC 209). 다음해 북상하여 항양(項梁) ·항우(項羽)의 군과 만나 연합세력을 구축하였다. 그뒤 항우의 군대가 동쪽에서 진군(秦軍)의 주력부대와 결전을 벌이는 사이, 그는 남쪽으로 관중(關中)을 향해 진격을 계속하여 항우보다 앞서 수도 셴양[咸陽]을 함락시키고, 진왕(秦王) 자영(子嬰) 으로부터 항복을 받았다. 또 진나라의 가혹한 법률을 폐지하고 법삼장(法三章)을 약속하여 인심을 수습하였다. 

약 1개월 늦게 셴양에 도착한 항우는 그를 살해할 목적으로 홍먼[鴻門]에서 대연회를 베풀었으나(鴻門의 會), 장량(張良)과 번쾌(樊噲) 때문에 실패하였다. 진나라가 멸망하자 항우는 서초패왕(西楚覇王)이라 칭하고, BC 206년 유방은 항우로부터 한왕(漢王)에 봉해졌다. 그뒤 4년간에 걸친 항우와의 쟁패전에서, 소하(蕭何) ·조참(曹參) ·장량(張良) ·한신(韓信) 등의 도움으로 해하(垓下)의 결전에서 항우를 대파하고 천하통일의 대업을 실현시켰다. BC 202년 유방은 황제에 오르고 수도를 창안[長安]으로 정하였다. 

한왕조 건설에 공이 큰 장수와 부하를 제후왕(諸侯王)과 열후(列侯)로 각지에 봉(封)하였으나, 얼마 뒤 이들이 모두 멸망하자 왕실일족(王室一族) 출신으로 대체되어, 제후왕은 한실일족(漢室一族) 출신자에 한정된다는 불문율이 성립하였다. 유방은 서민 출신이었으나 성격이 대담치밀하고 포용력이 있어, 부하를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데 능숙하였으므로 최후의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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