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물음은 정말 오래된 물음인데
나는 무엇인가를 생각하면 우선 불교에서 나를 초월하는 것이 떠오르고,
데카르트에 코기토, 나는 생각하니까 존재 하는구나 라는 말이 떠오름니다.
불교에서는 연기를 말하며 모든것은 연결되어 독자적인 나는 없다는 결론을 얻게 도와 줍니다.
코기토 에서는 나를 존재하게 할수 있는것은 생각 밖에 없다는 결론을 또 만들어 내죠.
나는 나의것과는 구별이 됩니다.
나의것이 아닌것이 나 입니다. 그러면 나의것이 아닌것은 하나만 남는데 그것은 현재의 자기 생각 입니다.
결국 생각이란것이 뭔가를 잘 살펴봐야 합니다.
우선 이것이 흔히 여겨지듯 독자적으로 목적을 스스로 가지고 추구 하는가.. 아니라고 보는데요.
생각,사고는 감각과 그 형식이 같습니다. 그렇게 보인다는 말이죠.
즉 감각처럼 반응하는 형식으로 대상을 캐치하는 것 입니다.
여기서 대상은 감각에게는 자극이고 사고는 직시한것 즉 포착된 대상 정도 겠죠. 자극이나 마찬가지로 볼수 있슴.
그런 자극이 감각은 좀 단순한 인식을 만들어 내고 사고하는 뇌는 좀더 복잡하지만 인식이란 측면으로 같습니다.
그러면 감각과 사고는 인식은 하는데 그다음 뭘 하는가. 이것이 능동적인가에 대한 물음이 될것입니다.
감각도 사고도 인식 이외에는 하지 않습니다. 이게 저에 확고한 결론적인 생각인데요.
목적을 사고가 인식하고 생각 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때 사고가 하는것은.
뭘 하고자하는 것이 아닙니다. 뭘 하고자 하는 자신을 인식 하는 것입니다.
뭘 하려고 하는 것은 그럼 뭐냐.
그것은 사고 이전에 움직임의 연속 반응의 연속으로 진행 되고 있는 자기 몸 내부에 활동 입니다.
그 활동이 뇌에게 자극을 줍니다.. 그러면 감각처럼 자극이 구체적인 인식으로 뇌에 의해 드러나게 되는 것 입니다.
뇌는 생각하죠. 나는 뭘 하고 싶다.. 하지만 하고 싶다는 것을 인식 한것이죠.
이렇게 뭘 하고 싶다는 욕구는 생각이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인식하는데,
자신과 생각이 중첩되게 인식하고 있는 생각에 입장에서는 당연히 자신이,
즉 생각이 뭘 하고 싶어 하는줄 알게 되는 것 그렇게 인식하는것 뿐입니다.
그리고 생각은 또 생각 자체 또 논리 자체를 다시 따지며 생각하기도 하는데요.
논리의 연속된 작용인데.이것역시 당연히 인식 이상이 아님.
인식은 자극을 구체화 하고 고정 하는 것 즉 규정 하는것 입니다.
감각이 그러하고 사고 역시 마찬가지이며
사고는 대상을 고정되게 규정 하기 위해 비교를 사용하고 또 순차적으로 규정하는 과정에서 논리가 되는 것 입니다.
즉 논리역시 규정의 과정, 대상을 고착되게 확정하여 규정하고 받아들이려는 인식과정 이라는 말 입니다.
다시말해 인간이 자신을 주체로 믿을수 있는 유일한 것은 사고 이며 이 생각이라는 것 만이 나라는 주체를 증명 합니다.
그리고 이 생각은 감각과 마찬가지의 인식 작용이며
결국 나라는 것은 나라는 인식을 하는 것 입니다.
그래서 나는 나라는 인식을 하기 때문에 존재 하는 것 입니다.
그 이외에 어떠한 증거도 나를 주체로 증명할수 없으며,
유일한 증거인 생각은 동인을 일으키는 주체가 아니라 다만 인식 뿐인 것으로, 말하자면 인식의 주체일 뿐입니다.
인식의 주체인것으로 만족하고
연기된 세상에서 스스로 목적을 가지고 산다는 생각은 착각이라는 논리적인 인식을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