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총장은 1997년부터 한나라당 수석 부대변인을 맡아 김대중 정권과 부닥치는 최전선에서 일했다. 김 전 대통령 측근의 비리를 신랄하게 공격하는 선봉에 서 있던 그때, 그의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충격적 사건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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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1월이었습니다. 기자들과 점심을 먹고 있는데 ‘삐삐’가 와 전화를 거니 소방서예요. 우리 집사람 이름을 대며 아는 사이냐고 묻더군요. 지금 위중한 상태인데 병원에 있으니 빨리 가보라는 겁니다. 허겁지겁 달려갔더니 아내가 MRI를 찍고 있는데 고통을 못 이겨 막 소리지르고 있었습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막내아들을 데리고 병원에 다녀온 부인이 집에 돌아와 불을 켜는 순간 갑자기 얼굴에 큰 충격이 왔다. 군복을 입은 거구의 남자였다. 이유도, 영문도 모른 채 군홧발로 걷어차는 무자비한 폭력이 이어졌다.
아들에게 칼을 들이대는 순간 부인은 몸을 던져 이를 막았다. 대신 온몸에 자상을 입어야 했다. 얼굴의 뼈가 짓이겨지고 갈비뼈가 모두 부러지는 중상이었다. 당시를 회상하는 장 총장의 눈이 붉게 젖어 들었다.
“나름의 신념에 충실하고 소신 있게 살았는데 당해도 내가 당해야지 왜 내 가족이 피해를 받아야 하나 싶었어요. 현역 의원도 아니고 수석부대변인 시절이었습니다. 너무 어려운 시기였죠.”
3년간 열 번의 대수술을 거쳐 많이 회복되기는 했지만 지금도 부인에게는 후유증이 남아있다. 가족이 폭행당하는 처참한 상황까지 접했지만 그 못지않은 시련이 또 하나 기다리고 있었다. 16대 총선을 앞두고 분기탱천해 장 총장이 지역구 출마를 준비하던 중 이회창 총재의 개인문제들을 향해 또다시 비난의 화살이 날아들었다.
가족에게 가해진 폭력, 정치에 회의감 느껴
비상사태가 벌어지자 당의 간곡한 요청에 장 총장은 지역구를 포기하고 총선 선대위 대변인을 맡게 됐다. 전국구 배정을 기대해 보라며 당 관계자들이 그를 달랬다. 그러나 전국구 배분 후 그에게 주어진 번호는 24번, 당선권 밖이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
“원망하는 심정보다 먼저 가족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집에 들어갈 엄두가 안 나더군요. 그때 마침 아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어요. ‘당신 볼 낯이 없다’는 제게 아내는 ‘당신 잘못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잘못’이라며 위로하더군요. 심란한 마음을 달랠 겸 잠시 강원도로 내려갔는데 또 당에서 연락이 와요. 결국 괴로운 가슴을 안고 다시 대변인으로 섰습니다.”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3659383&cloc=olink|article|default 일베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