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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스는 형법 175조를 개정할 때 두 가지 근거를 댔다. ‘동성애 전염을 예방’하여 ‘독일 민족의 건강을 지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성애가 유독 나치스 시대에만 전염병처럼 번질 이유는 없고 독일 민족의 건강을 위협할 까닭도 없다. 전쟁 체제 준비에 들어간 나치스에게 절박한 것은 체제의 규율을 잡고 병력을 공급하는 문제였다. 따라서 출산을 장려하는 가족 우대 정책이 선전되면서 출산과는 무관한 동성애를 체제를 위협하는 범죄로 낙인 찍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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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독일의 여성관: 독일, 이탈리아와 같은 파시스트 전체주의 국가는 개인과 가정을 국가를 위한 도구로 간주. 보수적, 전통적 성구분에 입각한 남녀의 생물학적, 심리적 차이를 당연시. 남성은 국가에, 여성은 가정에 충실함으로써 국가에 기여한다고 간주. 히틀러는 여성을 인류의 생산자, 출산은 여성의 사회적 의무로 강조. 여성의 선거권 획득과 노동 시장으로의 유입, 가족계획 등을 비난, 여권 운동가들을 비도덕적이고 사회 혼란을 야기하는 자로 가치 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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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여성은 새롭게 병합한 동부 지역에 정착하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아이를 가질 것이 권장되었다. 이러한 출산 장려 정책으로는 레반스라움 프로그램 확장과 제3제국 내에서 적어도 8명 이상의 아이를 낳은 독일 여성에게 수여되는 독일 어머니 명예 훈장으로 알려진 주 훈장 제정이 있었다. 마르틴 보어만과 히믈러의 인구 성장 촉진을 위한 노력으로 새로운 결혼 법안인 일부다처제 허용 법안도 있었다.[32] 히믈러는 적어도 2000년대에는 독일 인구가 약 3억명일 것이라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