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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해보고 싶다. 공부가....
게시물ID : bestofbest_1706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ㅂㅈㄷ
추천 : 214
조회수 : 8839회
댓글수 : 10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07/06/27 09:51:52
원본글 작성시간 : 2007/03/26 18:09:06
아무뜻도 없다 그저 나에대한 고찰일뿐이니...
섬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것도 큰섬이아닌  주민수가 200명이 될가 말가 한 작은 섬에서...
섬에사는 주민들은 어업과 농업으로 생계를 이루어갔다.

아버지 어머니는 어업을 하셧다. 누나들은 다 학교에 가고 나면 나는 혼자 남는 시간이 많앗다.
주변에 나이또래 친구들역시 얼마 없엇다. 매일 집에 혼자 있엇다.
섬에는 유치원,초등학교,중학교 까지 있엇다. 거기서 그렇게 유치원도 나오고 초등학교도 나왓다.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셧다. 하지만 좋아하시는걸로 그치지 않고 술을 먹은뒤에는 항상 어미니와 싸
워댔다.. 칼을들고 다 찔러죽인다니 마느니... 집에 전화기와 텔레비젼.. 성한것이 하나도 없엇다.이
틀에 한번골로 술을 먹고 그 난리를 치셧다. 중학교 입학을 한후에도 역시 집안의 불화는 계속되었
다.

 아버지는 여전히 술만 드시면 그 난리를 치셧고. 어머니와 누나와 나는 서로  부둥켜 않고 울때
가 많앗다. 나는 그때 내 스스로 약속햇다. 절대로 술에는 입을 대지 않겟다고..
 
지금도 가끔씩 꿈에 칼을든 아버지가 나타난다.
누나들은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시내에 나갔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컴퓨터를 산다고 열심히 저축햇다. 가장형편이 어려웠다. 컴퓨터 같
은건 꿈도 꾸지 못했다. 그래서 초등학교1학년때부터 직접 돈을 모아 중학생이 될쯤엔 6년동안 모은 
돈으로컴퓨터를 살수 있었다. 컴퓨터를 하고있으면 잊을수 잇을것만 같앗다. 어려운 집안형편도
아버지의 행패도 ... 핑계같아 보이겟지만 마치 그럴수 잇을것만 같앗다. 현실의 도피처엿다.

그에 따른 결과로 내 중학교 성적은 바닥을 치게 되엇고 당연히 공부와는 거리가 멀어졌다.
고등학교 진학은 어쩔수없이 시내에 잇는 공고로 가게 되엇다.
고등학교에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놀기에 바빳다. 주변환경의 탓도 잇겟지만 나 자신조차 어느
세 공부와는 거리가 있게 되었다. 그리고 여름... 양식업으로 간간히 생계를 이어가던 우리집은
태풍피해로 인해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되었다. 아직도 생생하다  밤세 우시던 어머니의 모습...


담배만 피어대던 아버지의 모습... 그와중에도 낚시군들은 양식장에서 터져나온 고기를 잡으러 섬에 
왓었다.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그나마 정부의 태풍보상 피해로 당장 길거리에 내앉게 생긴 우리집을 구제해 주었다.
어렵사리 고등학교도 쭉 다닐수 있게 되었다... 누나들은 어려운 집안 형편상 고등학교 졸업후
바로 일선에 뛰어 들었다. 어려운 집안 형편상 대학은 꿈도 꾸지 못햇다.

 

고등학교와서는 중학교때보다 더욱 공부와 거리가 멀어졌다.
시험은 시험 당일 전이나 이틀전 정도에 나눠준 프린터와 교과서를 보면 30명중에 10등은 할정도 였
다... 그냥 나눠준 프린터를 누가 더 한번이라도 보느냐가 등수를 좌우햇다. 공고라고 하면 대부분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나쁜애들이 많고...폭력이 서슴치 않고... 나역시 학교다니기 전까지만
해도 그런이지미가 강한곳이엿다 공고란곳은.. 하지만 그런애들은 극히 소수이며 대부분

공부를 못해서 오는건 사실이지만 착하고 순박한 애들또한 의워로 많은 곳이 공고였다
그렇게 고3이 되었고 대한민국 모든 고3들이 격는다는 수능의 압박따윈 안중에도 없이 고3 시절을
보냈으며. 많은 애들이 전문대 수시를 넣었다

나역시도 누나가 있는 서울쪽으로 전문대에 진학되었고 아마 내일이나 모래쯤 다시서울로 올라 가야 한
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아들 대학 등록금이라도 벌어 보겟다며. 김밥집에서 일하시는 어머니를
보면 난 왜 조금더 공부하지 않고 조금더 노력하지 않아서 고작 전문대 밖에 가지 못할까라는...

죄송스러운 생각밖에 없다. 우리 가족 식구중에 유일하게 대학을 간다. 누나들이 가정형편상
어려워서 못갈수밖에 없던 대학을, 나는 별것도 아닌데 아들이라고 어머니깨선 김밥집에서
그 고생을 하시면서 대학 등록금을 벌어주셧다. 내자식 하나 내손으로 대학등록금을 마련할수 
잇어서 기뻣다고 말하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내가 정신차리고 공부해서 서울에 유명한 4년제를갓다면, 어머니는 얼마나 좋아하셧을까... 누나들은 동생을 얼마나 자랑스러워 하셧을까..
아쉬운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1년전에 우울증으로 스스로 목을 매달아 죽은 첫째 누나한테 더없이 죄송하고 부끄럽다.
어머니가 바다에 자주 나가고 없으시면 직접 나를 업어다 키우신 첫째 누나였는데..
누나의 저금통장에 있던 동전을 꺼내서 오락실로 갔던 그 철없는 시절로 다시 한번만 되돌아 갈수 
있다면...    나는 다시 해보고 싶다. 공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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