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적응이 충분히 됐을 시기이지만, 유학 1년차로서의 지난 해는 얻은 것 만큼이나 잃은 것도 많았던 한해였다.
부모님의 격려와 친구들의 응원 덕분에 타국에서 공부하는 것이 항상 즐겁고 보람되게 느껴졌다. 룸메이트와 영어로 토론을 하고, 캐나다 친구들과 축구를 하고, 내가 그렇게 원했던 야구부의 투수도 되었다. 무언가 주어진 일이 있다면 그 일에 대한 열정만으로 한 순간을 태웠고, 잘 하든 못 하든 항상 무언가를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을 큰 행복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항상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는 법. 그리움이 몰려오는 건 어쩔 수 없다. 특히나 다른 미국 친구들이 다들 밖으로 나가 여학생들과 어울리고 있을 때 외로이 책상에 홀로 앉아 책과 씨름을 해야 하는 국제 학생들은 고국을 향한 향수가 심할 수 밖에 없다. 이미 1년 전 미국을 겪었던 나조차도 향수는 지극히 당연한 일로 여겨야만 했다.
마운드에 올라 포수에게 공을 던지는 순간마다 떠오르는 고등학교 친구가 있다. 우리는 정말 거의 매일같이 글러브를 끼고 학교 운동장에 나가서 공을 던졌다. 한국에서 야구 캠프를 간 적도 없고, 누구한테서 배운 적도 없었다. 그저 시간만 나면 공을 던졌다. 순전히 둘 만의 독학이었다. 간혹 창문 밖으로 이름도 모르는 여학생들이 화이팅을 외치기도 했고, 다른 친구들이 몰려나오는 날에는 신이나서 야구 배트를 잡았다. 딱 딱 공을 때리면서 입시로 얻은 온갖 세상압박을 그렇게 날려버렸다. 미국에 살면서 편히 공부하는 학생들이 그런 맛을 겪어봤을 리 없다.
반 대항전 축구라 하면, 정말 웬만한 한국 남학생들이라면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경쟁심 유발에 짝사랑하는 여학생에게 점수도 딸 겸 매일같이 점심시간은 반 대항전 축구시합으로 먼지바람을 마시며 살았다. 공을 차면서 소리를 지르고, 누군가 반칙이라도 하면 약속이라도 한 듯 온갖 비어가 쏟아지고, 골이 터지면 정말 월드컵 부럽지 않게 골 세레머니를 열고, 싸운 후에 화해도 하고, 짧은 점심 시간 내에 내지 못한 승부를 다음으로 미루며 악수를 하기도 했다. 미국 친구들과 축구를 할 때, 정말 같은 축구라는 종목임에도 뭔가 허전하다. 열정 하나로 똘똘 뭉쳐서 몸이 터지든 말든 공만 보고 달리던 친구들은 운동장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평생 운동이 버릇이 되어버린 녀석들이라 나 같은 체구의 한국인은 상대가 될 수가 없다. 그렇기에 더욱 그들은 쉽게 플레이를 하려 들고, 뭔가가 빠진 듯 경기에 임한다.
추운 겨울날, 우스운 이야기 같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컵라면 한 사발. 야자(야간자율학습)시간이 반 정도 끝나고 쉬는 시간이면, 가방에서 미리 사 놨던 컵라면을 꺼내거나 학교 매점으로 몰려가곤 했다. 우리 학교는 도서관이 따로 증설이 되어 있어서 매점으로 가려면 학교 큰 건물 하나를 지나가야만 했다. 그 촉각을 다투는 시간을 아껴서 매점을 갈 만큼 모두가 지쳐있었다. 사이좋게 물을 부어서 라면 한 젓가락을 입에 넣으며 담소를 나누었다. 어떤 엉뚱한 녀석이 웃긴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입 안에 있던 라면을 다 "푸우~!" 하고 뱉어야 했던 적도 있다. 미워할 수 없는 녀석이다. 라면도 라면이지만, 입담 좋은 친구들의 농담 한 마디도 좋은 간식거리였으니까. 미국에 그런 것이 있을 리 없다. 미국에서도 한국산 사발면은 월마트 등의 큰 상점에 가면 파는 곳이 많다. 그러나 그 어느 곳도, 야자 쉬는 시간 중간에 친구들과 먹던 그 때 그 맛의 사발면을 파는 곳은 없다.
누구와 누구 사이의 스캔들도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오는 추억이 아닐 수 없다. 몰래 책상 속에 편지나 과자를 넣어두거나 하는 건 이미 흔한 수법이었다. 당당하게 무언가를 건내주며 '좋아한다!' 말하는 터프형은 물론이고, 사랑의 메신져라고 해서 친구를 이용해 자기의사를 전달하는 소심형도 있었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남학생들과 여학생들과의 그 이름모를 스캔들을 애교로 봐주셨다. 그러나, 나는 그 예외에 속했다. 내가 반장이라는 이유 때문이었을까. 내가 누구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사실로 밝혀지자, 담임 선생님은 우리 반 친구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나에게 야구방망이 10대의 엄벌(?)을 내리셨다. "이 노무 자슥이, 지금 임마, 니가 여자라는 동물(?)한테 빠져야 할 때냐? 반장이라는 녀석이....." 솔직히 그 때는 선생님이 원망스럽기보다 내 자신이 한심했다. 맞는 말이지, 때가 어느 땐데...... 따지고 보면 우리 선생님이 노련했던 것이다. 나를 거울삼아 모두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게 하려 하셨던 것이다. (미국에 온 이후 전화로 선생님께 안부를 전했을 때, 선생님은 나와 그 여학생의 연결자가 되기를 자처하기도 하셨다.^^) 친구들은 한결같이 포기하지 말라며 위로했지만, 그 후로는 절대 스캔들에 휘말리지 않도록 노력했다. 하지만 누군가 스캔들에 휘말리게 되면 우리는 그 상황을 항상 즐기며 그 친구를 놀리곤 했다. 서로 사귀는 사이라면 키스하고 몸을 더듬는 것이 일상인 미국에서 '스캔들'의 그 짜릿함과 즐거움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 외에도 생각 나는 건 정말 수 없이 많다. 겉도는 우정보다 진정 속을 볼 줄 알았던 내 동창들, 엄했지만 많은 은혜를 입은 정 많은 선생님들, 그 때 그 시절 냥냥거리며 선배들에게 아부하던 과외활동 부서 후배들, 그리고 나와 스캔들(?)이 났던 그 여학생......^^ 그리고 지금 당장 생각나는, 쌀밥 한 그릇에 된장찌개 말아 김치를 얹어서 먹는 밥 한 끼......ㅠ.ㅠ 한국에서는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그 많은 것들이, 정말 이 곳에 와서는 귀중하고 소중했던 것들이었다. 지금 생각해 본다.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아무 의미 없이 살았던 시간들을 반성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다들 대학교에서 내가 모를 또 다른 비애와 경험으로 인생을 차곡차곡 채우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