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비가 왔다 낡은 우리집에 흙탕물이 들어왔다 매해 여름마다 일어나는지라 아무렇지 않은 듯 흙탕물을 퍼냈더니 뉴스에서 태풍이 온다는 일기예보를 한다
태풍이 오는 날이면 일상은 곧잘 아수라장이 되었다 지붕은 종이처럼 나부끼고 젓가락과 후라이팬과 대학 교재와 멀티탭과 가족사진과 아버지 좋아하시던 인삼주와 형의 핸드폰과 엄마의 눈물이 전쟁터마냥 흩어졌다
여름은 우리에게 잔인한 계절이었다 그런데도 꾸역꾸역 살아는 있다 죽을 듯 하다가도 어찌어찌하더니 전쟁터는 복구되고 흙모래 덮여있던 밥통에도 다시 새 밥이 앉혔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게 나 뿐만은 아니라는 사실에 알량한 위로라도 된다 집은 수리되었다 다음 해 여름에는 덜하겠지라는 막연하고도 슬프면서도 즐거운 상상을 하며 네 식구는 오늘도 별 말없이 저녁식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