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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이혼 합의서
게시물ID : history_1697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오래된유머
추천 : 15
조회수 : 1331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14/07/09 11:43:23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4171217381&code=950312

“애통하구나. 가슴이 미어진다. 아내는 나와 함께 어려운 살림속에서도 동고동락해 왔는데 뜻하지 않게 오늘 아침에 나를 배반하고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가버렸으니 슬프다. 저 두딸은 장차 누구에게 의지하여 자랄 것인가. 칼을 품고 가서 그녀를 죽이는 것이 마땅한 일이나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장차 앞길이 있기 때문이다. 십분 생각하여 용서하고 엽전 35냥을 받고 우리의 혼인관계를 파기하고 보낸다.”

아내의 외도를 원망하는 남성의 한탄은 모 방송 프로그램인 ‘사랑과 전쟁’의 대사가 아니다. 조선시대 한 남성의 심경을 담은 이혼합의서의 내용이다. 전북대 박물관에는 이런 고문서가 3만여점에 달한다. 이 박물관은 지난 2011년 개관 50주년을 맞아 최신식 신축건물로 새단장했다. 소장유물은 5만여점으로 국내 최대규모다.

고문서들 가운데는 당시 백성들의 고달픈 삶과 애환을 오롯히 담아낸 문건들이 적지 않다. 

몹쓸 병 때문에 가산을 탕진하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부득이 자식이나 자신의 몸을 노비로 파는 계약문서는 고단한 생활상이 그대로 묻어난다. 병환으로 누워계신 어머니가 소고기를 먹고싶다하니 소를 잡게 해달라고 수령에게 호소하는 내용도 있다. 

고위관리의 부패상도 드러난다. 조선 후기 전라도 장수현 계남면에 살았던 양사헌이라는 사람은 노름빚 때문에 고을 수령이 있는 관가에 끌려가게 됐다. 노름빚을 갚지 못한 양사헌은 곤장을 맞고 감옥에 갇혔다. 그 가족들은 양사헌을 구하려고 노름빚 170냥 중 50냥을 선납하고 빚쟁이와 합의를 보려 한다. 수령은 양사헌에게 나머지 빚 120냥을 자신에게 주면 합의를 주선해 주겠다고 회유해 돈을 가로챈다. 양사헌은 탄원서를 작성해 수령에게 돈을 받았다는 ‘공증’을 요구하며 맞선다. 탄원서 말미에는 “(잔말 말고) 처분을 기다려라”라는 수령의 성의 없는 답장이 적혀있다. 

전북대 박물관이 소장한 고문서들은 15~20세기에 주로 작성된 것이다. 이 대학 사학과가 주축이 돼 고문서 발굴 조사를 거친 뒤 기증과 기탁, 구매를 통해 박물관에 자리하게 됐다. 전북대는 ‘호남기록문화시스템 구축사업’을 벌여 이 중 1만7700여점의 고문서를 우리말로 번역했다.
이종철 학예연구사는 “고문서들은 정사에서 다루지 못한 백성들의 생활상이 디테일하게 묘사돼 있고 구두약속이 아닌 훗날 문제소지를 없애기 위해 명백한 증서를 나워가졌다는 점이 흥미롭다”면서 “도장이 없는 관계로 수결하거나 수장을 그려넣기도 했고 글을 잘모는는 백성들이 많아 대필을 해주고 그가 증인이 된 흔적도 있다”고 말했다.

1872년 곽원석이라는 백성이 자신의 딸을 100냥을 받고 김생원에게 팔면서 작성한 문서. 오른쪽은 아버지가 작성했고 왼쪽은 어머니가 작성했다. 글씨는 박생원의 노비 소복래가 작성하면서 증인을 선 것으로 돼 있다. 왼쪽 손바닥 그림은 어머니의 손도장이다./전북대박물관 제공



조선시대 최덕현이 아내를 떠나보내면서 작성한 이혼합의서./전북대박물관 제공

밀도살을 국법으로 금지하고 있던 조선시대에 어머니를 위해 소를 잡게 해달라고 수령에게 탄원한 문서. 수령은 부모를 봉양하고 싶은 마음이 가상하다면서 도살을 허락했다./전북대 박물관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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