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어떤 새로운 일을 해보기로 했다고 치자.
이런 새로운 일에는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항상 있게 마련이다.
"시행착오"는 그런 변수들을 만나면서 처리하는 과정이라 할수 있다.
그런면에서 시행착오는 불가피 한것이고 유익한 것이기 까지 하다.
"삽질"도 일종의 시행착오다.
다만 삽질은 충분히 피할수 있었던 시행착오다.
조금만 생각하고 행동했었다면 하지 않아도 되었을 시행착오 말이다.
생각하고 계획하는 것은 귀찮고 일단 해보자는 의욕만 앞서다 보면 종종 있는 일이다.
같은 에너지 낭비이긴 하지만 헛짓꺼리는 삽질과는 조금 다르다.
삽질이 전술상의 시행착오라고 한다면 헛짓꺼리는 전략상의 시행착오다.
즉, "헛짓꺼리"는 애초에 의미가 없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힘을 쏟으려는 행동을 말한다.
무한동력 제작같은 불가능한 일이나 비오는데 물주기 같은 할 필요가 없는 일에 애쓰는 것이 그것이 되겠다.
실효적 목표지향성이라면 삽질에서도 충분히 미약한데 헛짓거리에는 그나마도 없다.
물론 안타깝게도 본인은 그것을 모르고 있겠지만 말이다.
다만 삽질이든 헛짓거리든 그것은 자신의 힘을 쏟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는 '목표'란 것을 가정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에게 준비된 에너지와 역량을 쏟을 만한 가치있는 그런 "목표"란 것이 보이지 않으면 초조하게 방황하게 된다.
그렇다고 아무리 초조한게 싫어도, 할수 있는 일들이란게 죄다 비오는 밭에 물주는 것 처럼 보인다면 "뭐든 일단 해보자"도 힘들다.
시간비용 손실 때문에 어쩌면 이런 초조한 방황은 에너지 손실은 없지만 삽질과 헛짓꺼리보다 더 괴로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보다 더 괴로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알고도 능동적으로 하는 시행착오일 것이다.
즉, 안되는 것 알면서도 하는 삽질이나, 할 필요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 하는 헛짓꺼리 말이다.
삽질은 (피할수 있었던 손실은 있지만) 가치있는 결과를 위한 것이고,
헛짓꺼리로 인한 손실은 (사실은 가치가 없지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결과를 위한 것이고,
방황은 "할수 있는 일"들이 손실만 있고 가치는 없는 일들 뿐이라고 생각하는 상황이라면,
이것은 그런 가치 없다고 생각되는 일들을 스스로 "해야만 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