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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비우스의 띠’ 같은 영화 검열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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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릴케
추천 : 3
조회수 : 90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9/17 21:05:20
지난 6월18일 ‘영화감독 김기덕 드림’이라는 문구로 끝나는 메일 한 통이 왔다. <뫼비우스>가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것에 대한 감독의 착잡한 심정을 담은 글이었다. 제한상영관이 없는 우리 현실에서는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는다는 건 곧 영화를 상영하지 말라는 의미다. 이럴 때 ‘당하는 쪽’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재분류’ 신청을 하는 것. 간단히 이야기하면 다시 등급 심의를 받는 것이다. 하지만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영화는 3개월 후나 재분류가 가능하다. 개봉 스케줄을 포기해야 한다. 또 하나의 방식은 ‘재심의’다.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의 지적을 받은 장면을 삭제한 후 다시 심의를 하는 것이다. 결국 김기덕 감독은 재심의를 선택했고, 영등위가 지적한 5가지 지적(근친상간 장면 등)에 근거해 21장면을 자진 삭제해 1분40초의 러닝타임을 덜어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Reuter=Newsis</font></div>김기덕 감독(위)은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 직후 “성과 폭력에 대한 기준을 알았으니 다시는 지적받지 않도록 조심하겠다”라고 냉소했다.  
ⓒReuter=Newsis
김기덕 감독(위)은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 직후 “성과 폭력에 대한 기준을 알았으니 다시는 지적받지 않도록 조심하겠다”라고 냉소했다.
그것은 배급 시기를 놓치지 않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계획된 시기에 극장에서 상영되어야 스태프와 배우들의 지분을 챙겨줄 수 있다는, 감독 겸 제작자로서의 판단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 제한상영가 판정이 이어졌고, 이에 김기덕 감독은 7월26일 찬반 시사를 열었으며 이 와중에 <뫼비우스>는 베니스 영화제 공식 경쟁 부문에 올랐다. 이후 <뫼비우스>는 약 3분을 잘라낸 세 번째 버전으로 드디어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게 된다. 이에 김기덕 감독은 메일을 보내 “이 영화를 온전히 보고 싶어하는 관객분들께 죄송하다”라며 (진심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세 번째 재심의에서나마 청소년 불가로 상영을 허락해주신 영등위에 감사드리며 성과 폭력에 대한 기준을 알았으니 다시는 지적을 받지 않도록 조심하겠다”라는 말을 곁들였다.

사실 ‘제한상영가’ 등급은 2008년에 ‘헌법 불합치’ 판결을 받은 제도다. <천국의 전쟁>이라는 영화의 수입사가 문제 제기를 했고, 이에 헌법재판소는 그 어떤 법도 영화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할 수 없다는 의견을 밝혔던 것. 하지만 영등위는 계속 <천국의 전쟁>에 제한상영가의 철퇴를 날렸고, 법원마저 영등위의 결정이 정당하다며 손을 들어주었다. 한국에서 영등위는 헌법 위에 있는 초법적 기관인 셈이다.

일제강점기부터 이어온 ‘검열의 역사’ 

그러나 이런 일이 어디 하루이틀 일이랴.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된 검열의 역사는 미군정 시기를 거쳐 박정희 정권 이후까지 이어졌으며, 1980년대 초반까지 ‘제작 전엔 시나리오를 심의하고, 만들어진 후엔 검열관의 가위질이 이뤄지는’ 이중 통제가 이 땅에서 자행되어왔다. 이 시절 정말 갖가지 해프닝이 있었으니,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 (1961)은 “가자!”라는 대사가 북으로 가자는 의미라며 상영 중단 사태를 맞기도 했다. 5·16 쿠데타 직후의 일이었다. 사실 이 시기 영화법은 별게 아니었다. 반공법과 국가보안법이야말로 무소불위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이만희 감독의 <7인의 여포로>(1965)는 대표 사례다. 남한의 간호장교를 겁탈하려는 중공군을 북한 장교가 물리치자 간호장교가 “멋있는 행동이었어요”라고 말하는데, 북한군을 너무 멋있게 그렸다며 이만희 감독은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40일 동안 갇혀 있었고 그 벌(?)로 반공영화 한 편을 만들어야 했는데, 그렇게 나온 <군번 없는 용사>(1966)도 결국 문제가 되었다. 신성일이 북한군으로 나온 것. 중앙정보부는 “저렇게 잘생긴 배우를 북한군에 캐스팅한 의도가 무엇이냐”라며 추궁했다.

  <뫼비우스>는 약 3분을 잘라낸 세 번째 버전으로 상영할 수 있게 되었다.  
<뫼비우스>는 약 3분을 잘라낸 세 번째 버전으로 상영할 수 있게 되었다.
이만희 감독을 옹호했던 유현목 감독은 <춘몽>(1967)에서 여성의 나체 장면을 시도했는데(살색 타이즈를 입힌 수준), 최종 편집에서 뺀 이 장면을 어떻게 구했는지 검사가 보았고, 유현목 감독은 외설죄로 징역 1년6개월에 영화감독 자격 정지 판결을 받았다(다행히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1970년대에 가장 큰 수난을 받았던 영화는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1975). 시나리오 단계부터 심의로 쑥대밭이 된 영화는 완성 후에도 다섯 번 검열한 끝에 30분이 잘려나갔고, 송창식이 부른 주제가 ‘고래사냥’은 금지곡이 되었으며, 원작자 최인호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래’의 의미가 무엇인지 밝혀야 했다. 1980년대에는 <어우동>(1985) 같은 영화가 ‘민중사관에 입각해 만들어진 운동권 영화’라는 누군가의 투서로 상영 중에 대폭 삭제해야 했고, <중광의 허튼소리>(1986)는 불교계가 검열 당국에 압력을 넣어 13장면이 잘렸다. 

1990년대라고 해서 크게 나아진 건 없었다. 1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작이었던 <크래쉬>는 10분을 삭제해 국제적 망신을 샀다. 다행히 1996년에 검열에 대한 위헌 판결이 나긴 했지만, 결국 (사실상의 상영금지인) ‘등급 보류’라는 제도가 생겼고, 이것이 지금의 ‘제한상영가’로 이어지고 있다. ‘등급 보류 1호’였던 <노랑머리>(1999)는 오히려 심의로 노이즈 마케팅 효과를 거두는 아이러니를 낳기도 했다. 이후 <거짓말>(2000), <죽어도 좋아>(2002) 등이 장면을 삭제하거나 모자이크 처리를 해야 했고, <뫼비우스> 전에는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2010), <줄탁동시>(2012) 등이 피해를 보았다. 

한편 박정희 대통령 암살을 그린 <그때 그 사람들>(2005)에 대해 고인의 아들인 박지만은 상영중지 가처분 신청을 냈는데, 판사는 이를 기각하면서도 영화 앞뒤에 삽입된 장례식 기록 화면을 삭제하라고 명령했다. 그 장면 때문에 영화 내용을 사실로 믿을 수도 있다는 이유였다. 씁쓸하고 우울한 해프닝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나리’들의 명령에 의해 영화를 잘라내야 하는 세상에 살아야 할까? 해결책이랍시고 늘어놓기보다는, 차라리 미담 하나 소개할까 한다. 20년 전 <크라잉 게임>(1992)이라는 영화가 한국에서 개봉될 때, 초미의 관심사는 이 영화의 극적 반전 포인트인 성기 노출 장면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였다. 그런데! 극장에서 우린 버젓이 그 장면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시기 공연윤리위원회 위원장은 이후 부산국제영화제의 산파가 되는 김동호 위원장이었다. 그분을 뵐 기회가 있었을 때 당시 일에 대해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규정상 안 되지만, 그 장면이 빠지면 영화 전체가 무의미해지니까 허용한 거죠.” 지금의 심의위원들이 이런 상식만 지녀도 심의를 둘러싼 논란의 상당 부분은 해결될 것이다. 하지만 당시 김동호 위원장은 <너에게 나를 보낸다>(1994), <올리버 스톤의 킬러>(1994) 등을 보호(?)하고 소련 영화를 해금시키는 등 소신 행정을 펼치다 결국 사임하게 되었으니…. 지금의 심의위원들에게 상식을 가져달라고 호소하는 건 너무 무리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7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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