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적혀진 [분리와 통합 - 보는 눈과 듣는 귀의 상호 관계에 대하여]의
모든 토론 담론의 제 글들은
지금 이 글들을 위한 일종의 사설이자 서론이며
소통을 위한 호흡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지금 이 글들이 철학이란 무었인가" 에 대한 극히 개인적 견해이자 오랜세월동안 묵혀진 개인적 사유의 에필로그에 해당됩니다
아랫글의 댓글로 적는게 마땅하나
문장이 장황하고 길어서 이어서 새작성글로 적습니다
봄코님의 이해와 양해 부탁드립니다
- 저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각 개인들의 무한사유를 몹시 귀중히 여깁니다 -
아랫작성글을 이어 적어봅니다
사람들의 추측및 억측이 곧 철학의 발판이라고도 봅니다 그 이유를 적어 봅니다
1.
대화 토론의 과정을 통해 철학이란 무었인가 라는
토론논제를 통해 여러경우의 합의점 내지 해법이라는 근사치를 도출해내고는 있지만
실제론 아랬 작성글에 적혀진 제 글들 중에 완전에 가까운 정답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가 상황에 따라선 억측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자동기술을 통한 즉시 즉설 댓글행위로 인해
첫번째 일반화의 오류.두번째 범주화된 지각의 오류에 해당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논쟁에서 가설을 설정하는 중간 단계를 거치지 않고 성급하게 제한된 증거를 가지고
바로 어떤 결론을 도출하는 오류를 말한다.
우리는 ‘하나만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을 즐겨 하는데,
이 말처럼 위험한 말도 없다.
하나를 보아 열을 알 수 있는 경우도 드물게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결코 그렇지 않다.
이를 가리켜 범주화된 지각(categorical perception)의 오류라고 한다]
2. 가드너 - 모자의 철학 [On the Philosophy of Hats]
[가드너는 어느 날 단골 모자 가게에 들렀다가 우연히 그 가게 점원과 흥미로운 대화를 나눈다.
그 점원은 전문직업이니 만큼 모자와 사람의 머리 크기를 유심히 보게 되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사람을 판단하는 자기 나름의 방식을 터득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모자 둘레 즉, 머리통의 크기는 뇌의 크기를 보여 주고,
따라서 큰 모자를 쓰는 사람은 그만큼 큰 뇌를 가진덕에 뇌의 활동이 활발한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모자만 봐도 그 사람이 지적인 능력이 뛰어난지
혹은 머리를 써야 할 고민이 많은 사람인지,
아니면 가드너처럼 보통의 머리 크기를 지닌 평범한 부류의 사람인지 가늠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 세상사를 보면
치과의사는 사람의 치아만 보고,
구두공은 신발만으로, 또 재단사는 외투만으로 타인을 어떤 사람이라고
단번에 판단해버리게 된다.
그러나 가드너는 이런 식의 판단 기준은 그 기준들끼리 서로 상충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많은 예외와 오류를 낳는다고 평한다.
예를 들어, 모자의 경우만 해도 작은 머리로도 높은 지성을 지녔던
인물들을 얼마든지 열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드너의 이 우화는
일반화된 지식들과 상식들 뿐 아니라 전문적이라 여겨지는 지식들도
억측의 범주에 속하는 오류의 여지가 있다는 점을 말합니다
개인 각자에게 주어진 경험의 범위가 서로 각양각색이고
또 제한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우리 인간들은
모두 객관적으로 보기보다는
주관적으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만 볼 뿐이라고 인정합니다
따라서 완벽하고 만고불변의 절대적인 인식이나 가치 판단은
어차피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3.
지구별 60억 인간이 각자 다르게
모두 자신의 눈과 귀로 본 세상을 살아갑니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사 인생사 사람만상을 ‘내 눈과 귀'를 통해 보고
각개인이 처한 가정환경과 교육환경 생존현실 경험치등을 통해
누구나 나만의 잣대로 사유하고 판단 내립니다
이것이 결코 이상한것이 아니라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오히려 모두가 동일한 신념과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건 몰개성하게 복제된 로봇집단과 다를바 없는 끔직한 일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모두 자신의 심상의 크기만한 주관적 한계를 지닌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급박하게 어떤 현상이나 상황이 닥쳤을때
각각 모두 다른 인식으로 추측및 억측을 내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 됩니다
철학의 역사는 모두 알다시피 대화와 토론을 통해 성립되기 시작했습니다
추측및 억측들이 모여 주장이 되며 대화 즉 설왕설래중 다수가 공통합의를 통해
토론대화내용을 수렴하여 기준점을 정하거나
(또는 그 분야의 선지자나 권위자의 말을 듣고 그걸 다수가 수긍하고 받아들일 경우에만)
우리가 흔히 일컫는 일반상식및 전문지식이 공용화 통용화 되며 권위를 가집니다
즉 억측 추측이 정립되며 > 가설을 이루고 > 학설로 발전되 토대가 되며 > 한시대(Age)를 풍미하는 이론으로 정리 됩니다 >...
이것들이 다 모여 인류공동체에 커다란 영향을 주면서 크게 기여할때
사상으로 남아 장구한 세월을 이어가며 긴 생명을 가집니다
또한 이 공용화 통용화의 속성이나 질감은 각 인종별 대륙별 민족별로 또 각각
모두 다 다르기도 합니다
각지역의 전문가를 포함한 인간군집들 각자의 주장들과 대화를 통해
추측 억측들이 모여서 합의점 도출로 이루어진게 상식및 전문지식이라면 (결국 공용화된 이론 학설들이 이 과정을 거칩니다)
이러한 전문적 사상 철학들은 존재의 내적 외적 성숙을 위해 마련된
인류가 남긴 참으로 고마운 수레와 징검다리에 불과합니다
수레를 타고 하나의 목적지에 도착한 사람은 다음 목적지를 향해 언제든 나룻배로 갈아 타거나
신발을 바꿔신는 태도를 당연히 가집니다
목적없는 여행도 과정은 마찬가지입니다
다양하고 창조적인 삶이라 불리는 개개인의 귀중한 가치를 위해
누군가라는 인간들에 의해 만들어진 정해진지식이라는 권위로 부터 언제든 스스로 틀을 깨고
무한사유를 통해 억측이라 불릴지라도 용기있게 가설을 세우며 자신만의 목소리를 가지는게
훨씬 사유하는 인간의 모습에 가깝습니다
그 모습이 참 보기에도 좋습니다
또한 나 아닌 누구에게도 기존의 위대한 권위라는 틀을 강요하지 않으며
그가 정신적으로 억압 받지않게
각각의 존재 모두를 서로 존중해야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인간존재 각각은 무한사유 능력이 있는 놀라운 존재입니다
존중은 중요한 덕목이 됩니다
존중은 나와 타의 쌍방자유를 이끌어 내므로 피차 증폭되며 발전적 가능성이 됩니다
4.억측의 반전과 정설의 무상함
추측 억측과 관련된 논리 오류의 가장 대표적인 예가 천동설과 지동설입니다
또한 억측의 반전 역전상황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까지만 해도 천동설은 당연한 논리이고 결과였다.
천동설은 지구 중심설로 직감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대지는 고정되어 있고
하늘이 회전한다고 본 생각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이것에 철학적 해석과 기하학적 설명이 추가되었고, 중세 봉건시대에는 신학적 권위가 주어졌다.
그렇지만 신학자인 코페르니쿠스는 복잡한 궤도를 갖는 천동설의 행성의 궤적을 좀더 쉽게 설명하기 위하여 그의 저서에 쓰게 되었는데,
차마 지구가 움직인다는 것을 바깥에 알리지 못하고 책으로만 남기게 됐다.
이사실을 이전부터 알고있던 피타고라스학파의 태양중심 운동설은 세상에 나오지 못한채
무려 이천년 가까이 억측으로 취급되며 숨겨지다가,
그 뒤에 아리스토텔레스에 반발한 갈릴레이를 통해 데카르트시대 이후에
천동설이 억측으로 판명나고 지동설을 정설로 받아들이게 됐다.
코페르니쿠스에 따라 세상에 문을 두드린 지동설은 갈릴레이를 거쳐
케플러의 1,2,3 법칙으로 확실시됐다.]
그러나 다시 또 임페투스의 기계적역학 시대를 넘어서
현대물리학에 이르러선 지구만 움직이는게 아니고 하늘, 즉 우주도 팽창수축하며 움직이는 중이며
미세소립자 세계도 끊임없이 운동중이라고 알려집니다
또한 천체우주들이 나선형 움직임을 가지며 역동적으로
불확정성 운동만[uncertainty principle, 不確定性原理] 하는것이 아니라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가를 반복한다고 관측됩니다
결국 천동설도 억측이었고 지동설도 전파망원경 관측자의 입장에선 억측이었던게 됩니다
상기한 예시 뿐만 아니라 인문학 전반에 저런 사례는 유사 이래 무척 많기도 합니다
때때로 나타나는 이러한 억측들을 정설로 여기며 - 인간은 지난 세기를 살다가 갔습니다
새로운 세기가 도래하면 언제든 우리가 정설이라 부르는 이론은 또 다시 뒤집힙니다
결국
대화 토론중 나온 여러 관심사들이 진행되는 과정중에
자신의 인식이 지향하는 바대로 호불호, 취사선택하며
스스로의 자아와 인식으로 - 취하기도 하고 버리기도 하면서 -
자유롭게 무한사유 하는 태도가 가장 바람직하게 느껴집니다
5. 에필로그
이세상에 절대 불변하는 - 완전한 무결점 원리나 원칙 또는 이론 학설 정설은 -
결코 없다는 사실입니다
모든것은 끊임없이 지금 이 찰나의 순간에도 변화중입니다
위대한 사상들도 언젠가는 결국 사라져 갑니다
이런 사실을 이해한다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변화하는 우주처럼
그냥 사람으로 나서 사람답게 살다가면 그것만으로도 바람직하다 여겨집니다
철학이란 무었인가
개인적 견해이자 결론은
철학자는 정확히 말하면 그 누구가 아닌 그냥 "사람"입니다
철학 역시 그 특별한 무엇이 아니라 영겁속에서 인간존재들이 그냥 "살아가는 이야기"들입니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오늘 여기 지금 살아숨쉬는 이순간을 살아간다"는 것보다 위대한 가치가 달리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