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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에 다시 쓰는 思父母曲
게시물ID : lovestory_1704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글버시
추천 : 3
조회수 : 1289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05/04/28 15:16:41

오월에 다시 쓰는 思父母曲

  

- 정 두 환 - 연휴가 지나고 달력을 들추니 어버이날이 붉은 글자로 유난히도 크게 보인다. 오월은 가정의 달이다. 참 이상 하게도 벽에걸린 거울 속에 비친 쉰살 남자의 모습에서 온통 아비의 모습이 똑같이 보인다. 이마의 주름도, 흰 머리카락도 영락 없는 아비의 모습이다. 얼굴에 쓰인 고집 스러움과 웃는 모습도 어미의 형상 그대로이다. 그래, 누가 그 아비의, 그 어미의 아들이 아니랄까봐....... 쓴 웃음 지우며 연구실 창 밖을 보니 촌로들이 허리를 구부려 모내기를 하고 있다. 젊은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저쪽 먼 들녁엔 송아지가 어미젖을 빨고 있다. 이 한가로운 풍경이 정겹기 보다는 서글퍼 보임은 무슨 연유일까? 아마도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 때문이겠지. 가까이 다가오는 아비의 제삿날 때문이겠지. 우리네 아비들은 죄다 고만 고만한 집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열심히 농사일 하고 6.25를 만나 전쟁터에서 생사의 고비를 만났던 분들이다. 꽃다운 나이에 나라와 조국을 위해 산화 했거나 전쟁의 상처로 상이용사가 되었다. 몸을 다치지 않는 그들도 모두가 정신을 다친 정신 상이용사들이다. 세상이 바뀌었다고 북한이 주적이 아님을 명심 하란다. 전쟁은 끝나도 가난과의 전쟁은 계속 되었다. 한푼더 벌기위해 월남의 전쟁터로, 열사의 중동 건설 현장으로 , 경부 고속도로 공사장으로 쫒아 다녔다. 새마을 운동으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온 힘을 불살랐다. 때마다 철없는 자식들에게 "너희들은 아비같이 살아서는 안된다. 공부 열심히 해서 잘 살아야 한다"고 당부 하셨다. 오늘 그들은 도회지에선 공원에모여 무료급식 행렬에 줄서 계신다. 저 먼들에서는 아직도 당신들만이 힘들게 모를 내고 계신다. 술 한잔 취하면 자식들 불러모아 밤새도록 전쟁 무용담 들러 주셨던 울 아베! 가난이 서러워 똥 묻은 바지 팔아서라도 자식들 공부 시키겠다던 울 아베! 그래도 명절날 동네 농악대에서 장구 둘러메면 천하의 달인 이쎴던 울 아베! 말년에 심신이 병든 몸으로 처자식 괴롭혀도 자식 걱정 하셨던 울 아베! 동네 처녀들 재미로 서리한 고구마도 훔친거라 자식들 안 먹였던 울 어메! 식구들 안 굶기려고 온 동네 궂은일 마다 않으셨던 울 어메! 불쌍한 문둥이 아낙에게 호적 입적도 마다 않으셨던 울 어메! 말년엔 불쌍한 친정 식구들 거두느라 자식들 눈치 보셨던 울 어메! 세상은 세대교체를 부르짖으며 그들을 내몰고 있다. 진정 우리가 그들을 내몰 자격이 있는 걸까? 옛날엔 임금들 조차도 노인들은 공경했다는데, 사람들은 하늘 아래 계시던 부모님이 갑자기 안 계시면 그때야 후회한다. 그대! 부모님이 한분이라도 살아 계신가? 그대! 부모님 찾아 뵐 틈도없이 회사일이 바쁘다고 거짓말 할텐가? 나, 그대라면 돈 한푼 없어도 처자 데리고 오늘 그분들이 계시는 집으로 뛰어가리!! 내일이면 늦으리, 그대 나처럼 눈물로 후회 하리니!!!!! (경북일보.2004.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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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서라벌 대학 학장으로 계시는 정두환 학장님께서 쓰신 글입니다. 이글을 읽으시며 눈시울을 적시는 그를 볼때 아마도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이글을 쓰셨으리라 봅니다. 그는 11살때 집안이 가난하여 부모님과 같이 살지 못하고 가출을 하였다 합니다. 그 나이에 얼마나 부모를 원망하고 설움에 겨운 삶을 살았겠습니까. 그후 어머니와 같이 살아본겄은 딱 6개월 이었답니다. 이제는 어엿한 교육CEO가 되셨지만 지금도 부모님을 생각하며 눈시울 적시는 모습을 보니 오늘 다시한번 나를 돌아보는계기가되어 너무나 좋았습니다.............

♪신웅[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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