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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 볼수록 빠져들면 다행인 추리소설. (스압)
게시물ID : humorstory_1699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조빈
추천 : 0
조회수 : 568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09/08/25 00:33:27
「워메! 이게 뭔 일이여!」

조용한 마을에 노인의 절규가 울린다.

「무슨 일이래?」
「몰라요, 점심 밥 차려주고 잠깐 요 아래 나갔다 왔는데 이렇게 쓰러졌다지 뭐에요.」
「캬.. 달리기 하나는 끝내주던 놈이었는데..」
「그러게 내가 진작 데려간다고 했는데 그 고집을 쓰더니. 키운 돈만 아까운 거지 뭐.」

마을 사람들이 수근덕대기 시작한다. 이윽고 노인의 슬픔은 분노로 변한다.
지금 이 노인. 아마도 여기 널브러져있는 ‘이것’.. 사망 상태에 온 것을 나는 직업 특성상 ‘이것’이라고 부른다. 노인은 ‘이것’보다 더 큰 피해자일지도 모른다.
확실치는 않지만, 계속 본인이 ‘이것’의 아비라고 주장한다. 이목구비는 고사하고 이 노인에과 연관될 유전자가 전혀 있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검게 그을린 피부 색 하나는 비슷해보인다.

「누구여! 어떤 죽일 놈이 내 아들을 죽인겨!」
「어허, 이것 좀 놓고 말해요. 내가 그랬수? 난 이 녀석 갓난쟁이 때 보고 땡이라고요!」

서른 쯤 됐을까. 노인과 티격태격하는 이 남성은 내가 자주 가는 시내 자동차 정비소의 직원이다. 소싯적 기계를 잘 만져서 큰 도시로 나갈 가능성이 커보였는데, 지금은 뽀얀 피부의 아내를 얻어 살림을 꾸려 나가고 있다. 이곳에서 금발인 그녀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건 서툰 말솜씨다.

「하롸버ㄹ지, 이 살람 차칸 살람이에요.」

세상은 좁고도 넓다는 말도 있으니.

몇 발치 더 뒤로 움직여본다. 현장의 많은 부분을 담기 위해서다. 운반팀이 오기 전까지는 많은 것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 다 찾은 후에 연락을 했던가?

수상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별다른 사고의 흔적은 보이지 않으며 확인된 면으로는 외상이 전혀 없다. 규정상 그곳에서 뜯어봐야 알겠지만... 독살인가? 아니면 스트레스성 발작? 알러지? 그러고 보니 ‘이것’은 자살 할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라고 정리된다. 편안한 잠자리, 평온한 환경, 알아서 가져다주는 식사.

잠깐, 알아서 가져다주는 식사? 섣부른 판단일 수도 있겠지만 내 주관은 이쪽으로 기운다.

「오늘 오전부터 사건 이전까지 이 현장 주변에 한 발치라도 발을 대셨던 분들은 앞으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뭐야, 나온 사람 중에 범인이 있다 이거지? 그럼 난 가도 되겠네.」
「어딜 가 당신, 당신 아까 나랑 이쪽 뛰어갔잖아.」
「이 여편네야, 그건 네년이 아침에 어떤 송사리 같은 놈이랑 발정 나서 그런 거 아냐, 이년아! 갑자기 생각났네. 너 오늘 내 손에 죽어봐라!」

저 부부는 넘겨야겠군. 저 상황에 이것저것 신경 쓸 겨를은 없었을 테니까.

나는, 노인을 잠시 앉히고 진정시킨 후 자진해서 용감한 한 걸음을 내딛은 사람들을 데리고 조그만 방으로 들어갔다.



범행 추정자 1.
노인의 아내로군. 사건의 첫 목격자. 그만큼 의심이 가기에 적합한 인물이지만, 주변인들 얘기론 현모양처라고 했다. 검버섯이 군데군데 핀 노파의 얼굴에는 인자한 미소만 가득하다. 듣자하니, 노인은 친자식들이 모조리 등을 돌리고 남은 ‘이것’을 친자식마냥 아끼고 길렀다고 한다. 매일 운동을 시키고, 식사도 손수 가져다주고. 그래서 이 사건이 싫지만은 않다고 말한다. 여자의 심리가 이런 것인가.

범행 추정자 2.
동네 고등학생. 요즘 애들 머리 하고는.. 귀에도 구멍, 코에도 구멍. 발가락까지 세어도 모자라다. 팔 안쪽에 주사 자국이 허다한 것 역시 특징이다.
「난 항상 학교에 갈 때 스쿠터를 타고 달려요. 솔까말로, 나 같은 애들 보면 더 빠른 새끼들 보면 싫어하거든요. 근데 그놈은 나보다 존나 빨리 달리는거에요. 그것도 매일 아침. 오늘도 그랬죠. 그리고 저 영감탱이가 맞아주는 꼴이란.. 보기는 정말 드럽게 재수 없지만, 난 이딴 일을 벌이진 않아요.」
「아, 이 주삿바늘 자국이요? 간수치가 조금 안 좋아서 피검사를 자주 해요. 뭐, 의심하는 건 아니죠?」

특이사항 : 확인 결과 흉기 소지. 입이 상스러움.

범행 추정자 3.
「사.. 사실은..」
뭔가 알고 있다는 느낌이 표정과 말투에 묻어나온다.
「사실은, 저 할아버지가 저한테 그 녀석 관리를 맡기셨거든요. ... 그런데 이 할아범이 자꾸 나를 못 믿고 본인이 하는 거에요! 그 영감이 무슨 권한으로! 그녀석이라면 영감 못지않게 꿰고 있는 난데! 분명 나한테 떼어줄 돈 아끼려고 그랬겠지?」
오늘 아침 멀쩡한 녀석을 확인하고 개인 사무를 처리하러 갔다고 한다. 아직도 못 끝냈다고.

특이사항 : 용의선상에서 제외. 아직 그 ‘어떤 송사리’를 못 잡았다는 진술.

범행 추정자 4.
40대 초반 기혼여성.
머리가 산발인 채로 들어왔던 그녀는 그 작은 창문으로 온 몸을 비집으며 나갔다. 한참 트위스트를 추고 있는 그 힙을 보니, 그 ‘어떤 송사리’의 갈망이 이해가 간다.
그녀가 나가면서 한 한 마디.
「난 아무것도 몰라요!」

특이사항 : 엉덩이로 말을 할 수 있음. 3번과 역시 제외함.

범행 추정자 5.
20대 초반 공업소 아들.
「요즘은 아버지 없이도 일 잘 해요. 오늘은 영감님이 그 녀석 잠자리 교체 공사를 부탁했거든요. 가서 보니 그냥 보수정도면 될 것 같아서 대강 처리하고 왔어요.」
아까 찍은 사진을 다시 보니, 비버가 굴을 파도 이것보다 잘 처리할 것처럼 보였다.

특이사항 : 직업 특성상인지, 크고 작은 공구들을 상비하고 다님.

일단 추정자들을 노인의 집에 유치 아닌 유치를 시켰다.



조용히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것’은 달리는 속도가 엄청났다고 한다. 각종 기록 경기에서 우승상금을 휩쓸었다고. 그러면 그 고등학생의 말은 확인이 됐고..

마침 수송차가 왔다. ‘그것’을 인계키 위해서는 일반차량으로는 안된다고 하니, 특수 트럭이 왔다. 그곳으로 가면 다 확인이 되겠지.

「저기요, 아저씨.」

돌아보니 아무도 없다.

「아저씨! 아저씨!」

잘못 들었나?

「야 꼰대.」

하단에서 들리는 소리를 확인했다. 욱해서 내려다보니 웬 소녀가 매서운 눈빛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일반인이 부르면 무조건 내 시야에 들어왔지만. 이 초등학교 4학년 즈음으로 보이는 이 아이는 보이질 않았다. 아직 내 키가 그렇게 작지는 않다고 생각하는 순간 눈물이 쏟아진다. 제길. 그 유머사이트는 그만 다닐걸.

「그래.. 무슨 일이니?」
「저~어기 아까 들어간 불량오빠 있잖아요? 그 오빠가 마~안날 새벽에 몰래 가서 걔 때리고 그랬어요! 」
「사실이니? 잠깐, 넌 누구지?」
「저 오빠 동생이요. 아저씨 경찰 맞죠? 우리 오빠 좀 데려가세요. 학교 갔다 오면 만날 자기 방에 들어가서 만날 다른 여자들이랑 히히덕거리는데, 앙~ 앙~ 그러는 소리 때문에 시끄러워서 티비도 못 보겠어요.」
「하하하하.. 알았다 알았어. 녀석 참..」

덕분에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떠오르긴 했지만, 소녀의 마지막 말이 나를 뜨끔하게 한다. 

「야, 너.」
「나요? 왜요?」
「왜요는 일본 배가 왜요고 임마. 너 조용히 할아버지께 가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려.」
「내가 뭐! 나는 아무 짓도 안했다니까!」
「매일 네놈보다 빨리 달리니까 화가 나고, 새벽마다 그 녀석을 괴롭히고, 못 견디겠어서 없애버린 거잖아!」
「마..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 이 야매야!」
「네놈이 새벽마다 그 녀석을 괴롭히는 것을 본 사람이 있어!」
「뭐..? 누구! 누군데! 데려와봐 18!」

차마 동생이라고는 말 못하겠다.

「아까 그 엉덩이로 말하던 여자!」
「... 누나.. 믿었는데.. 난 뭐가 되냐고! 내 딱지도 떼줬는데..」

자.. 잠깐? 그게 그러니까.. 그렇고 그렇게 된 거고, 그 송사리가 이 놈이라 이거야?



이번 사건으로 혹사당하는 두뇌에 가혹한 혼돈이 내려앉고 잠시 후. 그곳으로부터 그 녀석에 대한 정보가 왔다. 그리고 난 범행 추정자 한 명씩을 불러 정중하게 얘기를 하고 돌려보냈다..

그리고 마지막 한 명. 확실한 범인. 범인이라는 말조차 쓰기 힘든 이 상황. 한 가지 확실한건, 그 한명이기에 최대한 예우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버릇이며 의식적인 행동이다.

「제가 이 좁은 집에서 조사를 하는 동안, 그 녀석을 데려간 곳에서 아주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발견됐습니다.」
「그게 뭔데요?」
「그 녀석은 점심을 먹고 죽은 것으로 확인된 건 당신이나 다른 사람들도 다 같은 생각일겁니다. 물론 그 사실은 변함이 없고요.」
「꿀꺽.」
「그 녀석의 위장에서 나온 음식물에선 다량의 이물질이 검출되었습니다. 물론 제가 추측하기론 당신은 고의가 없었습니다. 단지 음식에 무언가를 빠뜨린 실수 하나 뿐이지요.」
「제.. 제가요?」

머릿속으로 나름 정리를 한다.

「제가 그린 시나리오는.. 당신은 할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그 녀석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이 할 일을 했겠지요.」
「...」
「당신이 그 녀석의 잠자리를 손보는 동안 그 녀석이 당신에 대한 호기심으로 당신과의 접촉을 시도했을 겁니다. 갑자기 놀란 당신은 들고 있던, 혹은 물고 있던 나사 통을 그녀석의 점심거리 위로 떨어트렸을 겁니다.」
「마.. 맞아요..」
「잽싸게 나사 통을 집어 들었지만 가벼웠을테고요.」
「아.. 아니야. 난 분명 다 집어냈는데! 다시 채웠다고요!」
「인간이기에 그런 실수를 범할 수 있는 겁니다. 그 녀석의 위장에서 다량의 나사못이. 그것도 수나사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사건번호 09-001
사건명   우사인 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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