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동이나 한겨레 경향이 아닌 세계일보의 시론을 보고 공감하는 바가 큽니다. 아래 글을 보고 열띤 토론을 해보면 어떨까요?
비난이 아닌 토론을 제안합니다.
[시론] 포퓰리즘은 ‘망국 지름길’<세계일보
가정도 사회도 국가도 소통부재 반값등록금 누굴 위한 선심인가
흔히 소통이 안 되면 고통이 온다는데 그 고통의 대상은 자신은 물론 가족관계일 수도 있고, 동물이나 자연일 수도 있으며, 정치인과 국민 또는 국가 대 국가일 수도 있다. 시인 ‘단테’는 연인 ‘베아트리체’를 일생 동안 세 번밖에 만나지 못했는데도 그녀는 그의 마음속에 대화와 사랑의 대상이었다. 모 종교단체의 부부일치운동(Marriage Encounter)에서 노부부가 그동안 서로 소통이 안 됐음을 고백하며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을 때 소통은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1960년대의 국민총생산(GNP)은 100달러 안팎이었으나 이제 3만달러를 바라보고 있고, 세계 경제 10위권에 진입했음에도 사회 곳곳에서 지역간, 계층간, 신구세대간의 갈등은 증폭되고 자살, 흡연, 교통사고 등은 증가일로에 있다. 원래 갈등(葛藤)이란 말에서 갈(葛)은 칡넝쿨을, 등(藤)은 등나무를 가리킨다. 칡은 오른쪽으로, 등나무는 왼쪽으로 감고 올라가는 습성이 있어 목표는 같으면서도 방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한곳에서 만나 서로 싸운다는 뜻이다. 자살률의 초고속 증가, 음주율의 증가 등이 사회 모든 분야에서, 가정에서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탓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필자는 요즘 어린 손녀의 재롱에 푹 빠져 있다. 그런데 아이의 할머니는 보채는 손녀에게 무엇이든 주고 싶어한다. 그러다보니 건강문제는 접어두고 가령, 아이스크림을 통째로 맡긴다. 결국 손녀는 자신이 필요한 것을 얻으려 매사 떼를 쓴다.
1910년 미국 알래스카주 페어뱅크스 동물원에서 곰에게 사육사가 죽임을 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평상시 사육사와 가까웠던 곰이 어느날 아침 별안간 사육사를 물어 죽인 것이다. 영국동물학자인 리치 박사의 조사에 따르면 그 사육사는 평상시 곰들과 매우 가까이 지냈다. 곰의 입장에서는 그 사육사를 의(擬)동물화해 곰이라 여기게 됐다. 사건이 난 날은 암컷 곰이 발정을 했을 때인데 사육사가 우리로 들어오자 수컷 곰은 자신에 대한 도전이라 받아들인 것이다. 그 전에 사육사는 우리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곰에게 분명히 알려 주었어야 했던 것이다. 이것은 그릇된 소통방식에서 온 전형적인 사례이다.
요즘 무상급식, 감세철회, 초과이익공유제에 이어 반값 등록금 문제에 대해 여야 정치인이 너도나도 뒤질세라 주장하고 있는데 이를 보면 달콤한 아이스크림으로 인심만 얻으려 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이제 한발 더 나아가 반값 등록금이 아니라 전면 철폐도 주장하고 있다.
이 모두가 대안 없는 아이스크림 소통이다. 포퓰리즘은 망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가계 부채가 800조원이 넘고 국가부채가 400조원이나 되는데도 포퓰리즘에 빠진 정치인들은 아이스크림의 단맛을 들고 나오고, 단맛에 길들여진 대중은 촛불시위로 보채는 현상이다.
올바른 사회의 소통을 위해서 우선 언론이 건전한 사회정서를 만드는 데 앞장서야겠다. 또한 사회나 국가는 국민과 청소년에게 아름다움과 삶의 가치, 그리고 존엄성을 가르쳐야 한다. 지금 중국에서는 급격히 발전하는 경제볼륨에 비해 국민들의 정체성이나 가치관에 대한 문제를 심각하게 겪고 있어 ‘국가한판’(國家漢辦)을 설립해 공자의 가르침 덕목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과거 ‘정신문화연구원’을 만들어 급속한 경제발전에 발맞추어 국민 가치관을 확립하려고 했던 것처럼 이제라도 보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소통의 근본되는 기초질서, 인간의 덕목 등 삶의 가치 제고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