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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선 한효주
게시물ID : gomin_16656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소심
추천 : 0
조회수 : 611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1/06/14 17:50:09
 토요일 정오 쯤 방배역에서 사당 방향 지하철을 타고 자리에 앉자 맞은 편 끝쪽에 앉은 그녀가 눈에 띈다.

 다음 역인 사당역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면서 자리가 나기에 그녀 맞은편으로 자리로 옮긴다.

 펌을 준 머리는 어깨 아래까지 내려오고, 작은 검은 사각형 무늬가 반복된 단정한 원피스에 (팬티?)스타킹, 화려하지 않은 자줏빛 토오픈 구두를 신고 있다.

 165에 53쯤 될까?

 다리를 가지런히 모으고 꽂꽂이 앉아 기억나지 않는 어떤 핸드백을 무릎 위에 올려 놓고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린다.

 어김없이 졸 시간에 눈을 감지 못한 건 이런 것들 때문이 아니라 한효주를 닮은 얼굴 때문이다.

 밝은 피부에 투명한 화장, 수술 느낌이 살짝 들게 하는 쌍꺼풀이 수수하면서도 매력적인 한효주를 연상시킨다. (한효주가 수술했다는 뜻이 아니다. 사실 잘 모른다.)

 신도림에서 탄 사람들이 우리 사이를 가로막을 때까지 그녀를 바라본 건 다 합해봐야 몇 초에 불과하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바라보지 못한 채 아쉬운 작별을 해야겠구나 생각하고 영등포구청역즘에서 자리에서 일어선 순간 헉!

 사람들 사이에 그녀가 서 있다.

 내리는 문이 내가 앉은 쪽이라 난 빠르게 돌아선다.

 같은 곳에서 내리다니...

 하지만 그게 다다.

 문이 열리자 마음 속으로 이별을 고하며 평소처럼 걸어나가 계단을 오른다.

 내 뒤로 그녀는 내렸을까 생각하는 순간, 짧지 않은 원피스 끝을 수줍은 듯 살짝 손으로 누르고 내 앞을 뛰어 올라가는 그녀.

 사람이 많아 천천히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상황에서 그녀가 내 앞을 가로질렀던 건 뒷모습마저 뇌리에 새겨 잊혀지지 않는 한효주가 되려는 의도일까?

 앞서 가던 그녀가 5호선 환승 통로 쪽으로 멀어진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멍하니 한 30미터를 걸었을까?

 개찰구를 지나려다 정신을 차려보니 오늘은 약속이 있어 양평역으로 가야 하는데...

 습관이 무섭다고 그녀가 혼을 빼놓은 듯 난 평소 내리던 곳으로 나갈 뻔 한 것이다.

 발길을 돌려 그녀가 사라져간 통로에 들어서면서 왠지모르게 바보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지만 발걸음은 점점 빨라진다.

 사람이 많지 않다면 뛰고 있지 않을까?

 승강장에 들어서서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의자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그녀를 발견하고서야 혹시 두리번 거리는 날 보지 않았을까 하는 쪽팔린 생각이 든다.

 가는 방향도 같다니...

 하지만 이번엔 가까이 갈 수 없다.

 괜한 오해를 받을까봐 그렇다고 치자.

 그렇다고 더 멀리 달아날 수도 없다. 왠지는 모르지만...

 그녀를 다시 본 순간의 그 자리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얼음처럼 굳어서 앞만 바라본다.

 거리는 지하철 한 량(객차 하나) 길이 정도

 지하철이 도착하고 다행히도 같은 객차에 타게 되어 반대쪽 문 앞에 서서 깜깜한 밖을 바라보는 그녀가 멀찍이 보인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바라볼 수 있었지만 다행스러움과 아쉬움이 혼합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 든다.

 곧 내리고 그걸로 끝이다.

 하지만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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