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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에 대해 - 1. 백두산 정계비 건립
게시물ID : history_158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눈비비고
추천 : 3
조회수 : 900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1/06/05 07:31:52
이전에 백두산 정계비에 관한 글 하나 올렸었는데, 다시 써 봅니다. -_-a 다들 아시다시피 백두산 정계비가 세워진 이유는 백성들이 국경을 넘어서 산삼을 캐는 등의 일이 잦았기 때문입니다. http://sillok.history.go.kr/ 이곳이 실록 홈페이지니 확인하시면 될 것입니다. "월경"이라고 검색하시면 현종 때까지는 주로 여진족들이 넘어 오는 일이 잦았지만, 숙종 대로 가면 우리 백성이 넘어간 게 큰 문제가 되어 왔습니다. 그 때문에 양국의 국경을 확실히 정할 필요성이 생겼죠. 이 중 압록강과 두만강은 확실한 양국의 국경이었습니다. 문제는 이 사이의 좁은 지역, 특히 백두산 주변이었죠. 여기에 제법 많은 강이 있는데 어느 것이 압록강으로 가고 어느 것이 두만강으로 가는지가 문제였습니다. 특히 문제는 두만강이었죠. 토문으로 검색해 보면 숙종 이전에도 나오는데 이 때 사람들은 두만=토문으로 생각한 듯 합니다. 그 이유를 찾아보자면... 장차 내년 봄에 대신 대여섯 명을 차견(差遣)하여 장백산(長白山) 이남 지방의 지형을 둘러보려고 하므로, 조정의 의논이 바야흐로 압록강(鴨綠江) 동쪽 변방에 길을 내기를 장백산 남쪽을 거쳐 곧장 두만강(豆滿江)까지 이르게 하여, 그들의 행리(行李)7444) 가 닿을 수 있게 하려고 한다 합니다. 1692년, 숙종 18년 1월 18일의 기사입니다. 보면 청나라 관원들이 확인하는 길은 압록강 동쪽 -> 백두산 -> 두만강 순이라는 걸 알 수 있죠. 이후 1712년 숙종 38년에 다시 변경을 심사하러 청에서 오겠다는 말을 듣습니다. 이 때부터 본격적인 탐사가 시작되죠. 압록강(鴨綠江)과 토문강(土門江)의 두 강은 자연히 물로 한계(限界)를 지을 수 있지만, 두 강의 근원이 되는 첫머리에 여러 물이 뒤섞여 흐르는 곳은 확실하게 정하기 어려움이 있으니, 3월 6일의 기사입니다. 보시면 압록, 토문 두 강은 확실히 국경이라고 했고, 그 강 사이의 근원을 찾는 게 확실해 보이죠. 접반사(接伴使) 박권(朴權)이 치계하기를, “총관(摠管)이 백산(白山) 산마루에 올라 살펴보았더니, 압록강(鴨綠江)의 근원이 과연 산 허리의 남변(南邊)에서 나오기 때문에 이미 경계(境界)로 삼았으며, 토문강(土門江)의 근원은 백두산 동변(東邊)의 가장 낮은 곳에 한 갈래 물줄기가 동쪽으로 흘렀습니다. 총관이 이것을 가리켜 두만강(豆滿江)의 근원이라 하고 말하기를, ‘이 물이 하나는 동쪽으로 하나는 서쪽으로 흘러서 나뉘어 두 강(江)이 되었으니 분수령(分水嶺)으로 일컫는 것이 좋겠다.’ 하고, 고개 위에 비(碑)를 세우고자 하며 말하기를, ‘경계를 정하고 비석을 세움이 황상(皇上)의 뜻이다. 도신(道臣)과 빈신(貧臣)도 또한 마땅히 비석 끝에다 이름을 새겨야 한다.’고 하기에, 신 등은 이미 함께 가서 간심(看審)하지 못하고 비석 끝에다 이름을 새김은 일이 성실(誠實)하지 못하다.’는 말로 대답하였습니다.” 5월 23일의 기사입니다. 압록강의 근원을 찾아냈고, 두만강의 근원도 토문강으로 찾아낸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비를 세워 "서위압록 동위토문"이라는 말을 한 거죠. 백두산 정계비를 세운 목적은 두만강의 근원으로 추정되는 토문강을 찾은 거였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하죠. (중략) 당초 청차가 백두산에서 내려와 수원(水源)을 두루 찾을 때 이 지역에 당도하자 말을 멈추고 말하기를, ‘이것이 곧 토문강(土門江)의 근원이라.’고 하고, 다시 그 하류를 찾아보지 않고 육지(陸地)로 해서 길을 갔습니다. 두 번째 갈래에 당도하자, 첫번째 갈래가 흘러와 합쳐지는 것을 보고 ‘그 물이 과연 여기서 합쳐지니, 그것이 토문강의 근원임이 명백하고 확실하여 의심할 것이 없다. 이것으로 경계(境界)를 정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상이 여러 수원의 갈래로 경계를 정하게 된 곡절의 대략입니다. (중략) ‘흐름을 따라 거의 30리를 가니 이 물의 하류는 또 북쪽에서 내려오는 딴 물과 합쳐 점점 [[동북(東北)을 향해 갔고, 두만강에는 속하지 않았습니다.]] 기필코 끝까지 찾아보려고 한다면 사세로 보아 장차 오랑캐들 지역으로 깊이 들어가야 하며, 만약 혹시라도 피인(彼人)들을 만난다면 일이 불편하게 되겠기에 앞질러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대개 청차(淸差)는 단지 물이 나오는 곳 및 첫 번째 갈래와 두 번째 갈래가 합쳐져 흐르는 곳만 보았을 뿐이고, 일찍이 물을 따라 내려가 끝까지 흘러가는 곳을 찾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본 물은 딴 곳을 향해 흘러가고 중간에 따로 이른바 첫 번째 갈래가 있어 두 번째 갈래로 흘러와 합해지는 것을 알지 못하여, 그가 본 것이 두만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인 줄 잘못 알았던 것이니, 이는 진실로 경솔한 소치에서 나온 것입니다. 12월 7일, 겸문학 홍치중이 팻말이 세워진 곳에 가 보고 숙종에게 보고한 내용입니다. 좀 분석해 보겠습니다. [흐름을 따라 거의 30리를 가니 이 물의 하류는 또 북쪽에서 내려오는 딴 물과 합쳐 점점 동북(東北)을 향해 갔고, 두만강에는 속하지 않았습니다.] -> 두만강에는 속하지 않았다고 했죠. 목적이 확실히 나옵니다. 두만강으로 흘러가는 근원을 찾는 겁니다. [기필코 끝까지 찾아보려고 한다면 사세로 보아 장차 오랑캐들 지역으로 깊이 들어가야 하며, 만약 혹시라도 피인(彼人)들을 만난다면 일이 불편하게 되겠기에 앞질러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 백두산 정계비에 적힌 토문강이 동북으로 흘러가고, 그 끝을 찾으려면 오랑캐 땅으로 가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게 우리 땅이라면 이런 말이 안 나왔겠죠. [그가 본 것이 두만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인 줄 잘못 알았던 것이니, 이는 진실로 경솔한 소치에서 나온 것입니다.] -> 다시 한 번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나옵니다. 두만강으로 흘러가는 걸 찾아야 됐는데 잘못 찾은 겁니다. 결국 대~~~~충 둘러봐서 토문강이 두만강으로 흐르는구나 했는데 정작 그 토문강은 동북 쪽으로 갔다는 거였습니다. 이에 대책이 필요하다고 하고 숙종도 윤허하는데 그 뒤에 기록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영조 때의 기사를 보면 추측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백두산 정계(定界)에 대해서는 혹 부족한 곳이 없던가?” 하니, 윤용이 말하기를, “토문강(土門江)에 목극등(穆克登)의 비(碑)가 있는데 여기서 바라보니, 모두 공활(空闊)하여 쓸모없는 땅이었습니다. 잃더라도 해로울 것이 없겠습니다.” 영조 21년, 1745년 8월 14일자 기사입니다. 당시 청은 만주를 봉금지역으로 설정해서 한인들이 들어오지 못 하게 했고, 어차피 차지한 중원이 중요하지 이 곳은 딱히 신경을 안 썼습니다. 조선도 이 기사에서 보듯 그렇게 신경을 안 쓴 것으로 보입니다. 딱 공무원의 태도죠. 문제는 있는데 대충 처리했으니 끝이다. 이상이 백두산 정계비의 설치 목적입니다. 세 줄 요약하죠. 1. 조선 백성들이 국경을 넘으면서 국경을 확실히 할 필요성이 생겼다. 2. 압록-두만 사이의 땅은 국경이 확실하지 않았다. 3. 토문강이 두만강으로 흐르는 걸로 착각하고 백두산 정계비를 세웠다. 시간이 흘러 고종 대에 이르러서 이 단순한 착각은 양국의 국경문제로 커져 버립니다. 하지만 이건 굴욕의 역사가 아니었습니다. 대국 청나라에 맞서 우리 땅을 단 한 치라도 더 지켜내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보이는 회담이었죠. 그리고 결국 지켜냈습니다. 거기에 대한제국은 청나라가 약해지자 그 땅을 뺏으려고까지 했죠. 명분도 있었습니다. 정계비에는 분명 토문강이 경계라고 돼 있었다는 것, 우리 백성이 거기서 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첨언하자면... 간도는 間島, 즉 사이 섬이라는 의미입니다. 강을 건넜다가 붙잡힌 백성들이 "우리는 청나라 땅으로 간 게 아니라 강 사이의 섬으로 간 거다."고 변명을 해서 생긴 말이죠. 고종 이전에는 간도라는 말 자체를 실록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즉 간도라는 말 자체가 정치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고, 지금도 말이야 남아 있지만 그 확실한 위치 및 범위를 지정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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