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사립대 등록금 자율화 조치가 있었다. 당시 연간 144만원의 사립대 등록금은 8년만인 1997년에는 400만원에 이르렀고, 대학설립의 인가를 완화한 직후 즉 1998년과 1999년에는 등록금이 거의 오르지 않았다가 다시 가파르게 올라 지금은 연간 800만원에 이른다.
수도권에 집을 둔 학생이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지방의 학생들은 등록금 이상의 거주비용이 또 들어간다. 그래서 1년 벌어서 1년 학교 다니는 학생들이 생긴 것이다. 이를 보면 반값등록금을 요구하는 대학생들의 간절한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되고 어찌 보면 당연한 요구인지 모른다.
그러나 비용의 측면에서 조금만 눈을 돌려 보면 반값등록금 요구는 오히려 대학생들에게 더 큰 부담을 주게 됨을 알 수 있다.
먼저 초중고등학교의 의무교육에 쏟아 붓는 공교육비와 비교해보자. 2008년 기준으로 초중고등학교 학생 1인당 표준 공교육비는 연간 480만원을 넘는다. 거기에다가 학부모가 별도로 투자하는 사교육비가 또 그만큼 들어간다. 결국 초중고 학생들에게 투자하는 연간 교육비 또한 이미 연간 천만원에 이르렀다. 연간 천만원의 교육비, 그 기간이 대학은 4년밖에 안되지만 초중고등학교는 12년이나 된다.
다만 세금으로 지출하는 공교육비이기에 학부모는 부담을 느끼지 않았을 뿐이고 그래서 사교육비의 투자는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교육에서도 부의 대물림이 된다는 지적은 결국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공교육비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다가 다시 대학교육 마저 이를 되풀이하겠다는 것이 바로 반값등록금의 실체이다.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겠지만 결국 경쟁력없는 대학은 이미 나락으로 떨어진 상태이지 않은가. 대학을 졸업해도 다시 대학원이나 유학을 가야만 하는 상황은 이를 반증한다. 따라서 반값등록금 투쟁이 아닌 투자한 만큼 적절한 교육효과를 내고 있는지를 먼저 점검해야 한다. 그 비용을 누가 내든 연간 천만원의 비용이 그에 걸맞는 교육을 시키고 있는지 그것부터 점검하고 그 후에 그 비용을 누가 댈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와 함께 대학진학률 82%의 기현상도 점검해야 한다. 현재의 의무교육은 초.중학교 과정이지만 실제 내용은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이나 마찬가지다. 12년간 국가가 교육재정을 투자해서 국민을 교육시키고 있고 그것이 제대로 시행되고 있다면 고졸자의 50%는 대학을 가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정치권의 한심한 짓도 반값등록금 이슈를 부추겼다. 한나라당은 지난 2007년 대선 공약집에서 ‘가난의 고리를 끊을 수 있도록 학생별 맞춤형 장학제도를 지원’하겠다고 했고, 구체적으로 ‘대학생 근로장학금을 6천억원으로 확대’ 하겠다거나 ‘높은 이자의 학자금 융자 시스템을 다양한 장학제도로 전환’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결론은 ‘취업후 상환 학자금대출(ICL)'제도였다. 등록금 대출제도가 결국 반값등록금의 이슈를 만들어 내는데 크게 기여한 것이다.
등록금 상한제도라는 관치를 하나 끼워서 여야 정치권은 장학제도가 아닌 대출제도를 선택했고, 외상이라면 황소도 잡는다는 우리네 정서 속에서 시행 1년 6개월 만에 수많은 빚쟁이를 양산해 냈다. 무상급식의 찬반 논쟁에서 단맛과 쓴맛을 본 정치권은 앞다투어 5세 무상보육 카드를 들고 나오더니 급기야 4.27 보궐선거에서 또 다시 쓴맛을 본 한나라당은 반값등록금 이슈에 기름을 부어 오늘의 사태에 이르게 했다. 한 술 더 떠 민주당의 정동영의원은 등록금을 폐지하자는 주장도 서슴치 않고 있다. 이는 포퓰리즘을 넘어 우리 사회의 근간을 송두리째 흔들겠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제 이 문제는 대학생들의 절박한 요구를 탓하기에 앞서 교육정책의 근간을 다시 짚어 봐야 한다. 40년간 평준화의 허울 속에서 공교육이 붕괴되고 커가는 청소년을 12년씩이나 붕괴된 교실에 가두어 놓았으니 그들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대학 진학은 필수가 된 것이다. 의무교육 9년을 핀란드처럼 종합학교로 재구조화 하고 고등학교는 인생을 살아갈 준비를 하게 해야 한다. 그 중에 학문적 소양을 갖춘 특별한 학생들만 대학에 진학하하게 하는 교육의 근간을 바꾸지 않고서는 반값등록금 이슈를 해결할 뾰족한 방법은 없다.
설령 사회적 합의에 따라 조세부담률을 높여 교육재정을 확보한다고 해도 산적한 문제가 다시 기다린다. 국립대는 사립대에 비해 이미 반값등록금인데 추가로 반값을 지원해야 하는지의 문제도 있고, 부자학생은 빼고 가난한 학생만 지원한다면 학부모들 대부분은 직장을 포기하거나 자영업을 그만 두는 게 이익이 되는 상황이 올 것이다. 이미 저소득층 차등 보육료 지원에서 이러한 현상은 나타났다. 종업원이 사장에게 연봉 500만원을 더 주지 않을 바에는 올리지 말아 달라는 요구가 지금 비일비재하다. 연봉 100만원 올랐더니 연간 300만원 지원하는 보육비를 못 받게 된다는 현실인데, 두 자녀 반값등록금을 받기 위해 무슨 짓을 못하겠는가?
그것뿐이랴. 우수학생만 반값등록금을 지원하자니 가난해서 아르바이트 하느라 공부 못한 학생은 더 큰 피해가 발생하게 될 것이고, 대학을 진학하지 않은 18%의 청소년이야말로 반값등록금 이상을 지원해야 공평한 것 아닌가 하는 문제도 제기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교육허브화 정책의 도입을 공론화하자. 교육시장을 전격 개방해서 외국의 유명대학들을 한국에 끌여 들여야 한다. 우리나라의 교육시장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과열되어 있다. 폐쇄된 교육시장은 경쟁력없는 대학들이 넘쳐나는 입학생들로 인해 교육의 질과 상관없이 등록금을 올린 원인이 되었다.
교육부 발표대로라면 대학등록금 총액은 연간 14조원에 이르고 반값등록금을 시행하려면 7조원의 세금을 추가로 걷어야 한다고 한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매년 5조원이 넘는 돈이 유학비용으로 물건너 가고 있다. 만약 교육시장이 개방되어 지방 중소도시에 세계 유수의 대학과 고등학교가 부설학교를 설립하고 교육을 하게 된다면 국내의 국공사립대학들이 그들의 고객인 학생들로 하여금 반값등록금 투쟁에 나서도록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등록금이 인하되기 보다는 더 오르게 될 수도 있고 중요한 것은 그에 합당한 교육의 질이 보장되는지를 따질 수 있을 것이다. 즉 대학을 입학하기 위한 학생들만의 경쟁이 아닌 대학이 잘 가르치는 경쟁을 하게 하면 반값등록금 시위와 같은 소모적인 논쟁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