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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아, 어떻게 해야 니 맘을 알겠니? 가을이 지나가고 있단다.
게시물ID : animal_17126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ynousia
추천 : 10
조회수 : 537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6/11/20 23: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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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시나브로 가을은 그렇게 스러져가고 있습니다.
한 잎, 두 잎 절정에 달한 추억들을 다시금 대지에 뿌려 묻으면서 말입니다.
마지막 향연을 그렇게 가을은 마무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비록 미물이나마 우리 집 야옹이 또한 태어나서 처음 맞는 가을에 스치듯 안녕, 그렇게 작별 인사를 건넸습니다.
간간이나마 작은 창틀에 앉아서 찬연한 햇살들과 찬란한 수목들을 건너다보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그래도 가을 특유의 풍광과 분위기로 반짝거리는 그 녀석만의 추억을 고이 접어 갈무리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집사는 몸과 마음이 무시로 바빠서 미처 신경도 써 주지 못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니 혼자서 애면글면, 참으로 가을을 어떤 빛깔과 모양으로 새겨놓았는지, 집사로서는 도무지 알 도리가 없습니다.
그저, 추측만 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그 추측엔, 야옹이가 생전 처음 선사했던 특이한 음색의 경험 또한 녹아 있습니다.
무릇 한 시절, 한 세대의 단발적 본성이 유구한 역사로부터 아로새겨낸, 참으로 지엄하면서도 애틋한 울음소리였습니다.


무던히도 피곤했던 모양이었습니다.
언제 잠이 들었는가 싶게 곤히 잠들었는데, 무슨 연유에선가 살풋이 잠을 깬 것이었습니다.
야옹이가 이리저리 불안스럽게 왔다 갔다 하며, 울어대고 있었습니다.
샛별이 어스름하게 묻어나는 시각이었습니다.
물론, 이 시각이야말로 야옹이에겐 자체발광의 파티타임이었던지라, 유난스레 울어대고 있는 꼴이 자못 달갑게 여겨지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래도 나름 이해는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껏 같이 동거해오면서 어느 정도 서로의 시간들에 대한 배려도 자연스럽게 생겼던지라 오늘같이 유난스러운 날이 조금은 마뜩잖고 언짢기도 하였습니다.
일 나가려고 준비하기엔 아직도 일러, 좀 더 곤하게 잘 수 있는 상황이었던지라 약간은 짜증이 치밀어 올랐던 것입니다.   
그러니, 야옹이의 어딘가 좀 특이해 보이는 행각에 대해선 어떤 일말의 관심이나 신경을 쓸 여력조차 없었습니다.
그저 또 심심해서 저러나 보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다시 잠들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다음 밤에도 야옹이는 마찬가지로 울어대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아예 대놓고 밤이 시작되는 초입부터 울어재끼며 미처 잠들지 못한 집사를 괴롭혔던 것입니다.
아, 그런데 아직 정신이 말짱할 때 그 녀석의 울음소리를 들으니까 이건 평소와는 달리 무언가 이상하고 괴이한 음색이었습니다.
평소 듣곤 하는 밝고 명랑한 냥냥거림이나 어둡고 축 처지는 울음소리도 전혀 아니었고, 이건 우중충하면서도 탁한 기운을 토해내는 듯한 몹시도 껄끄러운 소리였습니다. 
또 병에 걸렸나?
불현듯 엄습하는 공포와 걱정이 다시금 똬리를 틀어대기 시작하였습니다.
요 근래는 피곤하고 바빠서 야옹이에게 신경을 많이 써주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전에 고생했던 질환이라든지 병구완의 세월이 마냥 저 멀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만 같이 생각되었었습니다.
아직도 완쾌되지 못한 신경 쪽 문제 또한 악화되지는 않고 있고, 또 이게 커가면서 실제로 조금씩 괜찮아지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같이 지내다 보니 아예 이런 현상에 집사가 적응을 해버린 것인지, 딱히 예전처럼 걱정과 번민에 휩싸여 있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또 병이라니!
늦은 밤이라 동물병원에 응급으로 가기도 주저되었습니다. 
촌각을 다투는 어지간한 병 아니면 차라리 돈지랄이기 십상이었습니다.
그러니 먼저는 집사부터 초보 수의사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예전부터 여기저기 수의학 관련 서적을 뒤적거려보던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소리만으로 어디가 아픈 것인지 판별하기란 참으로 난감하였습니다.
하릴없이 고양이 관련 커뮤니티나 각종 사이트를 폭풍 검색해가며, 선배 집사님들로부터 실전적이고도 실천적인 지혜를 한 움큼이나마 얻어마시기를 갈망할 따름이었습니다.


잠은 다 잤습니다.
병에 대한 불안감이 다시 도진 것도 모자라, 이 녀석, 지칠 줄 모르고 나대면서 괴성을 토해내고 있습니다.
한 밤에, 그것도 이상한 소리를 질러대는 와중에 집사는 여기저기 검색을 해가며 불확실하나마 몇 가지 가능한 시나리오를 가까스로 뽑아내었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그것이 어떤 질병이라기보다는 단순한 발정기의 소리라고 판단내렸습니다. 
그 녀석의 울음소리를 다른 예들과 비교해보기도 하고, 발정기에 나타나는 다른 증상들을 하나씩 점검해가면서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추정상으로나마 이제 갓 6개월 정도 된 암컷이 벌써부터 이런 소리를 낸다는 것이 처음엔 믿기 어려웠습니다만, 그런 경우가 실제로 왕왕 발생한다고 이미 이야기되고 있었습니다.
다행이면서도, 불행이었습니다.
먼저는, 그래도 어떤 다른 질병이 아닐 거라는 기대감은 참으로 다행스러웠습니다.
며칠 더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겠지만, 정말 단순히 발정기로 인해 나는 소리라면 그렇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빨랐습니다. 
집사 경력 이제 3개월째에 접어드는 요즈음, 아직도 이 녀석의 향후 계획은 미정입니다.
다시 어미와 새끼들 품으로 돌려보내줘야 할지, 아니면 계속 여기에 눌러앉혀 키워야 할지조차도 집사로선 아직 어떤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 녀석이 만약 발정기에 접어들었다면 이제는 정말 신속한 결정이 이뤄져야 할 성싶었습니다.
그래야 앞으로 무슨 수를 써도 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 녀석과의 의사소통은 쉽지 않은 상태입니다.
집사로서는 당연하게도 집사의 직분상 주인의 뜻을 최대한 존중하여 처신할 요량이었습니다.
집사는 원하지 않지만, 그 녀석이 정녕 돌아가고 싶다고 하면 오롯이 돌려보낼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진 제대로 물어보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호주의 어떤 유명한 스님이 왈, 이럴 땐 직접 당사자인 동물에게 물어보고 대답을 구하라며 쿨하게 말씀하셨다는데, 초보 집사는 이 정도 경지에까진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동안 짐짓 이런 잡다한 생각을 피하고 다니며 유예기간만 늘려왔던 것입니다.
그동안은, 움직이고 달리는 데에 관여하는 신경 쪽의 문제가 아직도 완쾌되지 않았다는 것으로 그 녀석을 명목상으로나마 붙잡아 왔지만, 이건 어쩌면 정말 명목상 이유에 지나지 않을지도 몰랐습니다.  
신경 쪽 문제는 십중팔구 완쾌되거나 완치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집사는 이 명목상 이유를 차마 고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직은 어린 그 녀석이 좋은 환경에서 먹고 자라다 보면 완쾌는 되지 않을지언정 조금이나마 어떤 차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까지도 내팽겨쳐버리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실상 이것은 명목상 이유에만 지나지 않는 것이 또 아닐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지금의 야옹이는 예전보다 분명 좋아진 것 같기도 하였습니다.           
삽시간에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안으로는 다시금 얽히고설키는 생각의 실타래에 적잖이 답답하고, 밖으로는 남들 다 자는 야밤에 휑하니 돌아다니며 울부짖는 그 녀석에 적잖이 당황하였습니다.
자는 둥 마는 둥 그렇게 밤을 지샜습니다.


역시나 그다음 밤에도 야옹이는 예의 그 텁텁하고 칙칙한 소리를 뽑아내고 있습니다.
자꾸만 들어도 적응되기는커녕 어딘지 불쾌하고 불안해지는 소리입니다.
생식기 쪽에서 흐르는 하얀 액 같은 것도 발견하여 이제는 소리의 근본 원인이 무엇 때문인지 정확한 판단도 내려진 상태였습니다.
분명 발정기였습니다.
그러니 딱히 어떤 처치나 치료가 필요하지도 않았을뿐더러 실상 가능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얼른 발정기가 지나가기만을 바랄 따름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금 뒤죽박죽된 생각의 꾸러미들을 하나하나 풀어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사실, 발정기 때문에 야옹이의 신변이나 거취 문제 또한 같이 고민하는 까닭은, 통상적으로 생각되는 어떤 중요한 연관관계가 있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궁극적으론 야옹이가 도로 길 위의 품으로 귀환하든, 계속해서 집사와 함께 살든 간에, 그것이 형식적이고 인위적이라고 한다면 야옹이의 발정기로 인한 집사의 고민을 일사천리로 해결해주진 못할 것이었습니다.
길 위로 돌아간다고 해서 불임시술을 하지 않고 집사와 함께 인간 세계에 남아있는다고 해서 불임시술을 한다거나, 혹은 그 역으로 처치한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양단 간에 모두 다 불임시술을 한다거나, 혹은 다 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이 모든 형식적인 가능성에 어떤 결정적인 함수관계가 존재하지는 않는다고 집사는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야옹이가 길 위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해서 집사와 생활한다고 하면, 길 위로 돌아갔을 때보다는 불임시술을 하는 경우의 수가 확률상 더 높게 나오진 않을까, 그렇게 연관시켜 생각하고만 있을 따름입니다.    
하지만 이것 또한 어디까지나 집사만의 상상에 불과한 것이, 이 불임시술이라는 문제 또한 당사자인 야옹이에게 직접 물어보고 가부를 결정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바로 이 점에서 집사는 불임시술과 신변 및 거취 문제를 통상적으로 연관되는 문제들이기보다는, 무엇보다 중요한 제3의 요인을 똑같이 매개하는 것으로서 받아들이고 있을 따름입니다. 
정말 단순하게도, 두 가지 문제 그 어느 것에나 최우선적으로 참작되고 고려되어야 할 점은 정작 그 문제의 당사자가 지닌 뜻과 태도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문제의 당사자가 아예 뜻과 태도조차 없다고 한다면 경우가 다르겠지만, 어렵기는 하나마 여전히 그 가능성으로서의 뜻과 태도가 오롯이 존재한다고 한다면, 그 희망을 무참히 밟아버리는 행위 따위는 정녕 하고 싶지 않은 게 집사된 도리이자 바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 녀석의 진의를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강한 경각심을 일깨워놓으며, 야옹이는 며칠을 더 가을바람에 흔들렸습니다. 
그 흔들거리는 존재 속에서 떨려나와 번져나가는 소리들이 집사는 참으로 듣기 힘들었습니다.
그것은 이제 바야흐로 성숙해진 한 개체의 독립 선언이었고, 그럼으로써 또 다른 개체를 당당하게 갈구하는 사랑 고백이었습니다.
그 누군가를 찾고 기다리며 울어대는 그 녀석의 소리들은, 그저 야음을 틈타 버젓이 인간들을 괴롭히는 괴성이 아니라 마지막 가을이 선사한 혼신의 선율이었습니다. 
그렇게 그 녀석은 자신이 맞는 첫 가을을 고통어린 노래로, 격정어린 삶으로 알뜰살뜰히 꾸려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녀석을 보며 집사란 인간은 참으로 얄궂은 감정을 느꼈습니다.
참으로 그 소리가 괴이쩍고 기이해서 싫었고, 행여나 이 야밤에 다른 집 사람들이 자다 깰까봐 싫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피곤한 집사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행동하는 그 녀석의 뻔뻔한 작태가 싫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다시 한 번 더, 집사란 인간은 참으로 얄궂은 감정을 느낍니다.
어느덧 또 다른 삶을 잉태시킬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해진 녀석이 아직도 가녀리고 작다는 게 싫고, 이제는 또다른 묘생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 또한 싫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때 그 녀석이 한 울음 울 때, 오롯이 그 녀석의 편이 되어 주질 못해서 집사는 참으로 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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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야, 괜찮다냥!



<한 동물을 사랑하기 전까지 우리 영혼의 일부는 잠든 채로 있다.   - 아나톨 프랑스 - >
 



출처 http://blog.naver.com/ha_eun_love/220866483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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