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합의금 대신…국선변호인 ‘감동 변론’
경향신문 | 기사입력 2007-06-19 02:00
가족과 연락이 끊겨 중형이 선고될 위기에 처해 있던 피고인을 위해 국선변호인이 피해자를 설득하고 합의금을 대신 마련해 준 사연이 뒤늦게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국가로부터 최소한의 비용보조만 받는 국선변호인이 피고인을 위해 자신의 사재까지 털어 변론한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지난 15일 서울중앙지법의 한 법정. 이날은 강도상해죄 등으로 기소된 김모씨(35)의 변론기일이었다.
“피고인이 피해자와 합의를 했네요. 합의는 가족이 한 건가요?”(재판장), “아뇨, 가족하고는 끝내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변호인)
“그럼 합의금 마련은?”(재판장), “피고인이 돈을 마련할 처지가 못 돼 제가….”(변호인)
순간 피고인석에서 고개를 떨구고 있던 김씨가 고개를 들어 변호사 김종표씨(39)를 바라봤다. 국선변호인 김종표씨가 자신을 위해 합의금 100만원을 마련해 준 사실을 그때서야 알았던 것.
피고인 김씨는 7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계모 밑을 떠나 상경했다. ‘고1 중퇴’가 학력의 전부였던 그는 일용직 노동으로 하루하루를 살았지만 곧 그런 일마저 끊겨버렸다. 김씨는 취업정보를 알아보기 위해 올해 3월 모 시립도서관을 찾아갔다가 한 여대생의 가방을 훔쳐 도망치는 범행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는 자신을 붙잡은 남성을 주먹으로 때리는 바람에 ‘강도상해죄’ 등으로 기소됐다. 검찰은 3년6월을 구형했다. 그러나 김변호사가 보기에 3년 이상의 징역생활은 김씨에게 너무 가혹했다. 이미 고단한 삶을 산 사람이었다.
김변호사는 피해자와의 합의를 위해 뛰었다. 그러나 합의는 그리 쉽지 않았다. 정작 도움을 줘야 할 김씨의 가족은 이사가 버렸고 전화번호를 바꿔 연락이 닿지 않았다. 변호인이 직접 피해자에게 ‘사과와 반성의 말’을 전했다. 치아를 다쳐 처음엔 강경했던 피해자의 마음도 누그러졌다. 합의금 100만원은 변호사가 직접 건넸다.
“제가 방황을 겪어봤기 때문에 더욱 도와주고 싶었죠.”
김변호사는 자신과 비슷한 또래인 김씨의 오랜 방황에 가장 마음이 쓰였다고 말했다. 변호사가 되기까지 자신도 시련을 겪었기 때문. 사업을 하던 아버지가 납치돼 이틀 만에 극적으로 구조됐지만 시름시름 앓았다. 이후 외환위기로 아버지의 사업은 부도가 났고, 김변호사는 사법시험에 합격하기까지 학원 강사 아르바이트 등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다.
올해로 변호사 생활 2년을 맞는 김변호사는 “그간 바쁘게 일하느라 사실 공익활동에 적극적이지 못했다”며 “피고인이 석방돼 사회에 나온 뒤에도 돕고 싶다”고 말했다.
피고인 김씨도 재판정에서 “제가 이렇게 관심을 받고 있는 줄은 몰랐다. 땀흘려 일해 돈을 꼭 갚겠다”고 약속했다.
〈송윤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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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가슴따뜻해지네요. 변호사님! 참 멋지십니다. 당신은 성인이십니다. 우리사는 곳을 조금씩 아름답게 해주시는 당신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