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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교도대 이야기 1-9
게시물ID : humorstory_17219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중대장
추천 : 28
조회수 : 1890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09/09/29 03:10:36
경비교도대 이야기 (1)

중대장


오늘 홍제동 첫째 집에 다녀오다가, 희뿌연 보름달이 걸린 도시의 
골목 어귀에서, 찌그러진 전등갓의 백열전구빛 아래에 동그마니 있는 
포장마차를 보았소.

그 모습이 어찌나 정에 겨웠던지, 발길을 멈추고 포장마차 천막을 들추지 
않을 수가 없었다오.

제법 싸아 해진 초겨울 바람이 여기저기 숭숭뚫린 포장으로 들어왔지만,
그래서 오히려 포근함이 더 느껴지더라오. 

여기, 소주 반병하고 꼼장어 좀 주시요.

그날도 꼭 이런 날씨였소.

초겨울로 접어들던, 날짜도 안 잊혀지오. 1982년 11월 12일.
황상문이가 저 세상으로 가던 날이오.

그 시절 나는 중위를 달고 전방 GP에서 팔자에 없는 중대장을 하다가 
대위 달면서 다시 보직을 받고 109 여단 본부대 보좌관으로 근무했었다오.

전방에 있을 당시 광주에서 큰 일이 터져서 주변 사단에서 많이 광주로 
차출이 되어 내려갔는 바람에 경비섹터가 배로 늘어나 고생좀 했소.

그때 2중대에서 지뢰사고가 나는 바람에 내가 다리 두개 모두 짤라져
너덜거리는 병사를 들쳐업고 나온적도 있다오. 엠원 대인지뢰를 아시오? 
폭풍지뢰, 혹은 발목지뢰라고도 하오. 격발장치가 열쇠고리 모양으로 
되어있는 그것 말이오. 

바로 눈 앞에 토끼가 철사올무에 걸려 팔락거리는 거 보고 고걸 못참고 
들어갔다가 인계철선으로 묶어놓은걸 건드린거요. 병장 씩이나 된 놈이 
말이오. 그 일로 보안대다 헌병대다 쫒아다니면서 고생 많이 했지.

뭐, 군대에서 고생한 이야기 해 봐야 무엇하겠소? 누군들 군대에서 그만한 
고생 하지 않았겠소? 하여간, 일년동안 세빠지게 그리 고생하고 나니, 
사단 본부대에 본부대장하고 볼일이 있어서 들어갔다가 작전참모가 
부르더이다. 

나하고 안면이 있던 사람인데, 나를 부르더니 너 저번일로 고생 많았다 
어디로 보내줄까 묻길래 무조건 서울 근처로 보내달라고 했소.

나중에 알고보니 광주 병력을 작전끝나고 이리저리 돌리는 과정에서 여러군데 
전출이 이루어졌던 모양이야.

하여튼, 보상인지 좌천인지 후방 수도경비대 산하부대로 보내 주더군.

가 보니, 우리 부대는 수방사같이 서울에서 근무하는게 아니라, 서울에서 
떨어져도 한참 떨어진 촌구석 같은 곳이더구만, 그래도 사람 그림자도 
볼 수 없는 GP 생활보다는 낫더이다.

연대에 신고를하고 나서 예하부대로 내려와 대대장이 사령장을 주는데, 
경비교도대 중대장 이라고 써져 있는 것이었소. 경비교도대라? 나는 
수도권 내의 중요시설 경비대 정도로 알고 있었소만, "경비대"도 
아니고 "경비 교도대"라니?

이미 감을 잡으셨겠지만, 경비 교도대는 교도소 경비가 주 임무였소.

원래 경비교도대는 국방부가 아니라 내무부소속이고, 병사들은 육군에서
차출되어 오지만 지휘관은 교정공무원들이 하게 되어있는데, 그때는 부마
사태니 뭐니 해서 군에서 파견된 장교가 지휘관을 하던게 한시적으로 
굳어져서 운용이 된 모양이야. 아마 지금은 벌써 원위치 됐을거요.

어쨌든, 묘한 흥미를 가지고 작전계획을 들쳐보았소. 경비대든 교도대든
업무 파악은 해야 하지 않겠소?

다음날, 부대로 출근하는 길에 사령부에 들려서 보좌관을 만나 신고를 하고
교도소로 향했소. 

교도소 주변 마을은 그저 평범해 보였지만, 그다지 활기있어 보이지는
않았소. 교도소 앞은 황량한 공터가 하나 있었고, 철문 옆에 조그만 철창이
달린 면회접수 창구가 있어 그곳에 용건을 말하고 신분증을 맡기고 들어가게
되어있소. 

문은 철문, 창살문, 철조망이 쳐진 철망문(전기식)으로 삼중으로 되어있고
일단 교도소 안으로 한발자국이라도 들어서면 절대 개인 혼자서는 돌아다닐 
수 없게 되어있소.

내 사무실에 더블백을 놓고 일단 소장실로 갔소. 소장은 소탈한 성격의
대머리인 중년의 남자였소. 형식적인 인사를 하고 이런 저런 환담을 
하다가 소장이 갑자기 물었소. 

"어이 중대장, 만약 전쟁이 나면 당신 임무가 뭔지 알아?"

갑작스러운데다가 아직 임무철 조차 들춰보지도 않은 터라 좀 당황이 되었소.

내가 머뭇거리자, 소장은 아무말 없이 손등으로 자신의 목을 긋는 시늉을
하는 것이었소. 전쟁상태가 되면 나의 임무는 재소자들을 등급에 따라 선별
사살 또는 이동시키는 것이란 말이었소. 

전시에 교도소 재소자들이 밖으로 나올 경우, 그들은 반 사회적 세력이 될 
소지가 충분이 있기 때문이오. 즉 적에게 좋은 활용 수단이 된다 그말이오.

하지만, 내가 그런 작전 문구를 직접 읽어 본것은 아니오.

그리고, 소장은 가볍게 한마디 덧붙이더이다.

"뭐, 전쟁이란게 쉽게 일어나는것은 아니니까."

나에게 더욱 긴장을 불러일으켰던 것은, 요즘같은 평시에 "전쟁"을 가정한
임무를 상상하는 것 보다, 보다 실제적인 임무, 즉, 사형수의 형 집행
참관이었소.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사형집행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오.

신문에서 흉악범 아무개 사형확정 이라는 기사가 실린 후에도, 그 사형수는
대개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4-5년씩 있다가 일반인이 모르는 사이에
형 집행이 되는거요. 사형판결을 받았다 해서 그냥 아무때나 형집행이
되는것이 아니오. 

형 집행을 하려면 법무부 장관 인가에 거쳐 대통령 결재가 나야 하는 
사실을 아시오? 사람의 생명에 관계된 일이라, 신중하게 여러겹의 
절차를 만들어 놓은 것이오.

이런 절차상의 불편함 뿐만 아니라, 역대 대통령들이 바쁘기도 하거니와,
또 내가 대통령 입장이라도 몇년 안되는 임기 중간에 사람 목숨을 빼앗아도
되겠냐는 서류에 싸인을 하기에는 심기가 영 불편하지 않겠소?

또한 임기중에 사형집행인이 많다는 것 자체도 정치적으로 하나도 좋을것이
없고 말이오. 대부분 대통령들이 자신들이 집권하는 동안에는 사형당한 
흉악범이 하나도 없는 태평성대였다는 말을 듣고싶지 않겠냐 이말이오.

여튼, 죽은 사람을 본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내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을 본다는 것은 나에게는 큰 부담이 아닐수 없었소.

사형장에 가보신 일은 물론 없으시겠지요만, 사형장을 보면 마루로 된
가로세로 약 5미터 정도의 방에, 약간 높음직한 강단과 같은 곳에 길쭉한
책상과 의자가 있고, 그 맞은편에는 교수형 형구들, 밧줄과 레바를 누르면
밑으로 열리는 전기식 뚜껑이 있소. 그 앞에는 검은색 커튼이 있소.

형 집행에는 교도소장, 경비교도대 중대장, 경비병력 2인, 교도관 2인, 
그리고 형구 조작 2인 그 외에 필요시 목사, 신부, 승려등 종교인, 그리고 
사망확인을 위한 검시관 1인이 참관을 하오.

사형수가 집행장에 들어오면 본인 요청에 따라 유언을 받아적어 주거나
세례, 영세 혹은 염불을 해 주게 되어있소. 그 후에는 머리에 검은 두건을
씌우고 목에 밧줄을 걸고 소장의 명령에 따라 레바를 당기는 것이오.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사형수는 정확히 2.5메타 아래로 떨어지며 목에
걸리는 그 충격에 의해 순간적으로 실신을 하며 조용하게 숨을 거두게 되오.

30분간 그대로 현장을 보존한 후에 시신을 내려서 검시관의 판단에 따라
시신을 안치소로 옮겨가고 그 후에 가족 인도절차를 밟게 되오.

30분간의 형 집행으로도 숨이 끊어지지 않은 경우에는 살려주게 되어있다,
아니다 또 매단다 등등 속설이 있는걸로 아는데, 다 부질없는 소리요.

반시간이나 매달리고 살아있을 사람은 지구상에 단 한명도 없기 때문이오.

이런 이야기를 하니 내가 형 집행을 무척 많이 참관한 것 같은 생각을 
하는가본데 근무기간 동안 딱 한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소. 
그날 두 명 집행하는것을 참관하였소만, 다시는 보고싶지 않은 광경이었지.

형 집행이 있던 날은 참관한 병력을 데리고 나와 교도대장은 집에 들어가지 
않고 밤 늦게 술을 퍼 마셨소만, 소장 이야기가 형 집행이 있는 날은 집에
들어가면 귀신이 따라가니 집에 가지 말고 술이나 밤새 마셔라 하더이다. 

딱이 그게 찝찝해서라기 보다는 눈앞에서 쉽게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니 인생이 저렇게 허무하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영 착찹해서 술이라도 
한잔 해야겠더이다. 자, 이렇게 말이요.

크~~ 술맛 좋소. 역시 두꺼비는 입빠이 시야시해서 단숨에 넘겨야 제맛이오.
꼼장어도 달콤한 고추장 맛이 일품이구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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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교도대 이야기 (2)

중대장


근데, 교도소를 아시오? 이중에서 교도소를 들락거렸던 분이 있을지 
모르오만, 아마 대부분이 교도소와는 별 인연이 없으신 분들일게요.

교도소란게 보통 군대의 군기교육대 처럼 하루 온종일 재소자들을 
중노동이나 뺑뺑이 돌리는 곳인줄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소.

보통 교도소의 일과는 7시에 시작되어 저녁 5시면 끝이 나고, 일과 작업도
몇가지 되지는 않지만 목공이나 용접, 정비 혹은 일반 사역등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해서 할 수 있고 일도 그렇게 힘들게 시키지는 않소.

소장의 말을 빌리면, 범죄자들이란게 기본적으로 보통사람들 보다 인내력이
부족하여 상황을 참지를 못하고 사고를 치고 들어온 인간들이라, 이런 
사람들을 빡세게 몰아치며 일을 시키면 무슨 일이 나도 난다는 것이었소.

다만 가끔 죄수들끼리 서열싸움으로 살벌한 분위기가 연출된다고 하는데,
그럴때는 다른것 필요없고 몇놈 그냥 조져서 독방에 며칠 갖다놓으면 잠잠
해진다고 하오.

물론, 작업 종료후에는 전원 빨가벗겨서 철저하게, 세밀하게 다 검사를 하오. 

만에 하나라도 사고가 터지면 소장 목이 간당간당 하기 때문이오만, 
그 임무는 우리 중대 소관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이상은 나도 잘 모르오.

경비 교도대 병사들이 재소자들과 직접 대면할 기회는 거의 없소. 

경비교도대는 높은 경비초소에서 경계근무만 서고 근무가 끝나면 교대하고 
내무반으로 가기 때문이오. 

경비교도대는 일반 전방 근무 병사들보다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는데, 
좋은점은 교도소 내 자질구레한 작업은 재소자들 몫이기 때문에 이런저런 
사역에 동원될 경우가 적기 때문이고, 나쁜점은 재소자들과 비록 대면은 
안할지언정 한 울타리 안에서 같이 생활하기 때문에, 항상 긴장을 해야하고
군기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생활이 타이트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겠소.

내가 사형수 황상문이를 처음 만난것은 부임후 이듬해 여름이었소.

경비대 초소에서 근무기록 서류철을 보다가, 소장에게 전화가 와서 소장실로
가는 도중이었소.

통상 경비교도대 초소에서 소장실로 가려면 경비대 본부를 거쳐 관리동
복도로 가야 하오만, 그날은 하필이면 사동을 가로질러가는 지름길을 택한것이
탈이었소. 

그날따라 부스스하게 가랑비가 내렸는데, 교도관 숙소 뒤로 나있는 길로
빙 돌지 않고 그냥 사동을 가로질러 가는 높이 약 3메타의 콘크리트 
옹벽 위로 뛰어가다가 그만 빗물에 쭉 미끄러지는 바람에 굴러서 수감자 
운동장 위로 떨어져 버린 것이었소. 

하필이면 옹벽 위에 쇠꼬챙이가 비죽 나와 있었던지라, 넘어지면서 허벅지가
쇠꼬챙이에 좌악 찢어져 버리는 대형사고가 터져버린 것이었소.

허벅지를 찢긴데다가 3메타가 넘는 곳에서 떨어져 버렸으니, 어딘들 온전
하겠소? 떨어지면서 악 하고 고함을 치면서 두 발로 착지를 하는 순간 
굴러버렸는데, 어디가 부닥쳤는지 또 어디가 부러졌는지 멍 하니 정신이 
하나도 없고 공중에 붕 뜬듯 하더이다.

비가 와서 처덕처덕한 땅위에 너덜너덜한 군복위로 피가 철철 흐르는데, 
옛날에 지뢰밟아 다리 날라간 간 병장놈 얼굴이 어른거리더이다.

제법 고인 빗물위로 피가 좌악 퍼져가면서 어마어마한 고통이 몰려들고 
정신이 가물가물해지는데, 이제는 죽는구나 생각 하니까 그 짧은 시간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스쳐가더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조금 있으니 웅성웅성 하는 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철벅철벅 거리면서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소. 

그래서 아이쿠 사람 살려주오 나 죽소 하고 소리를 쳤지. 

뛰어온 그 사람이 나를 들쳐 업고 가는동안 아이쿠 나 죽네 나죽네 
소리가 절로 나오더이다. 

그때까지 그 사람이 누군지 얼굴이 어찌 생겼는지 고통에 소리치느라고 
하나도 몰랐지.

허벅지가 찢어진 직후에는 아픔을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진짜로 다리를 
누가 톱으로 슬근슬근 잘라내는 듯한 아픔이 몰려왔소. 내가 업혀서 하도 
나죽네 나죽네 하니까 그사람이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지르더이다.


- 아 죽긴 누가죽어! 병신 염병하고 있네! 이새끼야 니가 뒈지는게 어떤건지 
  알기나 해?


그 말을 들으면서 어렴풋이 기절을 했소이다.

다시 격렬한 통증을 느끼고 깨어났을 때는 군사령부 통합 병원 중환자실이었고
시간은 다음날 오후가 훨씬 지나서였소. 비는 말끔히 개어있었고, 옆에는 
나같은 환자들이 무슨 링겔주사다 뭐다 줄줄이 매달고 누워있더군.

내 입원 생활은 그로부터 두달동안이나 계속되었소.

군의관이 천만다행으로 뼈는 다치지 않았고 부분적으로 근육 파열이라 
앞으로 격심한 운동만 하지 않으면 군대생활 하는데는 이상이 없다고 
하더이다.

그럭저럭 다리도 거의 낫고 해서 퇴원을 하고 교도소로 출근해 소장을 만났소.
소장이 무척 반기더이다. 그도 그럴것이 나 없는동안 내 대신 보고철을 다
관리해야 했을 것이니 좀 고달팠을 것이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사고가 났던 날 누가 나를 들쳐업고 뛰었는지
궁금해서 물어보았는데, 그게 바로 황상문이었소.

황상문이는 2년전에 흉악한 살인죄를 짓고 사형확정 판결을 받고 들어온 
사형수라 하였소.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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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교도대 이야기 (3)

중대장


교도소에서는 사형수는 명찰 색깔이 틀리더이다. 빨간색 명찰에 죄수번호를
달고 있었는데, 사형수는 교도소 안에서도 다른 죄수들이 절대 건드리지를
않는다 하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보통 사형수 한명에 일반 재소자 
일곱명을 같이 수감한다 하더이다.

자자 어서 한잔 드시고 잔 주시오. 오늘은 술맛이 나는구려.

황상문이는 공사장 인부로 일을 하던중 동료와 술좌석에서 시비가 붙어
흉기를 휘둘르는 바람에 동료 두명을 죽게 하고 한명을 불구로 만들었다
하여 사형을 선고받고 항소 했으나 결국 최종적으로 사형 확정판결을 받았다 
하오.

기억에 없을 것이오만, 당시에 신문 사회면에도 기사가 나온걸로 알고 있소.

늘 그렇듯이, 공사장 인부의 우발적인 만취 다툼 살인사건 같은 일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빨리 사라지게 마련이오.

그때 그 사건이후 부터 나는 황상문이를 눈여겨 보기 시작했소.

어쨌거나 그는 나의 생명의 은인이랄 수도 있는 사람이기도 하거니와,
그가 나를 들쳐업고 뛰면서 나에게 소리지른 욕설이 계속 나의 귓전을
가슴아프게 맴도는 것이었소.

- 아 죽긴 누가죽어! 병신 염병하고 있네! 이새끼야 니가 뒈지는게 어떤건지 
  알기나 해?

그렇소. 실제 죽음을 목전에 놓고 있는 그가, 결코 죽음에 이르지도 못할 
부상을 입고서 오히려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내가 얼마나 우습게 보였겠소.

사형 판결로 죽음을 보장받은 그가 생명을 보장받은 나를 살리려고 빗길을
업고 뛰었던 것이었소.

규정상 경비교도대는 죄수들과 접촉이 금지되어 있소.

그러나 어쩌다 철망을 사이에 두고 죄수 옆을 지나게 되는 경우에는,
항상 나의 눈은 황상문이를 찾고 있었소. 

가끔씩 나는 눈인사를 하곤 했는데, 황상문이는 굳어진 표정으로 고개를
휙 돌려버리면서 외면을 하는 것이었소.

어느날엔가, 교도소장 사무실을 가기 위해 죄수 운동장을 둘러싸고 있는 
철망 옆을 지나갈 때였소. 마침 황상문이가 철조망 가까이 있는것이 보였고
나는 그를 지나치면서 계속 그를 주시하였소.

그런데, 그의 눈이 무엇인가 급하게 나를 부르는 것 같았소.

나는 나도 모르게 그에게 가까이 갔는데, 그가 황급히 나에게 작은 종이
쪽지를 쥐어주며 눈을 꿈쩍이고는 급히 돌아가는 것이었소.

얼떨결에 받기는 받았는데, 나중에 경비대로 돌아와 꼬깃꼬깃한 쪽지를 
펼쳐보니 러시아 문자같은 것이 쓰여있었소.

아, 여기 그때 그 쪽지를 복사해 놓은것이 있소, 보시겠소?

Уважаемые СангМоон, 

Мы сожалеем сообщить Вам, что дамы, которые вы считаете, что Ваша мать не твоя мать. 

Место, где вы родились, упомянутые & тратить свое детство, очевидно, в другом месте. 

Надеюсь, вы найдете свою семью в ближайшее время. 

С уважением, 

Сергей Гаврилов

그가 나를 무엇을 믿고 이런 쪽지를 주었는지 몰랐지만, 내가 그에게 신세를
진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뜻모를 쪽지까지 받아서 뭘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내심 불쾌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였소.

바로 교도소장에게 보고를 하러 가는 도중, 나는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소.
그리고, 그날 저녁에 알파벳도 모르는 쏘련말을, 그날 어렵사리 읍내까지 가서
산 러시아 사전을 찾아가면서 해석을 하였소.

TO BE CONTINUED.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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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교도대 이야기 (4)

중대장



커~~ 오늘따라 술맛이 좋소. 아주머니, 여기 두꺼비 한마리 더 주시요.
어, 거기 홍합국물하고 낙지도 좀 주시구려.
자자, 술 좀 드시요.

그때 당시만 해도 적성국가의 문건을 중대장이 소지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충분히 문책감이 되고도 남았던 시절이었소.

뭐? 아, 그 고르바쵸프가 제주도에 온 것은 훨씬 이후의 일이오.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쏘련과 중국은 적성국가였지.

그날 밤, 새벽 세시까지 그 몇줄 안되는 쏘련말을 가지고 씨름을 했소.
그러나, 그 내용은, 간첩들 접선 문구도 아니었고, 군사 기밀도 아니고,
그냥 개인에게 가는 편지일 뿐이었소. 그 내용은 다음과 같소.

황상문씨,
당신이 모친이라고 생각하는 그 부인이 당신의 모친이 아님을 전해
드리게 되어서 유감입니다. 출생지와 유년기를 보낸 지명이
비슷하기는 하지만, 다른 곳입니다. 
조속한 시일내에 가족을 찾기를 희망합니다.

세르게이 가블리로프

혹시 이 문구속에 간첩들이 사용하는 암호같은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으나, 일단 황상문이에게 사연을 들어보는것이 먼저라고 생각을 하였소.

며칠 후에, 평소 나와 친하게 지냈던 김상필 교도관에게 부탁해서, 
그의 감시하에 황상문이를 만날 수 있었소.

내가 슬그머니 쪽지를 보여주면서 이게 무엇인가 물어보았더니, 그의
눈이 바로 분노로 이글거리다가, 내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음을
알려주자, 바로 안심하는 표정으로 돌아가더이다.

그리고, 마치 맛난 음식을 앞에 놓은 강아지모양, 게걸스럽게 그 편지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외다.

그러나, 그 편지가 비록 평범한 내용이었다고는 하나, 만에 하나
보통사람들은 알아차리지 못할 어떤 암호같은 것이 있을수도 있다는
생각에, 먼저 이 편지를 받은 배경에 대해 이야기 하라고 하였소.

- 어머니를 찾나?
- ............
- 러시아 당국에 어머니를 수소문하는 모양이군?
- ............
- 어머니가 쏘련에 있나?
- 아무말 하지 않으면 나도 당신을 도울 수 없소.

묵묵부답으로 앉아있던 그가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지르더이다.

- 아이 씨발 아무것도 모른다니까!!

그러면서 그 편지 쪼가리 쪽지를 도로 빼앗을듯이 벌떡 일어서는 것이었소.

나도 순간적으로 놀랬거니와, 상필이가 더 놀라서 순간적으로 진압봉 
옆구리에 손을 얹더이다. 허나, 황상문이는 이내 절망의 표정으로 바뀌면서, 
펄썩 그자리에 다시 앉았소. 허긴, 수갑에 포승으로 묶여있는 황상문이가 
뭘 어찌 하겠소?

그날은 그렇게 돌아올 수 밖에 없었는데, 하도 허탈하기도 하고 이런
애들 장난같은 일에 휘말려서 밤잠도 설쳐가며 쏘련말 번역한다고 설친것을
생각하니 너무 창피하더이다. 

그래서, 수첩 겉장 비닐에 그 문건을 꾸겨넣고 보고를 할 기회를 찾다가 
그만 잊어버렸소. 아니, 잊어버렸다기 보다, 보고하면 그 성질 더러운 
본부 대대장한테 좋은 소리 들을 리가 없으니까 그냥 우야무야 넘겨버렸다는 
말이 맞을 것이오.

그 당시에 어떤 전문대 다니는 놈이 돈깨나 있는 지 부모를 죽이고 
방화를 해버린 사건이 있었소. 유산을 노리고 그랬던 모양인데, 
아무튼 그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끌벅적 했었소.

그때 그놈 재판에 모든 사람들의 여론이 집중되고, 저런 놈은
빨리 재판하고 판결해서 빠른 시일내에 달아버려야 된다는 여론이 
비등했었소.

그때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는 마당이어서, 여론의 압력을 받았는지는
몰라도, 재판이 일사천리로 신속하게 이루어 지고 역시나 사형판결이 
내려졌었소. 그때는 국회의원 선거니 뭐니 나는 관심도 없었소만.

그당시 극히 이례적으로 그 놈이 사형되었다는 신문기사까지 난 
것으로 아오. 사형집행은 통상 보도를 하지 않는것이 상례라오.

그때 어떻게 그 소식을 들었는지, 교도소 내 공기가 매우 험악해졌는데,
어쩐일인지 사형수들의 형 집행을 내친김에 다 조기에 집행해 버린다는
소문이 돌았었소. 

선거를 앞두고 여론을 진정시키기 위한 편법이니 뭐니 말들이 많았소만 
나는 원체 그런 소리는 못 알아먹는 위인이기도 하거니와 분위기가 
분위기인지라 성질 더러운 대대장이 매일같이 교도소 상황보고를 
직접 챙기는 바람에 아주 괴로왔소.

우리 경비교도대 아이들도 매일같이 증가초소 운영으로 엄청나게 피곤하고
신경이 곤두서 있었던 때라 나도 면도날같이 긴장을 해야 했기에
굉장이 피곤했소.

그렇게 한달 정도 지났을까? 김상필이가 은밀하게 나를 부르더니,
황상문이가 단 한번만이라도 좋으니 나를 만나고 싶다고 전해달라고
하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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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교도대 이야기 (5)

중대장


허허허.. 이제서야 좀 알딸딸 하오. 좀 어떠시오? 어허 술 잘 드시오.
옛날에 한가닥 하셨을 분이오. 허허허.. 어이쿠 이러지 마시오. 좀
천천히 듭시다.

황상문이가 나를 보잔다고? 순간적으로 호기심이 생겼지만, 이내 짜증이 
밀려왔소. 비상이라고 매일같이 증가초소 운영에 중대원들에게 지급한 
실탄 두발씩이 너무 신경이 쓰여서 총기들 안전 단속하느라고 돌아버릴 
지경이었소.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총기나 지뢰사고 나면 이거 정말 골치아프오.
군대밥 다 먹었다고 보면 되는거요. 게다가 병사들 나이가 한참 좌충우돌할
새파란 나이들 아니오? 그런 애들에게 총에다 실탄까지 쥐어 주었으니
대한민국 육군 중대장도 정말 못해먹을 직업이오. 

어쨋든 일단 알았다고 하고 또 그냥 며칠을 보내버렸소.

그런데 어느날 밤 새벽 한두시쯤 되었을까? 두번째 동초근무자 순찰을 
돌고나니 저 아래 사동에서 누가 왁왁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거요.

안그래도 긴장을 해 있는 마당에 더욱 신경이 날카로와져서 행정반으로
뛰어와서 교도관 행정반 - 당시에 간수행정반이라고도 했었소 - 
으로 전화를 넣었소.

수화기 너머로 와글와글거리는 어수선한 광경의 소음이 그대로 들어
왔는데, 죄수중의 하나가 경비교도대 중대장 나오라며 자해를 했다
하더이다.

아이고, 하필이면 나야? 교도소 죄수들하고 중대장이 무슨 상관이라고?
죄수가 나를 어떻게 알고 중대장 나오라고 지랄인가? 허허허.. 정신이 
아뜩하더이다. 죄수 입에서 내 이름이 나오고 난동을 부렸으니 이제 
군복 벗는구나 하고 생각했소.

근데, 퍼뜩 황상문이 생각이 나더이다. 그렇지, 죄수중에 나를 아는놈은
황상문이 뿐인데, 교도관 행정반으로 그야말로 워커발에 불이 나게 뛰어갔지.

아니나 다를까 황상문이가 피투성이가 된 채 포승에 묶여서 발광하고
있더이다. 교도관 셋이 달려들어서 붙들고 있는데, 이제 황상문이도 지쳤는지
힘겹게 몸부림치고 있었소.

아 순간적으로 확 돌아버려서 그냥 날러서 쌰대기를 몇 대 날렸지. 

이 놈이 뭔데 중대장을 오라가라 하는데다가 되지도 않는 쏘련말 쪽지 
나부랑이로 내 군대생활에 재를 뿌리나 하는 분노의 생각뿐이었소.

워카발이 막 나가는것을 당직 교도대장(요즘계급으로 교령)이 막고 나를 
무섭게 째려보면서 어이 중대장! 죄수 구타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시요? 
하더이다. 평소 좀 안좋았거든. 허허허..

그 옆에 김상필이는 얼굴이 하얘져서 어쩔줄 몰라하고 있더이다.

김상필이? 아 그 친구 교령진급 떨어지고나서 교도관 옷 벗고 인천에서 
전자제품 대리점하면서 자-알 삽디다. 워낙 착해 빠진 친구라.. 지금도 
그때 이야기 하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어요..허허허...

자자, 한잔 쭈욱 듭시다.

그렇게 한바탕 소동을 일으키고 나서 좀 잠잠해졌겠지. 나는 여전히 씩씩
거리고 황상문이는 의무대 침상에 누워서 피투성이 손목을 붕대로 칭칭감고
눈을 꼭 감고 누워 있고... 김상필이는 아직고 정신없이 왔다갔다하고.

그러다가 교도대장이 어이 중대장 잠깐 봅시다 하는거라.

그러더니 이거 소장이 알아봐야 나한테 하나 좋을거 없고, 또 당신네 본부
대대장 알아봐야 당신 좋을거 하나 없으니 그냥 넘어갑시다 하더이다.

그래 가만 생각을 해 보니 그말도 맞는지라, 그럼 그럽시다. 단, 황상문이가
나한테 무슨 원한이 있어서 그 지랄을 쳤는지 나는 그걸 알아야겠소 했지.

그래서 의무실에서 황상문이하고 그 밤중에 대면을 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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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교도대 이야기 (6)

중대장



황상문이는 이제 기진맥진 한 채로 두 눈을 꼭 감고 누워있었소.
사형수라는 중죄인이라 피투성이 손목에는 포승줄이 느슨하게나마
묶여있었소.

내가 적잖이 화가 누그러져서 물었소.

- 그래 왜 나를 보자고 했나?

- 그 영어편지 뭐라 써 있수?

황상문이는 쏘련말로 된 편지를 영어로 알고 있었소. 그러면서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보는 것이었소.

- 그래, 그 영어편지 내용을 말하기 전에, 대답부터 하시오.
  어머니를 찾고있나?

황상문이는 다시 눈을 지긋이 감았소. 눈물이 누운채 꼭 감고있는 눈가 양
옆으로 흘러내려 군용 간이침대 시트를 검게 물들이고 있었소.

그는 이야기를 하는 내내 감정이 격해지는지 가끔 말문이 막히기도 했지만,
그런대로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갔소.

황상문이는 어릴때 부모와 헤어졌소. 어떻게 헤어졌는지는 그도 자세히
기억을 못하나, 그가 기억하기로는 꽤 인텔리였던 아버지가 병으로 죽고, 
어머니는 돈을 번다고 울면서 몇번을 돌아보며 집을 나갔는데, 그게 
마지막 본 어머니의 모습이었다고 하더이다. 

부모와 헤어지고 나서 할머니와 열두살 까지 같이 살았는데, 할머니마저 
돌아가시고 고아가 된다는, 그야말로 늘상 듣던 전형적인 비극 스토리의 
주인공이더이다.

그런데, 그가 할머니와 사는 동안 어머니에게서 몇번 편지가 온 것 같은데,
평소 집나간 어머니를 새끼 버리고 사내찾아 집나간 화냥년이라 증오해 온
할머니는 엄마 편지가 아니라며 그 편지들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는 것이오.

황상문이는 언젠가 우연히 할머니가 미처 태우지 못한 편지 봉투만을 
하나 빼돌렸는데, 거기에는 불에 타서 알아보기는 힘들지만, Drezna 라는 
지명이 써 있었던 모양이오. 그나마 어머니의 편지는 몇년 안가서
끊어져버렸고.

황상문이는 동네 대학생에게 이게 어디냐고 물었고, 대학생은 처음에는
귀찮다고 모른다 했다가, 황상문이가 하도 집요하게 달라붙으니 며칠을 
도서관이다 뭐다 하면서 여기저기 찾아보고는 러시아에 있는 도시라고 
대답을 해 주었던 모양이오. 실제로 러시아 중부에 그런 도시가 있긴 있는 
모양이오.

그런데, 그 말을 철썩같이 믿은 황상문이가, 여러가지 경로를 통해서
러시아의 드레즈나라는 곳을 수소문하기 시작을 한 것이요. 하지만, 잘
아시다시피, 그때만 해도 일반 민간인이 러시아를 여행한다는 것은 참
힘들었소. 몇몇 대기업 주재원이나 외교관 같은 사람들이나 러시아에 갈 수
있었지 그것도 모스크바 같은 큰 도시에나 가능했지 러시아 중앙의 
도시에 가는것은 참 힘들었소.

게다가 황상문이는 그때쯔음 열일곱에 저지를 폭력전과를 벌써 두개나
달고 있었고, 돈도, 집도 절도 없는 그가 해외에 나간다는 것은 불가능
했소.

그 상태에서 수소문을 했으니 그게 효과가 있을 리가 없었겠지. 황상문이는
긴 세월을 허공에 헛발질만 하며 어머니를 애타게 그리며 살아온 것이요.

그의 말을 다 듣고 그래 그러면 그 어머니한테서 왔다는 편지봉투를 아직도 
갖고 있느냐 했더니 갖고 있대.

그래 좀 보자 했더니 자기 사동 사물함에 있다고 해서 교도관 하나를 시켜
갖고오게 했소. 

그런데 그 다 타버린 편지봉투를 보는 순간 나는 정말 황당함을 금지 못했소. 
드레즈나 라는 것은 Drezna 뒤가 타버려 하나의 단어가 중간에 끊겨버린 
형국이고, 게다가 맨 밑의 줄에는, CA. U 라는 글자가 있었던 것이오. 
U 의 뒤는 역시 타버리고 없고 말이요.

솔직히 얘기하면, 나도 그 편지를 보고나서도 한동안 그게 러시아에서
온 편지인줄 알았소. 그러나 그 당시에 러시아의 중부 도시에서 온 편지를
받는 일반인이 얼마나 되겠소? 게다가 황상문이는 중범죄를 짓고 감옥에
들어온 죄인이오. 게다가 돈벌러 나갔다는 사람이 러시아의 중부 도시로
갔다? 뭔가 상식에 맞지 않더란 말이오. 찬찬히 생각을 해 보고 또 
해보았는데. 맙소사 그것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온 편지더란 말이오.

미국 캘리포니아의 드레즈.. 뭐라고 하는 작은 도시가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게 러시아에서 온 편지가 아니라는 것이 거의 확실하더라는 것이요.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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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교도대 이야기 (7)

중대장



차-암 내.. 쯧쯧쯔... 지금도 그 생각하면.. 휴- 참.. 인생이란게 뭔지..
자자... 한잔 합시다. 크--- 허허허.. 인생이란게 참 허무한 것이오.
안 그렇소?
 
게다가 말이오, 내가 편지봉투를 찬찬히 뜯어보니, 편지를 보낸 사람도 
영어를 모르는 모양이라,
 
알파벳트를 개발새발 그리듯이 써 넣었는데, 드레즈나의 Z 가 S 인지 
Z 인지도 알아보기도 힘들더이다.

그리고 가만 생각을 해 보니, 그게 주소명인지, 사람 이름인지, 회사이름
인지도 알 수도 없는 일 아니오?

그걸 러시아 도시라고 일러준 대학생을 나무랄 수도 없는것이, 그 학생은
그래도 성의를 가지고 황상문이 부탁을 들어준것이고, 황상문이가 그
학생말을 믿고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다가, 하도 러시아쪽에서 반응이
없으니까, 급기야 일 저지르고 감옥에 오기 전에는 되지도 않는 말을 
꾸며서 편지질을 해 댄 모양이었소. 어려서 러시아에서 살았다거나,
지도에서 그 근처 지명을 따다가 그곳 정황을 그럴듯 하게 꾸며서 말이오.

의무실 당직자는 벌써 의자에 앉아 고개를 뒤로 제치고 잠이 들어 있었고,
김상필이는 어디갔는지 보이지 않았소. 황상문이와 나만이 말없는 대화를
하고 있었소.

교도소 의무실의 형광등이 지-잉 소리를 내며 창백하게 누워있는 황상문이의
얼굴을 더욱 처연하게 비추고 있었소.

- 저.. 말이우.

황상문이가 한참만에 입을 열었소.

- 나.. 죽기전에 우리 어머니 얼굴 한번 보는게 소원이우.

- 왜? 얼굴도 생각 안나는 어머니 얼굴 봐서 뭐하게? 원망이라도 할려구?

- 아니. 그냥 얼굴 한번만 보고 죽었으면 좋겠수다. 편지 돌려주쇼.

나는 말없이 주변을 한 번 돌아보고는, 업무 수첩 비닐에 구겨져 들어있던 
편지와 불타버린 편지봉투를 돌려주었소. 러시아에서 온 편지는 그러나 
내가 해석을 하느라 끙끙 거릴때 복사 해 놓은 것이 있었소. 그게 내가 
보여준 그 편지요. 하지만 나는 차마 그 편지내용을 말해줄 수가 없었소.

간첩이나 보안상의 문제는 내 머리속에서 이미 저 멀리 날아간지 오래였고,
황상문이의 어머니에 대한 어처구니 없는, 그러나 그 순수한 희망에 
도저히 상처를 줄 수 없었기 때문이요.

황상문이의 어머니에 대한 집착은 이미 현실을 떠나 그의 상상속에서
구체화 되어 있었고, 황상문이는 그 환상을 끊임없이 쫒아감으로써, 그에게
닥친 사형수라는 막다른 골목에서 처절한 몸부림을 치는 중이었던것 같소.


그 날은 그렇게 지나갔소.

황상문이는 그 뒤로 열흘간을 의무대에서 말없이 지내다가, 어느정도
상처가 회복이 되자, 교도소에서 자살사고가 나면 소장부터가 골치
아파지기 때문에, 그때 막 시험가동 중이던 폐쇄회로 감시장치가 있는 
방으로 옮겨 들어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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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교도대 이야기 (8)

중대장


자자, 한잔 합시다. 아줌마! 여기 두꺼비 한마리 더 주시오.
안주도 이것저것 좀 챙겨 주시오. 아 거 말 안해도 알잖소?


그 뒤로 꽤 긴 시간동안 나는 황상문이를 일부러 잊어버리려고 애를 썼소.

그의 처절한 환상속에 다시 개입되는것도 싫었고, 어느정도 교도대 일이
익숙해지자 나름대로 요령이란것이 생겨서 몸에 익었기 때문이기도 했소.

원래 규정이 재소자들과 경비교도대는 마주칠 일이 없기 때문에, 그를
잊는것은 더욱 쉬웠소.

그렇게 그해 여름, 가을, 겨울이 가고, 심심하면 여러가지 조그만 사건들이
터지고, 이를테면 경비대 애들끼리 군기를 잡는다고 일병하나를 조져놓았
다던지, 교도관 하나하고 우리 경비대 병장놈하고 주먹다짐을 했다던지 
하는 그런 사건 말이오. 이런 소소한 일들을 겪으면서, 세월은 벌써 그 
다음해 낙엽이 지는 11월로 접어들었고 내 기억속에서 황상문이는 천천히 
잊혀져갔소.

가끔씩, 아주 가끔씩 초소 순찰을 돌다가 혹은 교도소장 사무실로 가다가
먼 발치에서 빨간 명찰을 단 황상문이를 본 적은 있지만, 그리고 그가 
우울해 보인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또 생각해 보면 사형수가 무슨 좋은 
일이 있다고 희희 낙낙하며 지내겠소? 어쨌든 그와 가까이 만날 기회는 그 
이후에 없었소.


그 낙엽이 스산하게 떨어지던 11월의 어느날, 행정반에서 졸고있던 나에게 
전화가 왔소. 교도소장이었소.

- 어이 중대장 요즘 어떠쇼? 점심 드셨소?

- 네 먹었습니다 소장님. 덕분에 잘 지냅니다 소장님.

- 중대장 마음 단단히 먹고 들으시요. 내일 오후 2시 30분까지 경비대원 둘
군복 깨끗하게 입혀서 단독군장 시키고 내방으로 같이 오시요.

- 아니 무슨 일입니까?

- 내일 오후 세시에 형 집행 명령이 떨어졌소.

순간 잠이 퍼뜩 달아나면서 몸이 부르르 떨리더이다.

- 누, 누구입니까?

내 질문에 소장은 이미 내 심중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잠시 뜸을 들이더이다.

- 황상문이도 포함이야.

그때 갑자기 머리속이 화악 비어버리는 느낌이 들더이다. 황상문이의 그 편지..
편지 생각이 났소. 그 날 퇴근하고 관사로 들어가 온 방을 이잡듯이
뒤졌소. 벌써 일년이 훌쩍 지나버렸는데 과연 그때 편지 복사해 놓은 쪼가리를
찾는것은 쉽지 않았소. 책꽂이 뒤로 넘어가 먼지구덩이 속에 뒹굴던 러-한
사전 갈피에 꼬깃꼬깃한 편지 복사본이 들어있었소.

그 편지에는 그때 내가 해석하느라고 쳐 놓은 줄이 빼곡이 있었고. 그 밑에
역시 내가 써 놓은 한글로 된 단어의 뜻이 마치 짜집기 하듯이 들어차 있었소.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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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교도대 이야기 (9)

중대장

어허.. 역시 겨울 밤에는 포장마차에 앉아서 쏘주한잔 하는 맛이 
일품이오. 안 그렇소? 여기, 따끈한 홍합국물좀 더 주시요. 
어허 시원- 하다. 자, 한잔 쭈욱 듭시다. 자자,

그날 밤은 잠을 어떻게 잤는지, 새벽까지 뒤척거리다가 새벽 네시나 
되어서야 잠이 들었는데, 그 짧은 시간에 황상문이가 손목에 피를
철철 흘리면서 원망스럽게 나를 노려보는 흉흉한 꿈을 꾸었소. 
곧 죽을 사람이 나를 노려보다니, 섬뜩하지 않소?

아무튼 자는둥 마는둥 밤을 새버린 셈이 되었는데, 그날 아침부터
긴장이 되어서인지 아침도 거르고 오전내내 안절부절 못 하다가,
우리 경비대 애들 둘 차출해서 두시까지 단독군장으로 오라 해 놓고
점심도 먹는둥 마는둥 하던차에 시간이 되어 버렸소.

병력 둘 데리고 소장실로 가니, 소장이 경비대장 당신 사형장
처음이지? 하더이다. 그래서 그렇습니다. 하니까 중대장 잘 봐둬.
사람 인생 정말 별거 아니야. 하더이다.

소장실에 잠시 있자니까 신부, 목사, 승려, 검시관 그리고 법무부에서
나왔다는 사람이 들어왔소. 소장은 잠깐 나를 소개하고는 신부님 
오늘 수고좀 해 주십시요, 목사님 수고해 주십시요. 스님 부탁합니다. 
부탁합니다. 일일이 인사를 하고는, 이제 갑시다 하더이다.

사동 복도를 지나 형장으로 가는 모퉁이에 접어드니 소장이 이미 
아침부터 준비를 시켰는지 교도관들 1개 소대병력이 벌써 주욱 
도열해 경비를 하고 있었소.

교도대 병력은 형장 앞 교도관 뒤에서 경비를 세워놓고, 소장과 위의
참관인 일행 그리고 나, 지금 기억으로는 약 8명 정도 되었던것 같은데,
하여간 그 인원이 형장으로 들어가 단상에 앉았고 나는 그 아래 
집행관 옆에 준비된 간이 의자에 앉았소.

승려는 계속 나지막하게 염불을 하고, 목사와 신부는 무엇인가 잠깐
기도를 하는 듯 했소. 그리고, 소장이 시계를 보고 있다가 교도관에게
지시를 하자, 처음 사형수가 두손에 포승을 한 채 교도관 둘은 옆에
서고 한명은 뒤에 서서 같이 들어왔는데, 황상문이는 아니고 박모라는
수감자였소.

빨간 명찰을 단 푸른 수의에다가 고무신을 신고 있던 그는 형 집행장으로 
들어오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리는지 잠시 비틀거렸는데 양 옆에 있던
교도관들이 재빨리 부축을 하는 것이었소.

박은 체념을 한 듯 두 눈을 꼭 감고 있었으나 얼굴이 무섭게 창백해지고
두 다리를 부들부들 떨고 있더이다.

사형의 처음 절차는 사형수를 심문하더이다. 재소자 박 아무개는 모년 모월 
모시에 ... 하여.. 사형판결을 받고.. 형 집행 명령을 받아 형을 집행
하는 바이다.

심문이 끝나니 소장이 한마디 하더이다. 유식한 말로 최후진술 이라는거지.

- 마지막으로 할 말은 없는가? 밖에 신부님도 있고 목사님도 스님도 와
  있으니 마지막으로 하나님이나 부처님을 믿어 볼 생각은 없는가?

그랬더니, 박은 얼굴이 하얘진 채로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고해성사를
하고 싶으니 신부님을 불러달라고 하더이다. 신부님이 소장을 한번
쓱 쳐다 보고는, 천천히 단상에서 내려와 앞에 서자, 박은 신부님 앞에
꿇어 앉고는 신부님의 두 손을 꼭 잡고 두 눈을 감는데, 그 손이 어찌나
떨리던지, 신부님의 손도 같이 떨리는게 눈에 보일 정도였소.

그래 고해성사를 하려면 얘기를 해야 되는데, 박은 그냥 신부님
손만 잡고 하염없이 눈만 감고서 1분, 2분이 지나도 가만 있더이다.
오히려 그 광경을 보고 있는 내가 더 가슴이 조마조마 했었소.

소장이 기다리다 못해서 신부님, 그사람 손을 놓아 주십시요 진행을 해야
합니다 하니까 그때서야 역시 떨리는 목소리로 신부님 도저히 떨려서
고해성사를 못하겠습니다 하더이다.

그러니까 신부님이 안해도 된다며 하나님이 용서하실거라는 취지의 말을
하고는 자리로 돌아갔는데 소장이 손짓으로 지시를 하니까 바로 교도관 
둘이 그를 안내해서 사형대 위에 세우더이다.

그리고는 얼굴에 검은 보자기를 씌우고 앞에 검은 커튼이 쳐진 다음 잠시 
후에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털썩 하는 소리가 나더이다. 그리고는 지루한
기다림이었소. 한 30분 지났을까 검시관이 내려가고 잠시후 다시 들어
오면서 고개를 끄떡거리자 박모의 순서가 끝이 났소.

참 사람 목숨이란게 별거 아니더구만.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이 나왔소.

착잡한 심경이 되어서 무심결에 집행장에 있는 작은 창 밖을 보았는데, 
사동에서 이쪽 형장으로 이어진 한 이십메타 거리 정도 되는 낙엽이 쌓인
길로 황상문이가 교도관에 둘러싸여 비척거리면서 오는것이 보였소.

나도 모르게 업무수첩 비닐에 쑤셔넣은 편지 복사본을 더듬어 확인을 하게 
되더이다.

드디어 다음 차례로 황상문이가 똑 같이 교도관 셋하고 형 집행장에 
들어왔소. 황상문이는 창백한 얼굴에 고개를 푹 숙이고 역시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형장에 들어오더이다. 나는 그와 눈이 마주칠까봐 일부러 
시선을 피했소.

혹시라도 나를 알아보지 않을까 생각을 했으나 오히려 그는 나에게 눈길한번 
주지 않았소.

그 역시 절차에 의해 심문을 먼저 한 후에 소장이 물었소.

- 마지막으로 할 말은 없는가?

잠시 침묵이 흐르자 소장이 지시를 하려고 하는데 황상문이가 입을
열더이다.

- 우리 어머니 얼굴 보고싶수.

- 어머니? 

소장이 되물었소.

- 우리 어머니 말이우. 우리 어머니 얼굴이 보고싶다 이 말이우.

- 유감이지만 절차 규정상 그 부탁은 들어드릴 수 없습니다.

소장은 아주 정중하게 말을 하였소. 먼 길을 가야 할 사람에 대한 마지막
예우인 듯 싶었소. 그랬더니 황상문이는 고개를 푹 숙이며 아무 말 없이
깊은 한숨을 쉬는 것이었소.

아 죽긴 누가죽어! 병신 염병하고 있네! 니가 뒈지는게 어떤건지 알기나 해?

웬일인지 자꾸 그 외침이 귓전에 맴돌았소.

그렇게 살아있는 나를 엄하게 꾸짖었던 그가 이제 막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었소. 그토록 평생 집요하게 어머니를 찾다가 상상 속에서 조차 어머니를 
못찾고 잠시후면 숨을 거두게 될 그는 그러나 너무 의연해 보였소.  

오히려 그 앞에 앉아있는 내가 그의 말없는 꾸짖음 속에 조그맣게 오그라
드는 느낌이 들어 나는 계속 편지를 만지작 거리며 형장의 마룻바닥만을 
응시하고 있었소.

잠시 침묵이 흐르자 소장이 손짓으로 지시를 하였고 이윽고 그의 머리에
검은 천이 씌워지고 곧바로 집행대 위에 세워졌소. 그의 앞에 검은 커튼이
쳐지고, 레바를 당기는 순서만 남은 것이었소.

그 순간 나는 조용히 일어나 소장에게 말했소.

- 소장님 죄송하지만 1분만 형 집행을 연기해 주십시요.

형 집행장에 잠시 작은 소요가 일어났소.

- 중대장 제자리에 앉으시요. 지금 공무 집행중이요. 형 집행 책임자로서
  명령이오.

- 목사님께 1분만 시간을 주실것을 요청합니다.

교도소장이 작지만 그러나 대단히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소.

- 중대장! 지금 즉시 착석하시요! 당신 공무집행 방해가 뭔지 아시요?

단상에 있는 참관인은 필요에 따라 소장에게 종교절차를 위한 시간을 요청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소. 그때 목사가 소장에게 말했소.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1분의 여유를 줍시다.

나는 업무수첩에 끼워있던 편지를 꺼냈소. 편지는 오래되어 너덜너덜해 
진데다가 해석하느라 덧대어 쓴 단어문장으로 매우 어지러웠소.

- 황상문씨, 전에 편지를 번역해 드릴테니 잘 들으시오.
  친애하는 황상문씨, 당신의 모친이 이곳 드레즈나에 거주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당신의 모친은 황상문씨를 조속히 만나기를 원하고 있으며
  현재 한국 방문 수속중임을 알려드립니다.
  황상문씨, 당신이 원하면 어머니와 국제통화를 연결해 주겠소.

소장이 갑자기 말을 막더이다.

- 어이 중대장 지금 제정신이요? 당신 무슨 권한으로 공무집행을 방해하는거요?
  어머니는 뭐고 국제전화는 뭐요? 중대장은 당장 퇴장해고 내 사무실에서
  대기하고 있으시요!! 이건 집행장으로서 명령이오!! 어이 교도관!!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목소리가 높아지려는 순간, 황상문의 한마디는 소란을
일시에 잠재우기에 충분했소.

- 전화 필요없수다. 중대장 형씨 고맙수. 난 가우.

나는 제자리에 앉았고, 소장은 얼굴이 굳어진채 집행 명령을 내렸소.
집행관이 레바를 당겼고, 검은 커튼 너머에서 덜컹 하는 소리가 메아리쳐 
들렸소. 

1982년 11월 12일. 그게 황상문이의 최후였소.


그게 내가 참관한 처음이자 마지막 사형집행이었소.

지금 생각해 보면 황상문이는 러시아에 산다는 어머니가 가상의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소. 어린 자신을 버리고 떠난 어머니를 실제로
만나기 보다는, 애절한 모성을 가진 그런 상상의 어머니를 만들었던 것 같소.

피치못할 사정으로 피눈물을 쏟아가며 헤어진 그런 어머니, 자식과 가족을
위해 멀고 먼 아무도 모르는 쏘련으로 날아간 어머니, 그곳에서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모았으나, 할머니의 심술로 연락이 끊겨버린 어머니.

소식만 연결이 되면, 언제든지 날아와 기꺼이 자신을 만나 펑펑 울며 자신에게
용서를 빌 것만 같은 그런 어머니.... 

미국으로 가족을 버리고 돈 벌러 떠나버린 어머니를, 황상문이는 나름대로
자신의 마음속에서 용서를 했던 것이오.

휴.... 허허허.. 잔이 비었구려. 미안하오. 자자 한잔 하시오.

그날은 근무자 두명하고 김상필이 그리고 또 친하게 지내던 교도관 둘하고
술을 억병으로 마셨지. 술집에서 마시다가 여관 잡아놓고 또 마셨다오. 허허..

형 집행이 있는날은 참관이나 경비 섰던 교도관들은 집에 들어가지 않는다 
하오. 그날 죽은 사형수의 귀신이 붙어 집에까지 간다 하더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도저히 기분이 착잡해서 술을 안 마실수 없더이다. 그 기분
아시겠소?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구? 허허허.. 그 일로 소장한테 밉보여서 고생좀 했소.
소장이 대대장한테 보고해 버리는 바람에 불려가서 무릎이 다 까지게 쪼인트좀
맞고 시말서 좀 쓰고....

그러면 좀 어떻소? 긴 인생길에 그까짓것 쯤이야 늘상 있는 일 아니겠소?
그런 소소한 일이 있을때 마다, 황상문이가 꾸짖는 소리가 들린다오.

아 죽긴 누가죽어! 병신 염병하고 있네! 니가 뒈지는게 어떤건지 알기나 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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