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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공해에 대한 고찰
게시물ID : humordata_17037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惡。범죄자
추천 : 4
조회수 : 423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04/08/22 22:30:08
나는 큰길 바로 옆에 있는 아파트에 산다. 예전엔 꽤나 길에서 멀리 떨어진 산을 깎아 빌라단지를 만든 곳에 살았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시끄러움이라곤 별로 느낄 수 없었다. 단지 낮에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밖에 없었을 뿐.. 더군다나 그 시기에는 나도 어렸기 때문에 그 소리를 시끄럽게 느꼈을 리 만무하다. 그리고 엄마들의 극성 속에 아이들이 다 들어가서 조용해 질 때는 내가 잠자기 훨씬 전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조용히 살아가다가 길 바로 옆에 있는 아파트에 이사 왔을 땐 첫날은 잠을 잘 수 없었다. 새 집에 대한 기대감이었을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적응이 힘들었던 것인가? 내방은 똑같은 가구에 똑같은 위치 똑같은 크기 그때와 전혀 다른 모습이 없었다는 점에서 그게 아니라 는걸 설명해주고 있었다. 다른 점이라곤 시끄럽게 들리는 찻소리... 그게 나의 귀를 거슬리게 했고 몽마를 피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그게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실제로 폭주족이 지나갈 땐 상당히 놀랐었다. 어떻게 저럴 수 있는가? 난 조용한 집에 사느라 그걸 모르고 살았던 것이다. 실제로 상급 학교에 입학해서 본 이 세계는 상당히 시끄러웠다. 별조차 묻혀버릴 만큼 밝아진 밤은 우리의 눈을 멀게 만들었고 별속의 꿈조차 잊게 만들었다. 그에 적응이 되나 싶었더니 이번엔 시끄러운 찻소리와 비행기소리 기차소리 등등의 과학의 발달이 낳은 창조물이 내 귀를 거슬리게 만들었다. 그렇게 세계는 눈에서 귀로 귀에서 볼을 타고 입과 코를 통한 뒤 피부조차 잠식해버릴 것이다.. 실제로 이 일들은 조금씩 벌어지고 있다. 요즘은 안경을 낀 것이 별로 신기한일이 아니다. 되려 멋이 되어 시력이 좋은 사람들도 도수 없는 안경을 끼고 다닐 정도가 되었다. 안경이 대중화가 된 이후로, 아니 그 이전일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사람들의 입을 속였다. 그렇게 속부터 썩어 가는데 모자라 냄새까지 팔아먹고 있다. 그리고 구멍 난 하늘은 사람들의 피부를 파고들었다. 그렇게 하나하나 썩어 들어가다 인간은 변해버릴 것이다. 영화 속 추한모습 그대로. 살아가기 힘겨워진 세상을 버텨 살아가는 그 비참한 모습 그대로. 귀라고 그에서 멀어질 순 없다. 보청기라고 하면 생소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요즘 점점 귀가 제 역할에서 멀어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요즘에 주변을 돌아보면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 사람이 노인들 외에도 상당히 많음을 느낄 수 있다. 노인만이 말귀가 어둡다는 편견을 버릴 시기가 와버린 것이다. 곧 시력을 측정만을 하는데서 떠나 청력도 문제의 유무가 아닌 정도로써 파악해야할 시기가 올지도 모른다. 아니 다가왔다고 확신할 수 있다. 푸르고 넓은 곳을 보면 시력이 좋아지듯 크고 많은걸 들었을 때 청력이 좋아진다면 이런 문제는 걱정조차 하지 않아도 좋다. 문제는 청력이 그 반대이기에 생기는 것이다. 혹시 한 감각을 잃으면 살아남은 또 다른 감각이 증폭된다는 사실을 아는가? 우리의 피부와 시력이 죽어가고 있다. 그러면 그 원리대로 청력이 증폭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시끄러운 세상에 묻혀버렸다. 사람은 적응하는 동물이라고 하던가? 중국 사상에 도가사상에서는 다 흐름대로 이어진다고 하던가? 우리는 이를 믿고 기다릴 수만은 없다. 벌써부터 청력이 다른 것과 반대로 돌아가는 것 자체가 벽으로써, 변수로써! 남아버렸다. 결국 그 변수를 처리해 세상의 문제를 처리하는 건 우리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혹시나 아무 소리 없는 정적을 즐겨본 적 있는가? 멋모르던 어릴 땐 괜히 조용하면 무섭고 재미없어서 나 혼자 소리를 지르거나 되지도 않는 노래를 부르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정적을 즐기기에 이르렀다. 내가 학교에 등교하면서 큰길을 따라 걷다가 차들이 적신호에 걸렸는지 멈췄을 때가 있었다. 그 정적은 세상이 멈춰 버린 듯한 느낌을 주며 그를 느낄 때면 순간 알지 못할 희열을 경험하게 된다. 아마 시끄러운 소음에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스트레스가 순간 멈추면서 내가 좀더 편해졌을지도.. 나는 그래서 아주 급할 때가 아니면 길 따라 걷기보단 안쪽으로 돌아서 걷는다. 그래야 조금 더 학교생활에 찌든 스트레스성 삶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일지도 모른다. 난 그렇게 안으로 걷고,, 세상을 벗어나길 바란다. 그렇다. 조용함은 우리에게 편안함을 준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밀어주는 이상한 힘이 있다. 아니 어쩌면 평소에 소음으로써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오다가 그 스트레스가 사라지면서 편안해 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며칠 전 양평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산기슭에 있고 옆엔 물이 흐르는 별장이었다. 그렇게 산속에 조용히 며칠간을 보냈다. 들리는 소리라곤 아련한 풀벌레소리뿐. 하늘은 별이 가득해 눈이 부셨고 마침 별똥별이 떨어지는 날이라 별똥별은 하늘에 한획 한획 그림을 그렸다. 그 멋진 광경에도 소리는 없었다. 남아있는건 시끄러운 도시의 한 학생의 여유뿐. 그렇게 나는 오랜만에 진심어린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우리는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 여유를 잃었다. 그렇다고 자동차와 비행기를 안탈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지금 당장의 우리의 노력으로썬 이루어지기 힘든 슬픈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젊다. 젊음을 앞세워 소리 없는 자동차를 개발하고 소리를 먹는 흡음재질을 개발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가장 쉽고 바람직한 방법은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 조금 더 여유를 가지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우리는 너무나 시끄럽기에 조용함이 여유조차 잊고 산다. 오히려 우리가 시끄럽게 바꿔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스트레스를 만들어가는 시에나 나올 역설적인 말이 사실로써 다가오는데 그것조차 느끼지 못하니 그것이 문제인거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이 잘못된 상황을 인식하고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사실을 모두가 기억해야 할 것이다. ↓짤방조차도 소음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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