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todayhumor.co.kr/board/view.php?kind=search&ask_time=&search_table_name=history&table=history&no=1267&page=1&keyfield=subject&keyword=%C7%D7%B0%F8&mn=&nk=&ouscrap_keyword=&ouscrap_no=&s_no=1267&member_kind= >여기서 이어집니다,
7. 노르웨이 침공작전의 비싼 수업료 1940년 4월 9일, 베저연습(Begerbung)이라 명명한 노르웨이 침공작전에서 독일해군은 오스카 쿠메츠 소장이 지휘하는 순양함 샤른호스트(Scharnhorst)와 그나이제나우(Gneisenau), 애드미럴 히퍼(Admiral Hipper)와 순양함 브뤼허(Brucher), 엠덴(Emdenn), 포킷전함 뤼초우와 구축함대를 거느리고 노르웨이의 스카게라크로 향했고 양동작전의 일환으로 경순양함 쾨니히스베르크(SMS Konigsberg)와 쾰른은 어뢰정의 호위하에 베르겐(bergen)으로 향했습니다. 주력부대는 항진중에 오슬로협만의 해안포대에 발각되어 상당한 피해를 입고 쿠메츠 제독마저 포로로 잡히지만, 이 미끼함대는 아무런 저항을 받지않고 베르겐항구에 도착해 이들을 영국함대로 오인하고 방심한 사이에 구렁이가 담넘듯 입항했습니다. 뒤늦게 상황을 눈치챈 해안포대로부터 포격을 받았지만 한발먼저 상륙한 병력이 곧 침묵시켜 큰 피해없이 접안한 다음 대공경계망을 조직하고 수리에 들어갔습니다. 영국해군은 강력한 크릭스마린의 주력함대를 수색하고 추적하느라 이들을 막아낼 함정을 보내기어렵자, 공군에게 공을 넘겼습니다. 이에 우선 오크니제도에서 발진한 웰링턴폭격기들이 베르겐항구상공에서 500파운드폭탄을 수평폭격하고 무사히 귀환했지만 지근탄 몇발로는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못했고, 이에 RAF(영국왕립공군)는 그때까지 잊혀졌던 급강하폭격을 감행하기로 결심하고 제2파 공격대를 발진시킵니다. Geoffrey Hare중위가 인솔하는 제 800 비행중대의 스쿠아(Skua)공격기 6대는 AM 07:20에 정확히 목표상공 12,000피트에 도착해 차례로 급강하하며 500파운드폭탄을 1,500~2,000피트 고도에서 투하했고 그중 한대는 과감하게도 200피트의 저고도에서 투하했습니다. 3발의 직격탄과 2발의 지근탄을 얻어맞은 쾨니히스베르크는 승무원 30명이상이 현장에서 즉사하고 서서히 가라앉았습니다.
순양함 쾨니히스베르크는 공습당일 갑판위에 88mm대공포까지 끌어올려놓고 대공방어망을 보강했지만 결국 급강하폭격 한차례에 격침되어
연합군이 항공기로 격침시킨 최초의 추축국함정이라는 불명예를 안게되었습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사흘후인 4월 14일에는 또다시 고작 2대의 스쿠아가 보급함 벨렌팔스(Berenfals)를 공격해 좌초시켰는데, 이 배에는 육군이 사용할 각종 탄약, 대전차포와 88mm대공포가 선적되어있었기에 상륙부대의 작전에 이만저만한 차질을 빚은것이 아니었습니다. (벨렌팔스는 수심이 얕아 침몰은 면했지만 완전히 대파되어 스크랩처리 되었습니다.)
Blackburn 'Skua' : 당초 함상 전투/공격기로 개발되었지만 요격기부족으로 공군소속으로 배속되었다가 다시 해군으로 돌려진 특이한 경력을 가진 이 기체는 둔하고 추하게생긴 모습과는 딴판으로 노르웨이작전과 던케르크철수등에서 대단한 선전을 보였습니다. Bristol Perseus XIII 엔진(900마력)을 얹고 cal.303기총 4정과 방어용 루이스기관총 1정을 고정무장으로 삼고 500파운드 폭탄 1발/30파운드폭탄 8발이 탑재가능했지만, 속도와 상승성능이 지극히 불량해 도저히 전투기로 사용하기에는 어려운 기체였으나 노르웨이작전에서 대형함정을 격침시키고 다수의 He-111, Ju-88등의 폭격기까지 격추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여기에 맛들린 영국해군은 항모 글로리어스(Glorious)를 파견해 본격적인 함상운용을 시작했지만 BF-110의 뒤를이어 배치된 BF-109들에게 일방적인 격추를 당하며 대피해를 입는 참극이 연출되기도했었죠. 이 기체가 설계상 특이한점은 영국최초의 전금속제 함재기였다고하는점과 수면에 착수했을때의 생존성을 높이려 미익동체 내부에 부이(bouy)를 내장하고 수밀(水密)격벽구조를 채용한점입니다.
순양함 쾨니히스베르크의 침몰장면 : 공습전날 노르웨이군의 해안포에 전기 계통의 피해를 입어 펌프를 가동못해 배수작업을 할수없어 침몰하고말았습니다. 공습을 감행한 6대의 Skua중 2대가 날개에 20mm대공포에 피탄당했지만 결국 단한대도 격추시키지못한것을 지켜본 독일공군은 급강하폭격이 대(對)함선공격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것을 깨닫고, 곧바로 이전술을 응용해 써먹기 시작했으며 스투카의 대함선폭격을 최초로 뒤집어쓴 해군은 바로 프랑스해군이었습니다. 물론, 프랑스해군은 전비태세가 완비되어있지않았고 항복한뒤 독일에 의해 함대가 접수될것을 우려한 영국해군이 선수(?)를 쳐 오랑항에 정박해있는 거의 모든 함정들을 격침시켜버려 더이상 그 끔찍한 스투카의 맹폭을 당하지 않았지만, 어쩌면 다행한일인지도모릅니다.
파리가 함락되고 독일이
바다사자작전(See Lowe)을 실행하기위해 도버해협을 오가는 배라면 거짓말좀 보태 낚싯배까지 폭격을 퍼부었으니 말이죠. 본토항공전이 시작되기전까지 영국이 해협에서 잃은 배는 무려 3만톤이 훌쩍 넘는데, 이 대부분이 프랑스에 배치된 2, 3, 5 항공전대 소속의 스투카 300대가 올린 전과이니 독일이 스투카의 활약을 지켜보며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불보듯 뻔한일이라하겠습니다.
8. 참담한 피해 - 구식화되어가는 스투카 이처럼 스투카는 전격전의 영광을 꽃피웠고 이어진 서유럽침공작전에서도 절대적인 위력을 과시하며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이들에게도 좋은 시절은 가고있었으니 그 시작은 바로
애들러(Adler)작전 - 영국본토항공전이었죠. 사상최초로 열린 이 "공군의 전쟁"에서 후인들에게 독수리의 날이라고 회자되는 영국폭격작전에서 스투카 역시 대량으로 투입되었고 이들에게 맡겨진 목표는 주로 통신시설이나 해안감시초소, 레이다안테나 등이었는데 스투카의 정밀폭격능력을 미뤄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결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한가지 빠뜨린것이(사실은 몇가지:)) 있었으니...
줄지어 출격대기중인 스투카들 : 명문폭격항공단 StG.151소속의 스투카들로, 루프트바페의 전성기시절 용세를 보여주는듯합니다.
명문폭격항공단 StG.3 소속의 스투카 B-2의 대편대 : 스투카의 방어총좌는 좌우사격각도가 제한적이고 그나마 직후방의 사격이 곤란해 서로간의 사각을 보완해주도록 이런 사선 밀집편대를 짜서 방어화망을 구성했습니다. 그러나 저속에 중/저고도를 주로 비행하는 근접지원기의 특성에다 후방총좌의 MG 17기관총 1정은 상황을 호전시키기엔 너무나 미약한 무장이었습니다. 뿐만아니라, A형과 B형의 스투카는 방어장갑이 거의 전무해 허리케인이나 스핏파이어의 8정~12정의 cal.303 기총이 토해내는 격렬한 탄막에 포착되면 기체가 날수있는 상태라하더라도 후방사수와 파일럿은 먼저 사망하기 일쑤였습니다. 만약 폭격에 성공하더라도 저공에 저속상황(공중전에서 최악의 상황)에 빠진 스투카는 고공에서 덮치는 요격기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었고 엄호전투기들 또한 저고도로 내려오는것은 엄금되어있어 이들을 보호해줄수가 없었습니다.
좌측사진 : 몰타항공전에서 영연방공군의 구식 글래디에이터(Gladiator)전투기에게 우측날개의 증가연료탱크를 피격당하고 구사일생으로 귀환한 StG 3소속의 Ju-87 B-2. 우측사진 :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RAF(영국왕립공군)의 키티호크(Kittyhawk)전투기에게 격추당한 스투카
Desert Vulture : 사막의 매 / Robert Bailey 作 독수리의 날인 8월 12일의 다음날에 12대의 스투카편대중 5대가 허리케인전투기에게 눈깜짝할사이에 격추당했고 1주일동안 무려 38대의 기체가 더 격추당했는데, 이는 출격기전체수중에 차지한 비중이 제일 적었던것을 알게되면 본토항공전에서 가장 큰 피격추율을 보인 기체는 바로 스투카란 사실에 공감하실겁니다. (초기 피격추율 2위는 BF-110) 설상가상으로 영국공군파일럿들에게도 폭격을 위해 엔진출력을 줄인채 다이브-브레이크를 펴고 일직선으로 강하하는 스투카는 오히려 쌍발고속폭격기보다 더 손쉬운 먹이감으로 점찍히게되어 상황은 악화일로를 걸었습니다. 이런 뜻밖의 결과에 대경실색한 독일공군수뇌부는 허둥지둥 대책마련에 부심하지만, 주력폭격기들인 He-111, Do-17, Ju-88들도 충분한 엄호를 받지못해 엄청난 피해를 입고있는 상황에서 별다른 뾰족한 대안이 있을수없었고 결국 전 기체를 폭격임무에서 열외시는 결정을 내리게됩니다. 스투카의 몰락은 어떻게보면 대전초기 "우리가 하고자하면 못할것이 없다"(실제로 그랬습니다)라는 자신감에 차있던 루프트바페에게 켜진 첫번째 경고등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었고, 이들의 생존성을 높일 수단을 강구해 스투카의 결정판 D(Dora)형을 만들어내게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