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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몰랐지만 나는 곤충을 좋아했었다.
게시물ID : gomin_169900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재굴
추천 : 0
조회수 : 33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4/10 01:35:38
 
 나는 곤충을 좋아했었다.

 단 한번도 그 사실에 집중해본 적이 없었기에 잘은 몰랐지만

 아마도 어릴 적부터 열렬한 곤충애호가가 아니었나 싶다.  

 읽는 것이야 원래부터 좋아했지만은, 특별히 파브르 곤충기나 각종 곤충도감을 찾아 읽었었던 기억이 난다. 거미에 물린 적이 있어 무서워하면서도, 지나가는 개미를 거미줄에 던져넣으며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포식행위를 온종일 지켜본 기억도 난다. 거미들은 늘 잡은 먹이를 잘 포장하여 비축해둔다.

 초등학생때는 왠종일 인터넷 곤충 커뮤니티나 하며 시시덕 대기도 했다. 디시인사이드하면 누구나 그런 것들을 연상하지만 내게는 어린 시절 충왕전 (세계각지의 포악한 곤충들을 싸움 붙이는 비디오 시리즈) 결과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이던 추억의 장소이다. 그 당시 나는 바퀴벌레와 곱등이를 매우 혐오했고 그 신봉자들을 저주했었다. 숭배하는 곤충을 놓고 혈전을 벌이는 것은 곤충갤러리의 오랜 문화다. 특별히 좋아하는 곤충은 없었으나, 한국의 장수말벌에 꽤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말벌 중 가장 크고 포악하며 턱힘도 좋은데다, 충왕전에서도 에이스였으며, 결정적으로 나와 출신이 같다는 점에서 호감 요인이 있었다.

 이렇듯 추억을 나열하자면 꽤나 긴 문장이 될 수도 있지만 그땐 그저 재미였고, 단순히 나의 벌레를 징그러워하는 면이 관심으로 표출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으레 어린이들이 그렇듯 금새 다른 취미거리가 생기고 오랫동안 잊어버리고 살았으니까. 

 이십대 중반 무렵 한날은 연애 도중 이었는데, 나는 조금 응큼한 생각으로 여자친구를 약간 으슥한 벤치로 데려갔더랜다. 늦봄, 늦은 저녁이었고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오래된 수녀원을 공원으로 개조한 나쁘지않은 데이트 장소였다. 많은 이들이 아는 곳은 아니라 둘 밖에 없었고, 나는 꽤 성공적인 유도였노라 속으로 자축하며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데 불현듯 그녀가 내게 물어왔다.

 "우와 이것봐요. 개미가 정말 많네요. 얘네는 이름이 뭘까요?"
  
 어렴풋한 기억에 이러한 말이었던 것 같다. 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에 흙이 많은 공원이라 벤치 밑으로 개미들이 페로몬을 뿜으며 부랴부랴 지나다니고 있을 때였다. 분명히 어떠한 대답을 바라고 한 질문임을 알았음에도 나는 큰 고민하지않고 대답했다. "저기 머리가 적당히 크고 무난하게 생긴 놈이 곰개미고 재빠르게 주위를 어슬렁 거리는 애는 사무라이 개미야."

 예상치 못한 친절하고 구체적인 대답에 당황하던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그 적잖은 당황을 희석시켜줄 요량으로 나도 모르게 뱉은 대답에 주석을 달았다. 사무라이개미는 곰개미 알을 훔쳐 부화시킨 다음 노예로 삼아 부려먹으며 이름의 유래는 어떻고 졸지에는 저 곰개미의 모습이 우리네 민족같지 않냐는 참으로 데이트 중 알맞은 소리를 해댔다. 지식을 자랑하려던 요량보다는 뭔가 그 당시 그런 이야기를 하는 내가 반가웠다고 생각한다. 사실 개미들이 반가웠다. 이상하게 그 녀석들을 보니 이름들이 떠오르더란다. 보도블럭 옆을 애써 기어다니는 땅개미 녀석들도 눈에 보이고.

 생각보다 데이트 결과는 좋았으며 나의 개미 이야기를 그녀는 꽤 흥미롭게 들어주었다. 끝에는 개미박사라는 별명도 얻게되었고. 이때까지도 나는 내가 곤충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그닥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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