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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압] 내가 가족과 인연을 끊으려는 이유
게시물ID : gomin_171528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익명YmNhZ
추천 : 9
조회수 : 413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7/07/17 22: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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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예전 생각도 나고 그냥 지금까지 일들이 생각나서 적어봅니다

아직은 인연을 끊어보려고 노력중이고, 지난 토요일까지 엄마와 카톡하며 울었네요

먼저 집은 부모님 그리고 여동생 1명 막내 남동생1명입니다

아버지는 집안 장손이고 조금 어려운 육체적 노동이 필요한 일을 하시지만 돈은 꽤 버십니다. 사장님 소리 들으면서요 골프도 치시고..

태어날때부터 할머니가 아프셨어요. 엄마 말로는 17년을 아프셨다고 하는데, 아마 엄마가 시집오고 한 9년 정도 병간호를 하신거 같아요

제가 초등학교 2학년때쯤 돌아가셨으니깐요.

아빠는 장손에, 할머니는 지병으로 생사를 오가고 자식으로서 할 수 있는건 다하시겠다는 부모님 본인의지에 따라 9년간 온갖 병수발 다 들며 육체노동도 하셨고, 저는 그런 환경속에서 자라왔습니다.

엄마는 아마 젊은 나이에 시집살이시키는 시누이들 그리고 병간호, 육체노동에 많이 힘들었나봐요

그래서 큰 딸이 저한테 많은걸 요구하셨고, 화풀이도 많이 하신걸로 보여요

기억은 안나지만 집에 빨간딱지붙고 쌀이 없어 라면 하나끓여 저 먹이고 부모님은 굶기도 했었다는데 사실 기억은 안나요

그런 환경에서 둘쨰동생 셋째동생이 태어나고

초등학교 다니면서 동생들도 보고 엄마도 도와야했습니다.

물론 엄마도 너무 힘들었을거에요 아빠도 그렇고

근데 아직 초등학교 고학년때 남동생을 유모차에 눕혀서 달보며 자장가 부르며 재우던 기억도 나네요 할머니 돌아가시고 난 후라서 빚이 많아 계속 일을 하셔야 했고, 사업이 점점 잘되고 있는 와중이라 더 노력하셨어야 했나봅니다

태풍 매미인가 닥쳐서 고등학교때 이던 저는 어린 동생들이 무서울까봐 재우면서 전기랑 전화가 다 나가서 촛불도 첨켜보고

혹시나 그 촛불때문에 동생들이 질식할까봐 밤새 동생들 숨소리만 듣고 어둠속에서 지내던 기억도 나네요

엄마아빠는 사업장때문에 집에 오시지 않으셨어요

부모님 싸움도 잦았고, 아직 초등학생인 저에게 농약먹고 죽자며 커피잔 챙겨오라고 하던 아버지 생각도 나네요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14층에서 던져버리겠다고 절 끌어내서 베란다 밖으로 던지려고 했던 엄마도 생각나네요

상체가 반쯤 14층 밖으로 나간 상태에서 한참을 매달려 있었습니다.

주택에 살때는, 빨래를 밖에 널어놓으면 엄마가 오기전에 다 걷어서 개어놔야했고 어떤 날은 걷어서 개어놔도 혼이 났고 어떤날은 안걷어도 혼이 났어요

걷은날은 빨래가 이슬을 맞았는데 개어놔서 다시 널어야한다며 일을 두번 만든다고 혼이 난거고

안걷은날은 말 그대로 안걷어서 혼이 났죠

설거지를 했던 날은 싱크대에 물기가 있다고 혼이 났고, 유산끼가 있어 낳지 못할뻔 했던 동생은 뭘하든 너무 싹싹한 동생이었습니다

지금 입밖으로 이 말을 하면 우습지만, 자주 저랑 동생앞에서 저더러 동생 똥받아 쌈이나 싸먹으라며 면박을 주셨네요

덕분에 동생은 저한테 언니라고 잘부르지도 않고 한심한 존재라 생각을 하는거 같습니다.

니가 그렇지..그런말을 참 자주 들어본거 같네요 동생한테

막내동생은 나름 조용해서 별 탈은 없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시골에 혼자 떨어져 살아서, 신도시였던 동네 아파트에 살지 못해 왕따도 당했는데 어릴때라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지 않아서 더 그랬던거 같아요 왕따의 이유도 듣고나니 그게 맞는거 같아요 아직 다시 생각해도 혼자 따로 떨어져 시골에서 살아서 그렇게 된거 같은 생각이 드네요

왕따를 당했다고 우는 저에게 '친구도 못사귀는게'라고 말하고 나가시는 엄마 생각도 나네요

첫 생리가 터졌을 때 침대에 피가 묻어 엄마를 불렀을 때 '그것도 간수하나 못하냐 다큰게'라며 화를 잔뜩 내시던 엄마도 생각나네요 어려운 빨래거리가 늘어났으니까요

크면서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는데 초등하굑 5학년때 직접 그 일을 시작하려고 알아보고 10개월 정도 억지로 했는데.

부모님께서 학원에 전화해서 못다닌다고 직접 말하라고 했던 기억도 있어요 너무 잔인했어요

12살쯤이었던거 같은데. 제손으로 제가 하고 싶은일을 관두게 했네요 돈이 없다면서요

그리고 그건 실습이 중요하고 집에서 뒷바라지가 필요한 일이었는데, 엄마는 공부잘하면 그걸 할 수 있다고 했어요

고등학교 가서 그게 아니란걸 알았지만요.

동생은 친구를 괴롭혀서 학교에 불려가도 엄마아빠는 암말 안했어요

저는 늘상 전교 10등안에 들어도 칭찬을 잘 못받았던거 같아요 그냥 그러려니 했던거 같아요

대학에 가서 처음으로 해외에 가게 됐는데,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거기에 정착하기로 맘을 먹었고

그 나라 정부 장학생으로 공부를 해서 정착을 하게 됐어요

2년동안 일을 하다가 탈이나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는데..그게 죽을만큼 싫어서 죽으려고 했어요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오기전에 유서를 썼는데, 오유에 올렸다가 많은 분들이 힘내라고 해주셔서 그때 큰 결심을 접고 아직은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감사해요 오유

그리고 한국에 돌아왔더니 제앞으로 약 천만원 정도 빚이 있더라구요

입학할때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 학자금을 넣고, 학자금을 쓰려고 했던 돈은 사업에 보태신다며 갚아주시겠다고 하더라구요

학교 다닐때 계속 아르바이트를 해와서, 미리 말해줬으면 그 학자금 조금은 갚았을 텐데..2년만에 돌아와서 갑자기 생긴 천만원의 빚은 정말 크더라구요

부모님께 이거 갚아주신다고 했는데 왜 연체가 돼서 신용등급이 떨어졌냐고 물으니 당분간 좀 갚으라고 하시더라구요

서울에서 취업을 해서 3년간 학자금 갚았지만 다 갚지는 못했어요

지금은 다 갚았어요..당분간 갚으라고 했는데 올해 2월까지 제가 다 완납했네요..그거에 대해서는 그냥 고맙다고 말하신게 끝이었어요

물론 제 학자금이지만..처음 약속이랑 달라서 좀 당황스럽고 갑자기 생긴 큰 빚이 무서웠어요 그 때는 갚아주실줄알고 생각지도 않고 있었던 돈이었거든요

 해외에서 2년간 번 돈은 달러였는데..달러 뭉치째로 빌려가셨어요 언제 갚을거냐니깐 결혼해서 좋은 남자 데려오면 갚으시겠데요

결혼안하거나 맘에 안드는 남자 데려오면 안갚으실건가봐요

그리고 여튼 서울에 취업해서 원룸에 살았는데, 남동생이 대학에 가면서 또 당분간 데리고 있으래요

저는 29살 남동생은 20살..한방에 남녀가 있기엔 좁고 불편했어요 부모님은 그런 생각은 안하시는거 같았어요

스타킹 하나 갈아신기가 너무 불편했어요 남동생은 먹던 김치찌개 냄비에서 곰팡이가 솟아올라서 뚜껑을 열고 나오는데도 아무 냄새 안나서 몰랐다며 집안일을 안하고, 전 또 집안일을 떠맡았어요 

결국 그게 우울증이 되서 약을 1년간 먹었어요 내 인생은 왜이러나.

그리고 남동생은 하고 싶은 일을 밀고 나가서 지금은 그쪽으로 계속 나가고 있어요 저는 하고 싶은일 죽어도 안된다고 제 손으로 그만두게 해놓고

남동생이 그 분야로 하고 싶다고 했을 떄 '어쩔 수 있나 하고싶다는데'라고 말하는 엄마의 말을 듣고 몇일을 울었어요 왜 나는 안되는거였는지..

그리고 지금 다시 그 나라로 와서 정착했어요.

1년에 한번 한국에 가는데 그 마저도 가면 싸움이 계속 일어나요

이유는 살이쪘다거나, 그 나라에 죽으러 간다라거나(후진국이라), 휴가차 갔는데 일어나서 설거지를 안했다거나, 일찍 일어나지 않는다는 이유 등으로요

한달전에도 갔다가 싸움이 나서 고향내려간지 24시간도 안돼서 다시 서울로 올라왔어요

그리고 다시 떠나오던 날 엄마에게 카톡을 했어요 그렇게 말하는거 너무 싫고, 화풀이 그만했음 좋겠고, 난 여태 엄마때문에 모든 자존감을 다 무너뜨리고 살았고, 우울증까지 왔다고요 그래서 좀 바껴줬음 좋겠다라고요

하지만 엄마는 갑자기 사랑찾아 떠난다는데 애미 가슴에 피눈물이 쏟아진다는 식의 이상한 말로 모든 이야기 주제를 무너뜨렸어요

현지에 남자친구가 생겨서 결혼할 거라고 데려갔었는데요. 마치 제가 여기에 살려는게 이 남자때문이라고 생각하나봐요

얘를 만나기전부터 여기 살다가 한국갔다가 다시 들어온건데

그게 또 못마땅하신거에요..다른 애들은 집사주는 남자 데려오는데 너는 뭐가 못나 현지애를 데려오냐는 식으로요

한번도 자존감을 세워준적이 없으면서. 니가 뭐가 못나서냐니..

그래서 그냥 대답 안했어요. 어차피 대답해봤자 자기가 생각하는대로 말할거고 제가 원하는 대화는 전혀 안될거니깐요

지난 토요일에도 갑자기 장문의 문자가 왔더라구요

비가 오고 마음이 슬퍼지고 저때문에 피눈물이 쏟아진데요

이해할 수 없었어요. 난 여태껏 어떻게 살아왔는데. 자존감도 못세우고 날 사랑하는 방법도 못배우고

친구들 사이에서 매일 자학개그해서 그만하라고 할 정도인데..전 저를 사랑하는 방법을 몰라요

왕따 당할때, 왕따 시킨애가 그런말을 했었어요 넌 너를 사랑할줄 알아야한다고..근데 무슨소린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엄마피해 대학가고 엄마피해 여기까지 왔는데. 근데 제가 너무 예민하데요

여동생이 저 무시하는것도 제가 너무 예민하데요.

한국갔을 때 여동생이 저희보고 '엄마아빠가 왜 너네 싫어하는지 잘~알겠다' 이렇게 남자친구랑 저앞에서 말했는데요

남자친구는 한국말을 잘해서 다 알아들어요

여태 엄마랑 싸움이 정말 너무 많아서, 친구들이 아예 인연을 끊고 살거나 좀 멀리 거리를 두고 살라고 할만큼 문제가 많았어요

대학 방학때도 내려만 가면 이런 저런 이유로 싸워서 24시간이 안돼서 다시 자취방으로 돌아오거나 하는 일이 잦았고

늘상 제가 상처받는 말을 너무 많이해서 자존감이 낮았어요

그런데 제가 너무 예민하데요

그리고 제가 하고 싶은말을 다 했더니 

어쨌든 잘지내길 바란다~♡라고 카톡이 온걸 보고 나의 상처는 더이상 보듬어 주지 않는구나

지나간 일들은 그냥 내가 다 예민해서 그런거구나 라고 치부해버리는 엄마가 너무 싫었고

그런 엄마아빠를 등에 엎고 절 늘상 한심하게 생각하는 동생도 싫어요

이 나라 와서는 자존감이 많이 높아졌어요 우울증도 없어요

그래서 저는 저의 행복을 위해서 가족과의 관계를 조금 더 놓아버리려고 해요

전 그래도 절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고, 내 또래보다 돈을 훨씬 많이 벌고, 이나라에 2층짜리 전원주택도 샀고(할부로 갚고 있지만)

기사도 있고, 곧 이사하는데 제가 그토록 싫어하는 살림을 대신해줄 가정부도 구할거에요

전 제가 행복한 길을 걷고 싶어요

지금의 내가 좋고, 감정적인 소모를 더이상 하고 싶지 않아요

인생은 행복하기도 부족하고 좋은말만 하려고 해도 세상에 아름다운 말이 너무 많아요

한국보다 날 따뜻하게 맞아주는 사람이 많고, 저를 기다려주는 사람도 많아요

여긴 엄마가 그토록 싫어했던 시집살이 문화도 없구요

그래서 저도 내 자식에게 화풀이할 일도 없을거구요

다들 좋은 생각만하고 좋은 일들만 하고 좋은 말만하고 살아요

제가 다시 읽어도 좀 복잡하고, 정신없는데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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