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장르문학의 소설을 자주 읽는 편이다. 장르 문학을 접한 초기에는 무협이라는 것에 대해 거리감을 느끼며 판타지만을 읽은 시기가 있었는 데 당시 내게 크나큰 충격을 준 작품이 <드래곤 라자>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민희, 홍정훈, 이수영, 이운혁, 이영도 나에게 판타지 소설의 작가 이름을 대어보라 하면 주저 없이 나올 이름들. 그리고 이들 중 나는 이영도라는 작가에 가장 많은 사랑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가 쓴 <눈물을 마시는 새>는 이 시대에 뚜렷한 어떤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눈물을 마시는 새>는 판타지라지만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판타지가 아닌 이 소설은 가벼이 읽히지도 쉽지도 않다. 소설이 모든 걸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물, 배경을 묘사할 때도, 대화에도, 심지어 스토리에서 조차 곳곳이 생략되어 생각하지 않으면 우리는 제대로 소설을 상상할 수도 이해할 수도 행간을 읽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 이영도라면 빠지지 않는 소설 전체에 녹아있는 집요한 철학적 물음은 무거운 비가 되어 소설을 축축히 적신다.
<눈물을 마시는 새>는 여러 생각할 거리를 우리에게 주지만 그 중 가장 집요하게 우리에게 던지는 물음은 '왕이란 무엇인가?'이다.
이 소설에서 말하는 왕의 정의란 <눈물의 마시는 새>의 한 장면인 아래와 같다.
비형은 울 듯한 얼굴을 한 채 케이건을 보고 있었다. 짧게 한숨을 쉰 다음 케이건이 말했다.
"헤어지기 전에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고 싶소, 비형.키달저 사냥꾼들의 옛이야기요....괜찮겠소?"
"예? 아, 무슨 이야기죠?"
"네 마리의 형제 새가 있소. 네 형제의 식성은 모두 달랐소.
물을 마시는 새와 피를 마시는 새, 독약을 마시는 새. 그리고 눈물을 마시는 새가 있었소.
그 중 가장 오래 사는 것은 피를 마시는 새요. 가장 빨리 죽는 새는 뭐겠소?"
"독약을 마시는 새!"
고함을 지른 티나한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자 의기양양한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케이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눈물을 마시는 새요."
티나한은 벼슬을 곤두세웠고 륜은 살짝 웃었다. 비형은 눈을 꿈뻑거리며 말했다.
"다른 사람의 눈물을 마시면 죽는 겁니까?"
"그렇소. 피를 마시는 새가 오래 사는 건..
몸 밖으로는 절대로 흘리고 싶어하지 않는 귀중한 것을 마시기 때문이지.
반대로 눈물은 몸 밖으로 흘려내보내는 거요. 얼마나 몸에 해로우면 몸 밖으로 흘려보내겠소?
그런 해로운 것을 마시면 오래 못 사는 것이 당연하오. 하지만.."
"하지만?"
"눈물을 마시는 새가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고 하더군.
- 눈물을 마시는 새 中 -
이 대화에서 나오는 눈물을 마시는 새가 바로 소설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 말하는 왕인 것이다.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 이것은 의미가 확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 동정의 정의를 눈물을 흘리는 사람을 보고 자신도 같이 눈물을 흘리는 것이라고 한다는 것을 안다면 어느정도 어렴풋 감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동정은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共感하지 못하면 하지 가능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동정은 눈물을 같이 흘릴 뿐 흐르는 눈물을 마셔주는 것은 아니다. 덧붙여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 왕을 희생양으로 비유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조합한다면 대충 무엇인지 떠오를 수 있을 것 같다.
즉 왕이란 덕을 가지고 있으며 누구도 하지 못하는 자기희생을 할 수 있는 자라고 간단히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왕은 현대사회의 대통령과는 크게 다르지만 나라를 경영한다는 것에선 비슷함이 많다.
현재 대한민국의 경영자들은 눈물을 마실 줄 모르며 심지어 동정마저 할 줄 모른다. 되레 그들에게선 매스꺼운 피비린내가 난다.
우리들에게 필요한 건 '피를 마시는 새'가 아니다. 경영하는 자는 '눈물을 마시는 새'여야 한다.
똑똑함, 학벌, 경험, 나이, 인종, 성별, 외모등,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이러한 것들이 아니다.
그들에게 피비린내가 나는지, 아니면 내가 흘리는 눈물에 같이 눈물 흘리고, 그 눈물을 마셔주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이 소설은 2002년 3월에 시작하여 대략 8월정도까지 연재 되었다. 쓰여진지 약 10년이 되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10년이 가까워지는 지금 이 소설이 말하는 바의 소중함을 뼈에 새겨질 정도로 절실히 느끼고 있다. 그리고 2012년 우리는 이 느낀 바를 토대로 우리의 소중한 권리를 행사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눈물의 마시는 새>에서 '새'에 대한 것 다음으로 눈에 밟히는 문장이 있었는데 그것을 적어놓고 끝마칠까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사실에서 사람들의 마음이 역시 ……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