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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해전이 진짜로 조선을 구한 전투가 맞는가?
게시물ID : history_1725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김즈믹
추천 : 6/20
조회수 : 2188회
댓글수 : 15개
등록시간 : 2014/07/22 13:41:25

저는 역사를 정말 전공하는 편이 아니지만 

명량해전은 구국을 지킨 전투라고 굳게 믿고있는 사람입니다만

예전에와같이 조선입장에서 쓰여진 징비록이나 난중일기, 이순신장군의 상소를 통해서는

당연히 명량해전이 기적과 같이 울돌목에서 큰 승리를 취한 뒤 

일본군은 수군이 서해로 올라가지 못하자 

육군이 보급로 누락을 우려해 퇴각했다고 하는데



일본자료를 본 결과로는 

이미 일본군의 퇴각이 명령으로 사전에 계획되었다는 점입니다

정유재란 당시 (칠천량해전 이전) 히데요시의 명령서에 의하면


" 전라도는 반드시 토벌하고, 

 충청,경기지방은 가급적 공격하라

 그리고 작전이 끝나면 연안으로 후퇴해 

 해안에 축성한 성에 주둔할것"


이하의 명령을 주문하게 됩니다


이미 히데요시는 임진왜란의 결과로 

조선을 장기적으로 통치하는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히데요시는 

자신의 건강악화로 후계인 히데요리의 후계적 안정권을 확보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등 관동다이묘들을 견제하기위해

이미 협상조차도 왕자가 아닌 재상급이 와도 상관없다고 통보하는등 

히데요시 자체도 전쟁을 빨리 휴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결국 히데요시 본인의 측근들이 나가 있는 

조선에서의 군사적 피해를 줄일 필요가 있음을 직시하고

큰 피해를 감수하고 조선을 정복하는 방법보다는 

수를 바꾸어 순간의 공세력으로 적을 깊숙하게 찌른뒤 

겨울이 오고 군사활동에 제한이 걸리면 퇴각하는 작전인 '히트 앤 어웨이' 방식을 채택하는데



이는 조선을 다시 집어먹기위해 북상하여 한양을 공격하려는게 아니라 

일본의 북상군이 4만명 가량이였고

전라도를 공격하는 일본군이 7만 가량이였음을 볼때 

조선에 큰 출혈을 주기위해 시도한 작전이 바로 정유재란임을 볼수 있습니다 



이미 전라도로 진격한 일본무장들은 

정읍회의에서도 전라도침공군은 전라남도에 주둔할것을 명령했으므로

명량을 통해 올라가려던 일본수군은 북상군과 호응하여 한양을 공략하려는게 아니라

단순히 전라도공격을 시도했고, 실질적으로 성공한뒤에 퇴각했다가 맞다고 볼수있습니다


절묘하게도 명량해전에서 승리한 이순신은 전라북도의 고군산군도까지 후퇴하는데

이는 이순신함대가 일시적인 큰 승리를 거두었지만, 

어란포에만 200척이있었고

명량해전 직후에도 전라도에서 의병장 강항이 붙잡힌 무안 앞바다에서는 

무려 600~700여척이나 되는 왜군 대함대가 활동하는것을 볼때(간양록)  


이순신이 일본수군과의 장기전이 패배로 이어질수 있음을 직감하고

전라남도 해안을 포기한채 퇴각하여 재전열을 하는것으로 볼수있습니다


이후 명량해전과 직산전투가 9월에 이어지고 겨울이 찾아올 시기에 

명나라군이 남하하여 큰 회전을 치뤄 피해가 누적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작전의 마지막 단계인 퇴각을 결정하게된것이고 

이미 조선실록에도 "왜군이 왜 퇴각하는지 모르겠다"라는 내용이 나오기 까지 합니다 



이러한 사정을 모르던 조선은 명량해전을,

명나라는 직산전투를 일본군의 북상을 막은 

큰 승리로 오인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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