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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단편소설 UFO
게시물ID : lovestory_3479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국어국문
추천 : 1
조회수 : 673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1/06/02 15:07:48
UFO 어느 날 밤 이상한 소리에 창을 열어 하늘을 보니, 수많은 달들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어느새 곁에 다가온 할머니가, 내 손을 잡으며 속삭이듯 내게 말했다. 그들이 돌아왔다고. - 패닉 「UFO」中 간밤에는 유난히 별이 밝게 빛났습니다. 학계에서는 이 현상에 대한 구체적인 원인을 해명할 수 없기 때문에 많은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 것은 지난 1997년 이후로 처음입니다. 그 당시에 학자들은 지구의 자전에 따른 일시적인 관측현상 중 하나라고 해명하였으나 그 근거가 불충분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리하여 이번 현상에 관하여 학계에서는 ⋯⋯. “동준아 뭐하니, 빨리 밥 먹고 학교가야지” “거의 다 먹었어요.” 대답은 했지만 내 눈은 텔레비전에 고정되어있었고 숟가락은 멍하니 공중에 떠있었다. 쏘아보는 엄마의 시선을 느낀 다음에야 밥그릇을 비우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이른 아침의 익숙한 한기가 몸을 감쌌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별빛이 꽉 들어찼던 지난밤과 대조적이라 텅 빈 느낌을 자아냈다. 학교에선 지난 밤 일이 화제에도 안 올랐다. 물리는 종이 울리고 나서야 하던 말을 마무리하고 교실 문을 나섰다. 종소리만 기다리던 나는 책상위에 엎드렸다.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을 종소리가 울리기까지, 눈을 감을 생각이었다. 해가 뜨기 전까지 밤하늘을 바라봐서, 수업시간 내내 물리 목소리가 자장가로 들렸다. “야, 하등. 지금 당장 피자빵이랑 우유를 사와라.” “내꺼도 같이 사와라. 난 초코우유로. 출동!” 등 뒤에서 익숙한 일진들 목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교실, 익숙한 떠드는 소리, 익숙한 왕따의 괴로움, 익숙한 팔베개, 익숙한 잠. “중간고사 얼마 안 남았지? 주말동안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라.” 담임이 고압적인 태도로 말했지만 그것도 익숙해졌기 때문에, 적당히 잘 듣고 있다는 표정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교실을 나서기 전에 문득 하등이를 쳐다봤다. 수업 전에 교과서가 없어졌다며 한 차례 소동을 일으켰던 하등이는, 쓰레기통에서 제 교과서를 주워와 가방 안에 챙겨 넣고 있었다. 하등이, 원래 이름은 그게 아니지만 다들 그렇게 부른다. 예전에 옥상에서 팔을 벌리고 서있는 걸 담배 피러 올라갔던 일진들에게 들켰단다. 이상한 놈이라며 데려다가 두들겨 팼는데 입술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진 채로 ‘하등한 인간들 따위가⋯⋯.’라고 중얼거렸다가 더 맞았다고 한다. 그 이후로 녀석은 ‘하등이’가 되었는데 같은 학년은 모르는 사람이 없는, 그런 시시한 이야기다. 집에 가자마자 가방을 내던지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서랍장을 몇 차례 뒤적거리다가 작은 전화번호 수첩을 찾았다. 핸드폰에는 없었지만 어딘가에 연락처를 적어두긴 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부모님이 그렇게까지 모질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피어난 희망이었다. 하지만 수첩을 뒤지면서 뒷장으로 넘길 때마다, 페이지가 줄어들 때마다 희망도 줄어드는 것만 같았다. 불만은 예전에 있었다. 그 불만이 불안이 되기까지는 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의 난 너무나 어렸으니까. 처음에는 나와 잘 놀아주시던 할머니를 이제 못 만난다는 게 서러웠다. 그러나 그 때 엄마말대로 할머니는 돌아가신 게 아니었고, 몇 시간동안 먼 길을 가면 만날 수 있었다. 아! 그 때 그 시간, 지루함을 못 참고 차에서 잠들어버린 나는 얼마나 멍청했던가. 그 몇 번의 기회가 지나고 나서 우리는 할머니를 만나러 가지 않았다. 할머니는 돌아가시지 않았지만, 부모님은 벌써 마음속에 묻어둔 것만 같았다. 잡초가 자라도 벌초하지 않는, 아무도 찾지 않는 봉분처럼. 그 이후로 우리 집에서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건 하나의 금기가 되었다. 내 희망의 마지막 장까지 훑어봐도, 찾는 전화번호는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이제는 내가 아무것에도 손대지 않았던 양, 되돌려놓을 시간이었다. 조금 있으면 엄마가 퇴근해서 돌아오기 때문이다. 나는 수첩을 접고 다시 제자리에 놓으려했다. 그런데 그 아래쪽에 있는 우편물들 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참사랑 실버타운’ 몇 개의 고지서 사이에 있는 그 봉투를 나도 모르게 집어 들고 방을 나섰다. 내 방 서랍에 봉투를 집어넣고, 서둘러 교복을 벗었다. 편한 옷을 잡아서 막 머리를 넣는 순간 '삐익'하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릴 때 엄마 지갑에서 만 원짜리를 빼냈을 때처럼 내 가슴이 덜컹거렸다. 그래서 익숙하게 엄마를 맞이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그게 정말이세요?” “그럼 참말이지 내가 이 나이 먹고 니들한테 거짓부렁 할 성 싶으냐?” “할머니, 진정하시고요. 어디서 어떤 일이 있으셨는지 차분히 말씀해주시겠어요?” 할머니는 방송국 사람과 전화로 한참을 떠드셨다. 너희들은 왜 외계인보다도 말귀를 못 알아먹냐는 핀잔도 빼놓지 않으셨다. 그 다음날 정말로 방송국에서 사람들이 왔고, 처음 보는 커다란 카메라들이 할머니 주변을 돌며 촬영을 해갔다. 나는 텔레비전에 나올 거라는 할머니가 너무 대단해서, 온갖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고 다녔다. 방송이 나온다는 날, 나는 오두방정을 떨며 엄마 아빠 손을 잡고 거실로 나와 텔레비전을 틀었다. 그 때 방송으로 할머니의 모습을 접한 두 분은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나도 어리긴 했지만 방송이 나왔을 땐 좀 놀라웠다. 우리 할머니는 국내의 별난 사람들이 나오는 프로에서, 그야말로 대한민국 0.01%라 할 수 있는 별 다섯 개짜리 외계인 할머니가 되어있었다. 할머니는 그 이후에 그야말로 외계인처럼 내 곁을 떠나게 된 것이었다. 내 친구들은 그 프로를 말하면서 웃고 떠들어댔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웃지 않았다. “일요일 아침부터 어딜가는데?” “도서관이요. 다다음주부터 중간고사에요.” 하지만 나는 시외버스 터미널로 갔다. 터미널은, 마치 외계를 넘나드는 거대한 우주정거장처럼 느껴졌다. 나는 마치 좌표처럼 적힌 주소를 되새기며 하루 세 번 버스가 들어간다는 마을로 향했다. 인터넷에서 주소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물론 그렇게 수첩을 뒤져가며 찾던 전화번호도 적혀있었다. 오히려 어려웠던 건 할머니 이름을 찾는 거였다. 면회를 가서 우리할머니라고 해봤자, 이름도 모르면 만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할머니 이름도 모르는 건 정말 내 잘못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태어날 때부터 나에겐 단 한 분뿐인 할머니였기 때문에, 이름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뜬금없이 엄마에게 할머니 성함이 뭐냐고 물을 수도 없었다. 우습게도 나는 인터넷에 ‘외계인 할머니’라고 검색을 해서 할머니의 이름을 찾게 되었다. 가는 길도, 주변 풍경도 낯선 곳은 마치 지구가 아닌 것 같았다. 버스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떠나고 난 후에 정류장에서 차 시간을 확인한 나는 근처의 요양원을 찾았다. ‘담배’라는 간판만 걸려있는 동네 슈퍼의 주인과, 길에서 고추를 널어 말리던 아줌마에게 물어물어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은 ‘참사랑’도 ‘실버타운’도 어울리지 않는 적막한 요양원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건물로 들어가 사무실을 찾았다. 데스크에 앉아 잡지를 보던 뚱뚱한 직원에게 면회를 왔다고 하자, 나에게 종이를 한 장 내밀었다. 할머니 성함과 내 이름, 그 밖에 몇 가지를 기입하고 나서 면회실을 안내 받았다. 면회실이라고 해봐야 낡은 선반위에 작은 텔레비전이 하나 있고, 테이블과 의자 몇 개가 덩그러니 있는 곳이었다. 나는 의자에 앉아 파란 철문을 보며, 막상 할머니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별로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찾아온 건 아니었지만 조금 막막했다. 하지만 쇳소리가 나며 문이 열리고 반가운 할머니 얼굴을 보자, 나는 아무 말도 필요 없이 그저 할머니가 반가웠다. “아이구, 이게 누구야. 내 손주가 왔네. 아이구 동준아. 이 기특한 거, 고데 이래 자랐누.” 나는 마치 일곱 살 어린애처럼 할머니에게 안겼다. 할머니가 내 기억보다 더 많이 늙으신 것 같아 안타까웠는데, 할머니는 내가 자란 게 그렇게 예쁘다고 하셨다. 오랜만에 만난 할머니의 손을 꼭 잡아보자 할머니께선 다시 내 손을 부여잡으며 반가워하셨다. 이렇게나 반겨주시니 너무 늦게 찾아온 게 아닌가싶어 죄송스럽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할머니께서는 그런 나의 말에, 전혀 그런 생각하지 말라고, 오히려 지금 이렇게 찾아온 게 너무 다행스럽다고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 나는 뭐가 다행스러운지 물었다. “그려. 나 가기 전에 내 손주도 보고 이기 참말로 다행이제. 엊그제도 참말로 좋은 일이 있더만, 이제 떠나도 이 할미는 여한이 없어.” “할머니 떠나신다니 무슨 말씀이세요. 엊그제 무슨 일 있으셨어요?” “지기, 이놈아. 너도 봤을 거 아녀. 엊그제 하늘에 못 봤단 말여? 그래 요즘은 밤되면 디립다 잠만 쳐 자기 바쁘고, 눈도 깜꾸 산당가?” 할머니의 말씀은 이랬다. 엊그제 밤에 또 다시 그들이 찾아왔다고. 나도 그 이야기를 들으며 십 년 전 밤이 생각났다. 실은 이번에 할머니가 갑자기 떠올랐던 것도 예전의 그 일 때문이었다. 십 년 전 할머니와 함께 밤하늘을 바라보던 일이, 엊그제의 기억과 겹쳐져서 잊히지 않았다. 그리고 엊그제 다시 돌아온 그들과 할머니가 이야기했다는 말을 들으며, 옛날에 텔레비전에서 우스꽝스럽게 나왔던 할머니의 모습도 겹쳐졌다. 하지만 난 그 옛날에도 그랬던 것처럼 웃지 않았다. 외계인을 만나서 자기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줬다는 할머니의 말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할머니는 그런 나에게 외계인 같다고 이야기 하셨다. 그래, 그 친구들도 나처럼 이렇게 이야기를 잘 들어줬다고. “뭐에요. 할머니 그럼 제가 외계인 닮았다는 거예요?” “닮기는, 우리 동준이가 훨씬 잘생겼지. 그 맨들맨들한 것들보다야 우리 동준이가 암. 백배 천배 낫지. 닮긴 지기 무얼 닮아.” 나는 멋쩍게 살짝 웃고는 진지하게 다시 물었다. “할머니 그럼, 외계인들은 왜 자꾸 찾아오는 거예요? 혹시 지구를 침략할 생각이래요? 영화 같은데 보면 막 와서 사람들 잡아가고, 나중에는 이상한 광선으로 지구를 쑥대밭으로 만들던데.” “지기, 그건 외국 놈들이 맹근 영화 얘기고.” “그럼 실제로는 외계인들이 우리한테 우호적이에요? 아니면 적대적이에요?” “아직 우리들허곤 교류가 별로 없기 땜시, 잘 모르제. 그래서 우리가 그 관계를 맹글어야지. 말이 안통하고 잘 몰라도, 눈빛만 보고 손을 내밀어 잡아주면 우호적인 관계가 되는 거여. 암만 착해도 대놓고 총질해봐야, 총맞고 속 좋을 놈 어디 있간디? 그깟 놈들은 총맞아 뒤져도 싼겨. 알긋냐 동준아?” 그래서 할머니는 그들이 왔을 때,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잡아주었다고 했다. 이 세상 어딘가에는 그렇게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가끔 그들이 찾아오는 거라고.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자 조심스레 방문하는 거라고. 그런 이야기를 할머니는 소녀 같은 표정으로 하셨다. 천진난만한, 오히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과연 이게 사실일까 고민하는 내가 어른 같다는 우스운 생각도 들었다. 면회가 끝나고 인사를 한 후 집에 돌아오는 길에도 할머니의 이야기는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학교에는 중간고사가 코앞이라는 나름대로의 긴장감이 돌고 있었다. 벌써부터 쉬는 시간에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노트 정리한 걸 필사하기도 하고, 평소처럼 대놓고 날뛰며 떠들지도 않았다. “이 하등새끼, 하등한 주제에 무슨 공부야?” 물론 시험 전주라고 다 조용해지는 건 아니다. 이처럼 예외도 있다. “어? 꼽냐? 꼬우면 옥상 올라가서 또 외계인이라도 불러보지 왜?” “야 진짜 에일리언 같은 게 내려오면 어떡하냐. 하등한 인간들은 다 뒤지겠네.” “크크크. 야, 그럼 완전 대박이겠다. 이 새끼만 살아남는 거 아냐?” “왜 지도 어차피 하등한 인간인데. 제일 먼저 잡아먹히는 거지. 킥킥.” 질리지도 않는 듯, 평소처럼 너무나 익숙하게 하등이를 둘러싸고 괴롭히는 무리들. 하등이는 그 무리 한 가운데에서 애벌레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마지막 자존심이라도 되는 것처럼, 고개를 뻣뻣하게 쳐들고 이마를 손으로 감싸고 있었다. 내가 하등이와 눈이 마주친 건 그 때였다. 대낮이었음에도, 동굴처럼 어두운 얼굴에서 하얀 눈동자는 짐승처럼 나를 응시했다. 나는 노트로 고개를 돌리며 화학식을 보는 체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노트 위에 어지러운 글자 사이로 하등이의 하얀 눈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제 다음 주가 중간고사다. 다른 선생님들 얘기 들어보면 아직 정신 못 차리는 얘들 몇 명 있는 것 같아. 따로 말은 안하겠는데 선생님 눈에도 들어오니까 알아서들 조심해.” 종례가 끝나자마자, 아이들은 배수구로 빠지는 물처럼 쏟아져나갔다. 나는 교실에 고인 것처럼 남았다. 머릿속이 왠지 복잡해서 서둘러 나가고 싶지가 않았다. 그 때 뒤에서 의자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하등이가 가방을 등에 매고 교실을 나서려하고 있었다. “저기. 야!” 지금 내가 부른 건가? 내가. 하등이를. 왜 불렀지? 왜 불렀지? 하등이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아. 아까와 같은 눈이다. 저 눈. “아. 아니야. 아무 것도.” 나는 시선을 피하며 황급히 가방을 들어 어깨에 걸쳤다. “너도 똑같아.” 하등이가 내뱉듯 말을 던지며 교실 문을 나섰다. 애들이 다 빠져나간 조용한 학교에서, 하나 남은 발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사라졌다. 나는 혼자 남은 발소리의 주인이 돼서, 학교를 빠져나왔다.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지구에 나 혼자 남은 것처럼. “벌써 자니? 중간고사 얼마 안 남았다면서.” “안자요. 좀만 누워 있다가 일어나서 할게요. 좀 피곤해서 그래요.” “피곤하긴 뭐가 피곤해. 뭘 했다고 불까지 끄고 누워서. 지난 학기 성적 알지? 그래서 대학에 들어가겠어?” 익숙하다. 침대, 이불. 푸근함. 이렇게나 편안한 거였나. 침대에 푹 파묻히는 것이. 시험기간이 되면 이 푸근함은 왜 이렇게 더 달콤해질까. 차라리 날마다 시험기간이라면, 나는 시험 하나 안 치루고 이렇게 내내 침대에 녹아들라내만. 푸후읍. 이불보에 입을 대고 한숨을 쉬었더니 이상한 소리가 난다. 내 숨결에 입주위가 순간 따뜻해진다. 흠, 나도 이만하면 꽤 따뜻하군. 새삼스럽게 내가 대견스럽다. 이러다 잠들어버리겠네. 잠들어버리겠네. 자면 안 되는데. 모두가 반길 수는 없겠지만, 그 자신이 그 이유를 제일 잘 알겠지만. 달빛으로 뛰어가 봐. 날아와 머리 위로. 날아와. 검은 하늘을 환히 비추며. 솟아. 모두 데려갈 빛을 내리리. 이제야. 그 오랜 미움 분노 모두 다. 높이. 우리 와. 함께 날아와 머리위로. 날아와. 검은 하늘을 환히 비추며. 솟아. 모두 데려갈 빛을 내리리. 이제야. 그 오랜 미움 분노 모두 다. 높이. 우리 와. 함께 날으리. 저기 하늘 밖으로.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유난히 노랗게 빛나던 달이 두 개가 된다. 우리가 지구에서 보는 달은 한 면 뿐인 거 아세요? 달의 뒷면은 지구에서 볼 수 없어요. 달은 플라나리아처럼, 두 개로, 네 개로. 피카소처럼 선명하고 다면적으로. 고흐처럼 밤하늘에 노랗게 꾸욱꾸욱 찍어 바르듯. 하늘에 새긴 도장처럼 선명하게. 달리처럼 하늘에서 흘러내려오듯. 밤하늘을 온통 뒤덮더니 돌아다니며 노란 빛을 내뿜는다. 하늘을 가르는 것처럼, 아니지 그건 그들의 입장이야. 하늘이 갈라지는 것처럼 그래 이게 내 입장이지. 내 입장. 나는 아비규환의 도시 한 복판에 서서 갈라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노란 불빛이 내 숨결보다 따뜻하잖아. 뛰어다니는 사람들은 노란 빛이 반사돼서 더 광기 어리게 보였다. 저기 물리가 뛰어간다. 일진들이 서로 뛰다가 서로 부딪힌다.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담임이 입을 벌리고 하늘을 보며 침을 흘린다. 그건 익숙하지 않아! 노래해. 노래. 어디가. 노래해. 뛰어? 너는 데려가지 않아.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왜 도망가. 네가 중요해? 중요해? 으하하. 너는 몇 페이지 몇 번째 줄이지! 안심해 시험범위가 아니니까. 그들은 어디에다 별표를 쳐놨지. 하하하하. 별은 저 하늘에 있어.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다시 익숙한 아침이다. 창밖으로 하늘을 봤다. 차가운 하늘. 하늘의 심해를 달리는 사람들. 거기서 그렇게 지내면 기압에 찌그러질 텐데. 수압이 아니구나. 수압은 아래로, 기압은 위로 올라가면 짓눌리는 거지. 사람은 용케 여기도 저기도 아닌 경계에서 살고 있구나. 나도 그랬고, 그들만이 괜찮겠지. 대체 뭐가 익숙한 거야. 내가 정말 여기에 살고 있었나? 학교 가는 길에 하늘을 바라봤다. 그야말로 감쪽같이 사라졌 군. 정말 넓은 하늘이다. 나도 참, 감쪽같이 꿈에서 깼지. 교실은 조금 더 조용해졌다. 담임이 앞에서 뭐라고 말을 했는데, 이상하게 귀에 안 들어왔다. 그 근엄한 표정과 어젯밤 벌린 입 사이로 침 흘리던 모습이 자꾸 오버랩 되었다. 담임이 나가고, 수학과 화학과 물리가 들어왔다 나가고. 주번이 깨끗하게 지운 어두운 칠판위로 노란분필을 문지르고 싶었을 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야, 하등. 야, 너 졸라 치사하다. 지금 공부하는거야?” 그나마 조용해진 교실에서 끈질기게 튀어나오는 목소리는 늘 그랬던 것처럼 저들이다. “왜 그래. 너라도 우리 베이스 깔아줘야지. 야 나 또 꼴찌하면 꼰대한테 뒤지게 맞아.” “또라이냐. 꼴찌하는게 더 힘들겠다. 차라리 하등이가 공부해서 우리 도와주면 되겠네.” “맞네. 야, 네가 내 이름으로 써서 제출해라.” “야 웃기지마. 내 이름이야. 하등이가 날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치?” “까고 있네. 퍽이나 널 좋아하겠다. 내가 하등이 얼마나 아껴주는데. 난 때릴 때도 살살 때린다? 그치. 하등아.” 난 슬쩍 고개를 돌렸다가, 슬쩍 몸을 돌렸다가, 슬쩍 일어났다. 하등이는 그들 사이에서, 다시 어제 같은 눈을 하고 나를 쳐다봤다. 이렇게 눈이 마주치는 게 세 번째다. 난 이제야 저 시선을 붙잡았다. 손처럼, 숨결처럼, 내 시선도 따뜻했으면 좋겠다. “어? 뭐야. 너 지금 우리 야리냐?” “미쳤냐? 대가리 처박고 공부나해. 눈까리 먹물을 확 뽑아버릴라.” 교실이 술렁거렸다. 일진들도, 하등이도,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도 전부. 그것 봐. 그동안 너무 익숙하기만 했잖아. 이것 봐. 지금 나도 너희도 전혀 익숙하지 않아. 어젯밤 나는 뭘 하고 있었지? 난 너희를 봤어. 노란빛을 피해서 사방팔방 뛰어다녔지. 한 순간 팩맨이란 게임이 생각났다. 반짝이는 구슬을 먹으면, 노란 팩맨을 피해서 파랗게 질린 괴물들이 미친 듯이 도망 다녔다. 용기가 났으면 했는데, 웃음이 나왔다. 뭐 결과는 비슷했다. 그 뒤로 어떻게 됐는지 하나하나 기억은 안 나는데, 내가 한 방 먹이긴 했다. 그 뒤로 여러 방 먹었지만. 그런데 하등이가 한 놈을 어깨로 밀어버리자 그 놈이 나동그라졌다. 그러자 반 애들도 우르르 일어났다. 몇 명이 사이에 끼어들어 우리를 서로 떼어놓았고, 나머지 애들은 일진들을 둘러싸서 노려보았다. 그 모습에 일진들은 질려서 아무 말도 못하고 교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교실은 그 어느 때보다 소란스러워졌다. 아, 애들아. 시험기간이잖아. 담임이 노발대발한 건 당연하다. 다른 교실들이 조용했던 만큼, 우리 교실은 말하자면 대박이었으니까. 하지만 담임은 그 소란의 원인이 누구인지는 찾지 못했다. 애들은 입을 모아 자기들이 그냥 떠든 거라고 말했고, 일진들은 자리에 앉아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나는 뒤를 돌아 하등이를 쳐다봤다. 하등이도 나를 보고는, 씨익 웃었다. 음, 하나도 안 익숙해. “저기. 동준아.”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하등이가 말을 걸어왔다. “응. 괜찮냐?” “어. 그래. 저기. 고맙다.” “고맙기는 뭘.” “아니야. 정말. 음. 너 오늘 마치. 무슨 외계인 같았어.” “외계인? 야. 그거 칭찬이야? 꼭 할머니 같은 소리를 하네.” “할머니? 무슨 말이야.” “아. 아니야. 하등, 아. 아니지. 미안. 맞다. 어, 이름이 뭐더라?” 차라리 이름도 말도 안 통하는 외계인이었으면 좋았을 것처럼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하등이와 나는 웃으며, 그 날 처음으로 통성명을 했다. 그 이후로 중간고사가 지나고, 학교 애들과 조금은 달라진 관계들도 익숙해질 무렵이었다. 일요일 아침. 텔레비전에서는 간밤에 또 다시 일어난 천문현상에 대해 열심히 보도했다. 뉴스에도 나왔으니 이번에는 꿈이 아니었구나. 나는 실은 오늘 울면서 잠에서 깼다. 깨고 나니 슬픈 일이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아무튼 왠지 그럴 것 같았지만, 역시나 요양원에서 전화가 왔다. 달도 별도 안 보이는 어두운 밤이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사라지다뇨?” 요양원에 계시던 할머니께서 사라졌다고 연락이 왔다. 퇴근한지 얼마 안돼서 전화가 오자 짜증을 내며 전화를 받은 엄마는, 음. 놀랍도록 놀라셨다. 할머니께서 아침부터 보이지 않자 요양원에서는 간밤에 어디로 가셨나 주위를 찾아봤다고 했다. 시설 내에 할머니가 계실 법한 곳 어디에도 안 계셨던 모양이다. 집으로 가셨나 싶어 유일한 교통편인 인근 버스도 알아보았지만 할머니는 그 작은 동네의 작은 요양원에서,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으로 사라졌단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찾았지만 보이지 않는다는 요양원 측의 연락을 받은 엄마는, 그야말로 준비된 절차를 밟듯 일을 순조롭게 진행했다. 아빠와 상의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요양원과 연결된 보험회사와 이야기해 얼마간의 보험금을 타고, 그 돈의 일부로 ‘사람을 찾습니다.’라는 전단지를 수백 장 만들었다. 나는 학교에 다닌다는 명목으로 그 절차 속에 포함된 중노동에서 제외되었다. 나는 그야말로 차분하게, 부모님으로부터 할머니의 빈자리가 새삼스럽게도 다시 익숙해지길 기다렸다. 몇 개월 후에 가족끼리 장례 아닌 장례를 치루며, 얼마간 흘린 엄마의 마지막 눈물로 모든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그 후로 다시 집은 일상을 찾았다. 기쁨도 슬픔도 익숙해지면 어차피 일상으로 돌아왔다. 요즘은 독서실에 다닌다. 공부 한 번 열심히 해보겠다는 아들의 낯선 발언에 엄마가 무척 좋아했다. 하지만 내가 독서실을 다니기 시작한 건 그 시간에 길을 걷는 것이 좋아서였다.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오늘도 달이 참 밝다. 나는 할머니를 향해 웃어보였다. 할머니는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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