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에서 봉사활동 중이던 국내 교회 신도와 현지 한국인 선교사 등 23명이 탈레반으로 추정되는 무장세력에 납치된 사태가 나흘째 이어지고 있다. 무장세력은 아프가니스탄 내 한국군 철군을 요구하다 21일부터 탈레반 죄수 23명을 석방하라고 요구 조건을 바꾸면서 협상 시한을 23일 밤 11시30분(한국 시각)으로 연장했다. 죄수들이 석방되지 않으면 인질을 살해하겠다는 위협은 계속되고 있다. 어제는 인질 구출을 위한 군사작전이 시작됐다는 보도까지 나와 혼선을 일으켰다. 군사작전은 피해야 한다.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납치된 사람들의 무사귀환이다. 인명보다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인질이 된 이들은 현지의 한국군 다산·동의부대처럼 살기 어렵고 몸이 아픈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을 도우려 한 것밖에 없다. 정부는 안보정책조정회의를 잇달아 열고, 외교부 제1차관을 반장으로 하는 정부대책반을 현지로 보냈다. 군 합동참모본부와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동맹군들도 정보수집망을 총 가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납치세력의 요구 조건은 더 버거워졌다. 인질과 테러범을 맞교환하지 않는다는 것은 세계 거의 모든 정부의 기본 원칙이다. 납치 테러가 한번 代價대가를 챙기면 또 다른 테러를 저지르게 될 뿐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이탈리아 기자가 탈레반에 납치됐을 때 이탈리아 정부는 철군을 카드로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밀어붙여 탈레반 죄수 5명을 풀어주게 했다. 납치된 기자는 돌아왔지만, 이탈리아와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국제사회로부터 “또 다른 납치를 불러들일 것”이라는 강한 비판을 받았다. 공교롭게도 지금 우리가 바로 그 ‘또 다른 납치’의 대상이 돼 버렸다.
지금까지 우리 정부는 테러범과 ‘직접 협상’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왔지만, 이번에 그 대원칙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국가의 원칙과 국가의 이익을 포기해도 상황은 쉽지 않다. 이탈리아 기자 석방 교섭으로 테러단과 흥정했다는 비난을 받았던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테러범과 협상하지 않는다’는 원칙에서 물러서기가 더 어려워졌다. 풀어줘야 할 죄수도 23명으로 이탈리아 기자 사건 때보다 훨씬 많다.
그러나 우리는 아프가니스탄 정부에 탈레반 죄수들을 풀어주라고 사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 테러단의 손아귀에 붙잡혀 있는 젊은이들의 목숨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휘청거리는 사태 앞에서 젊은이들의 생명과 나라의 體貌체모를 여기까지 몰아넣은 사회 지도자들의 책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