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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영웅 혹은 폭군, 스탈린(12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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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리볼버오셀롯
추천 : 2
조회수 : 669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1/06/14 16:48:53
역사게시판의 대표적 비인기 게시물이 돌아왔습니다. 시작했으니 마무리는 지어야죠. 이번 글은 좀 짧습니

다. 이 글을 쓰신 분이 독소전 이야기를 빨리 마무리하고 한국전쟁과 스탈린의 말년을 이야기하고 싶어하셔

서....

32.쿠르스크 전투

1943년, 독일은 또 한번의 기적을 일구어 냈습니다. 바로 큰 상처를 입은 독일군이 또다시 

재기한 것이었죠.(좀비같은 놈들..) 무려 70만에 달하는 독일 노동자들이 군에 입대하였고, 

독일군은 마지막 힘을 짜내서 병력을 어느 정도 재건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동부 전선에서

는 만슈타인의 선전으로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린 독일군이 하르코프 등을 다시 재점령하고 

하계 공세를 준비하고 있었죠. 만슈타인은 쿠르스크 주변의 돌출부에 소련군이 집중되어 있

는 점을 착안 이 돌출부를 양옆에서 절단해 들어가 포위한다는 이른바 치타델 (성채 ) 작전

을 세웠습니다. 본래 만슈타인의 의도는 적이 이 지역의 방비를 철저히 하기 전에 쳐들어가 

적을 격파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만슈타인의 계획은 이번에도 군사 아마추어 히틀러

에 의해 방해를 받게 되었죠... 히틀러는 새로운 전차와 병력이 보급되는 6월 이후로 공세를 

늦추자고 주장했습니다. 이 천금 같은 시기에 소련군 지휘부는 이번에는 41년이나 42년같

은 오판을 다시 하지 않았습니다. 주코프는 쿠르스크가 독일군의 다음 목표일 것으로 생각

했고, 스탈린은 이번에도 선제 공격을 하고 싶어 했지만 주코프 원수는 잘 준비된 방어선 

안쪽으로 독일 기갑부대를 유인해서 소모시킨 후 후방의 예비대를 동원 이들을 격파하자고 

설득했습니다. 비록 스탈린이 히틀러와 닮은 꼴 독재자긴 하지만 그는 이번엔 주코프의 의

견에 따르기로 했습니다.(거듭 말하지만 이것이 히틀러와 스탈린의 차이점이었고, 이 차이가 

결국 승패를 가르는 요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1943년 7월 5일에 이르러서야 독일군의 

성채 작전이 시작되었을때 독일군이 직면한 것은 아주 잘 만들어진 적의 요새화된 방어 진

지였습니다. 그러나 독일군의 공격도 매서웠습니다. 북쪽의 제9 기갑군을 이끄는 모델과 남

쪽의 제4 기갑군을 이끄는 호트는 쿠르스크 돌출부의 양쪽으로 강력한 공격을 가했고, 7월 

12일, 프로호로프카에서는 사상 최대의 전차전이 벌어졌습니다. 양측이 1000대에 달하는 

전차를 동원해서 치열하게 싸웠죠. (과거 이 전투에서 독일군 전차의 수가 600대로 제시

되기도 했으나 최근의 연구에선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적었다고 합니다) 이 때 700대나 되는 

전차 (주로 소련 전차) 가 파괴되었습니다. 독일군은 정예한 군대답게 잘 싸웠으나, 이 시기

에 이르면 소련군도 더 이상 오합지졸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독일군은 이번에는 목표를 달

성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고 말았죠... 그러나 이 전투가 어이 없이 끝나게 된 것은 사실 

히틀러 때문이었습니다. 7월 10일 서방 연합군이 시칠리아에 상륙하자 히틀러는 병력을 돌

리기로 결심하여 7월 13일 결국 이 작전은 취소되고 맙니다. 당시 만슈타인은 이 때가 아

니면 소련의 주력을 격파할 수 없다고 거듭 설명했으나 결국 허사였습니다. 사실 만슈타인 

의견대로 전투를 계속했으면 결국 독일군의 승리로 마무리지어 졌을 지는 알 수 없는 일입

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히틀러의 후퇴 지시로 독일군이 쿠르스크 전투에서 패배했다는 

것이죠. 쿠르스크 전투에서 소련군이 입은 피해는 사실 막대했습니다. 독일군 역시 막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양측에는 한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소련은 손실을 극

복할 수 있었지만 독일은 그럴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본래 인적, 물적 자원에서 우위인 소

련의 장점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었죠.. 여기에 연합군의 전략 공습이 거둔 성과로 

인해 독일의 전쟁 수행 능력은 군수 장관 슈페어의 선전에도 연합군 처럼 커질 수가 없었습

니다. 쿠르스크 전투 이후 소련의 승리는 분명해졌습니다. 독일군은 드네프르 강까지 후퇴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43년 11월 6일, 러시아 혁명 기념일에 맞게 붉은 군대는 키에프를 

탈환하는데 성공합니다. 스탈린은 이 일을 기념하기 위해 성대한 불꽃놀이와 파티를 준비했

지요. 성대한 파티에 술까지 넘쳐나서 외교관들이 의식을 잃고 실려나갈 정도였다고 합니

다. 다만 아직 독일군은 그냥 무너지기엔 강한 전력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소련군은 한번 더 

강력한 한 방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1.쿠르스크 전투 상황도입니다.

이하 쿠르스크 전투를 묘사한 그림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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