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09 13:31:34추천 4
사형존폐 논란은 단순히 '저 사람은 아주 나쁜놈이니 죽어 마땅하다'라는 감정만으로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사형제도라는게 물론 말그대로 '죽어 마땅한' 극악무도한 범죄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사람이 사람을 죽여 마땅할 어떤 이유라는게 존재한다'는 인식을 퍼뜨리게 되지요. 사형제도 존폐는 단순히 저 범죄자를 살려둬야 하느냐 죽여야 하느냐 해당 범죄자의 인권을 가지고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회 구성원 전체의 사고와 인식에 큰 영향을 미치는 문제인 것이죠.
'아무리 심각하게 나쁜 일을 저질렀다 한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것이, 국가가 국민의 목숨을 빼앗는 것이 인정되어야 하느냐'하는 문제는 생각보다 매우 복잡한 문제입니다. '아니 뭐 죽을만한 (심각한 나쁜) 짓을 했으니 죽어야지'하실지 모르겠지만, '죽을만큼 심각하게 나쁜 짓'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요? 네, 그것 또한 사람이 정합니다.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그런 기준은 매우 주관적이라 각각의 생각이 천차만별이죠.
극단적으로 말하면 누군가에겐 '이런 짓 하면 죽어 마땅한 것'이 다른 누군가에겐 '별 대수로울것 없이 넘길 수 있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거죠. 사형제도는 법적 처벌에 관한 것이니 모두의 합의를 통해 만들어지는거니까 다르다구요? 그 사회적 합의가 항상 옳은 것만을 지향한다고 볼 수 있을까요?
제일 쉬운 예를 들자면, 우리는 박근혜를 사회적 합의 제도인 투표를 통해 뽑았습니다. 나치 독일의 히틀러도 당시 독일국민들의 사회적 합의를 통해 권력을 잡았구요. 극악무도했던 일본제국은 또 어떠했던가요. 게다가 이런 사회적 합의 과정 역시도 때로는 부당한 방법이 많이 개입되기에 정당했냐 아니냐 논란이 많이 생기는 부분이죠. 지난 대선 과정에서 벌어진 수많은 불법들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권은 권력을 잡았습니다. 박정희, 전두환 같은 독재자들도 반란을 일으켰으나 힘을 가지고 반대파를 찍어눌러 '강제적인 사회 합의'를 만들어냈죠. 그러한 그릇된 정권들 역시 '국가'의 이름으로 법적 처벌을 시행해 왔습니다. 실제로 부당하게 이뤄진 사형도 수없이 많았구요. 그러한 사형과, 사형찬성론자 분들이 말하는 '올바른 사형(?)'의 차이가 뭘까요? 단지 '누군가 저질렀을때 죽어 마땅한 짓에 대한 기준'을 다르게 잡고 있을 뿐 입니다. 그러나 이 기준은 지극히 주관적이며 사회와 시대상의 변화에 따라 널뛰듯 이리저리 손쉽게 옮겨질 수 있는 유동적인 거라는 거죠. 지금 우리가 정당하다고 내린 사형판결이 불과 십수년 뒤의 우리 사회에선 부당했다고 평가가 뒤집어 질 수도 있습니다. 군사독재 정권 시절 이뤄진 수많은 사형이 지금와서 줄줄이 재평가 되고 있죠. 지금 우리 사회는 그때와는 다르며 무조건 올바른 기준만으로 사형판결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건 오만이죠. 저 역시 민주주의는 반드시 지향되고 수호되어야 할 선한 가치이며 독재와 부당한 국가권력에 반대하는 사람이지만, 오늘날의 지금 우리가 무조건 올바른 판단만 내리고 살고 있다고 믿는 것은 분명한 오만입니다.
좀 더 단순한 예를 들자면, 사형제도는 사회적으로 '사람이 사람을 죽여야 마땅한 어떤 일'이란게 존재한다는 인식을 심어줍니다.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에게도요. 이 인식이란게 왜 무서우냐 하면 말이죠. '어떤 경우에라도 무슨 짓을 저질렀더라도 사람이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것만은 안된다'라는 인식을 가진 사람은, 그 자의적 기준이란게 작동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아주아주 심각한 나쁜 짓을 저질렀다면 죽어도 된다'란 인식을 가진 사람은 그 '심각하게 아주 나쁜 어떤 짓의 기준'이 평상시엔 정말 매우 공적으로 나쁜 짓을 저지른 악인 수준으로 높을 허들로 설정이 되어 있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유연하게 낮아지는 순간이 오게 됩니다. 술 취하고 심신이 미약한 상태에서 감정적으로 매우 흥분해서 순간적이고도 우발적이게, '오늘 여러모로 일진도 최악이라 기분 나쁜데 저 새끼가 나한테 개인적으로 모욕되는 말을 했어, 이정도면 저놈에게 가장 극단적인 처벌을 내려도 되겠어'라는 지극히 자의적 해석이 내려질 위험이 있다는 거죠.
한 개인이 술취해서 우발적 살인 저지르는 거랑 수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합의를 통해 만든 국가기관이 엄정한 법적 절차를 거쳐 내리는 사형집행 결정을 똑같이 보는건 너무 거친 일반화 아니냐구요? 다시한번 말하지만 그 수많은 사람들과, 그들이 만든 사회적 합의와, 그것을 통해 만들어진 국가기관, 그리고 그 기관이 시행하는 법적 절차 이 모든 것 역시 사람들이 하는 일입니다. 항상 올바를 수만은 없어요. 어느 극소수의 잘못된 사람들이 그 '사형판결에 대한 기준점'을 엉뚱한 곳에 가져다 놓는 것 만으로도 사법살인이 무자비하게 벌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웠습니다. 또한, 수많은 사람들이 열광적으로 하나의 합의를 향해 돌진해 합의점을 이뤄낸다고 해서 그게 항상 옳은 지점에 있지만은 않다는 것 역시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워왔습니다.
사형제도 반대론은 사형수의 인권을 생각하는게 아니에요. 사형수라는 어떤 물건, 사안에 대해 차갑게 생각하고 겨우 그딴 인간 하나를 처벌하는 문제 때문에 우리 사회 전체에 '사람이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일'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바뀌는가에 대한 큰 그림을 보자는 것이죠. 그리고 사형제 폐지를 통해 만약 사회 전체의 이 중요한 인식에 어떤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그깟 인간 쓰레기 살려두고 밥 먹여주는데 쓰이는 세금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사회적 비용이 아닌가 하는 문제란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