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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1인 시위 후기 - 용역깡패와 한통속이 된 대한민국 경찰
게시물ID : sisa_10699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시지프스
추천 : 17/8
조회수 : 594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1/06/18 17:16:25

 [1인 시위 1000일까지 앞으로 D-279]

 

 

  

을지로입구역 - 시지프(Sisyphus)

 

===============================================================

 

오늘은 제가 1인 시위를 시작한지 정확히 721일 째가 되는 날입니다.

1인 시위 1000이를 달성하게 되는 날인 2012년 3월 22일까지 앞으로

279일이 남았습니다. 3월 22일(목)이면 4월 11일 총선을 앞둔 때이니

투표독려 운동이 매우 절실하게 필요한 때입니다. 제가 1인 시위

1000일을 달성한 후, 2012년 3월 24일 토요일에 그동안 제 1인 시위를

지켜보며 응원해 주셨던 분들이 모두 나서서, 1000명이 하루 동안

만이라도 1000곳에서 투표독려 1인 시위를 함께 하는 기적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1인 시위 카페(http://cafe.daum.net/1protest )에 <1000곳 1인 시위 약속>

게시판을 만들었습니다. 2012년 3월 24일 토요일에 1000곳 1인 시위에

동참해주실 분께서는 부디 이 게시판에 참여 의사를 밝혀주세요^^

 

 

 

 

 

오늘도 1인 시위가 끝난 후, 청계천 소라광장에 열린 반값등록금 촛불집회에

참여했습니다. 대학생들의 기말고사가 거의 끝나서 그런지 오늘도 매우 많은

학생들이 반값등록금 촛불집회에 참여 했습니다.

 

 

한 시민분께서 반값등록금 촛불집회를 응원하는 노란 티셔츠를 입고 오셨습니다.

 

 

외국인 유학생도 반값등록금 촛불집회에 참여했습니다.

 

 

10시 경에 반값등록금 촛불문화제가 끝난 후, 대학생들의 반값등록금 촛불집회

가두행진이 시작 됐습니다. 한나라당이 한대력 학생들에게 21일까지 한나라당

내부의 토론을 통해 반값등록금 정책에 대한 답을 내놓겠다고 약속을 했기 때문에

학생들은 이전처럼 격렬한 가두시위는 하지 않고 질서정연하게 교통경찰의 인도에

따라 천천히 가두시위를 했습니다.

 

반값등록금 촛불집회 가두시위는 청계천 소라광장에서 을지로입구 쪽으로 빠져나와

명동을 지나 한국은행에서 오른쪽으로 꺾은 후, 숭례문 방향까지 직진한 뒤, 광화문

방향으로 이동하다가 시청을 지나 프레스센터 앞에서 해산했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명동 3구역의 철거민들이 홍대 두리반 지킴이로 활동했던

대학생들과 함께 용역깡패들로부터 수시로 위협을 받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반값등록금 촛불집회 가두시위가 그 현장을 지나가 줬다면 그래도 그 분들에게

큰 힘이 되어줄 수 있었을텐데 을지로입구에서 을지로3가쪽으로 가지 않고

명동으로 그냥 직진 했던 것이 아쉬웠습니다.

반값등록금 촛불집회 가두시위가 한창 이동하고 있을 때, 트위터에서 명동 3구역의

용역 깡패들이 철거민과 철거민을 지키고 있는 학생들을 계속 위협하고 있다며

반값등록금 촛불집회의 학생들이 명동 3구역에 와달라는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반값등록금 촛불집회의 가두행진에 동참해 이동하면서 트위터의 글을 

봤기 때문에 명동 3구역의 철거민 분들과 그분들을 지키는 학생들에게 매우 미안했습니다. 

 

 

반값등록금 촛불집회가 끝난 후, 촛불집회에 참여한 안면이 있는 촛불시민들과

함께 명동 3구역의 철거민과 그들을 지키는 학생들을 응원하기 위해 이동했습니다.

 

위의 사진은 명동 3구역의 모습인데, 인적은 없고 용역깡패들이 앉아서 지나가는

시민들을 노려고보, 카메라로 채증을 하고 있었습니다. 뒷쪽 골목에 서 있는 세 명 중,

붉은색 옷을 입은 사람이 카메라를 들고 길을 지나는 시민들을 채증 했습니다.

그 사람이 채증하는 모습을 카메라로 찍자 용역깡패들이 욕을 하며 다가와서 왜

기분 나쁘게 사진을 찍냐며 카메라를 내놓으라고 협박해서 어쩔 수 없이 용역깡패가

채증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은 지워야 했습니다.

용역깡패들이 욕하면서 다가와 협박하자 정말 무섭더군요.

명동 3구역의 철거민들을 용역깡패들로부터 지키기 위해 모여 있는 대학생들이 정말

용기 있는 학생들이란 사실을 다시금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이틀 전부터 명동 3구역의 철거민들을 지키기 위해 농성장인 카페 마리에서

밤을 지새며 지켜온 학생들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밝고 어린 학생들이 돈에 미친

권력으로부터 핍박 받는 이웃을 지키기 위해 용역깡패의 위협 속에서 농성장에

모여 밤을 지새우고 있습니다.

 

이런 학생들이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습니다.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자 함께 있던 촛불시민 두 분과 함께 1만원씩

돈을 걷어서 음료와 과자를 조금 샀습니다. 이런 보급식량이 카페 마리에 모여서

용역깡패들로부터 철거민들을 지키고 있는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용기를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에게 보급식량을 주고 있을 때, 반값등록금 촛불집회에 참여 했던 여러

촛불시민들이 명동 3구역의 농성장을 응원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다들 연세가 좀

있는 촛불시민들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젊은 학생들만 모여 있자 어색함을 느끼면서

응원의 메세지를 남긴 후, 식사를 하기 위해 다 같이 이동했습니다.

 

아까 용역깡패들이 지키고 있는 골목을 처음 지날 때는 다섯 명 뿐이라서 용역깡패의

불법채증과 위협에 속수무책이었지만, 이제는 이십여명의 촛불시민들이 함께한 덕분에

조금 안심이었습니다.

 

스무명의 촛불시민이 밥을 먹기 위해 용역깡패들이 진을 치고 있는 골목을 지나자

용역 깡패들이 다시 카메라를 꺼내 불법 채증을 시작 했습니다.

불법채증이라면 이가 갈리는 촛불 시민들이었기 때문에, 경찰도 아닌 용역깡패의

불법채증을 묵과할 수 없었습니다.

 

 

 

 

(동영상을 그냥 올리면 용역깡패들이 초상권 침해를 이유로 시비를 걸어올 것 같아서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도록 영상을 조금 편집했습니다.)

 

위의 영상은 카메라를 들고 시민들을 불법채증 하고 있는 용역깡패에게 시민들이

빨리 카메라에 촬영한 영상을 지우라고 압박하고 있는 영상입니다. 아까 다섯 명 밖에

없을 때는 거침없이 욕을 하며 협박을 하던 용역깡패들이 촛불시민의 숫자가 많자

가증스럽게도 예의바른척 하는 모습이 참 섬뜩하더군요.

 

용역깡패의 불법채증에 분노한 시민들이 흥분해서 윽박을 지르자 좋게 말로 하자는

듯이 말하는 얌전히 있다 "야 경찰 불러!"라고 당연하다는 듯이 외치는 모습이

무섭더군요.

 

 

 

 

역깡패들에게 카메라가 두 개 있었습니다.

불법채증을 한 카메라의 영상을 지우라는 촛불시민들과 깡패 사이에서

몸싸움이 발발하면서 처음에는 용역깡패가 촛불시민을 밀쳐 쓰러뜨려서

분노한 시민들이 용역깡패를 다시 밀칠 때, 용역깡패가 다른 카메라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몸싸움  장면만을 촬영한 후, 시민들을 협박하는 모습입니다.

 

사건의 발단이 된 자신들이 불법채증 영상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며

몸싸움이 발생 했을 때 자신이 촬영한 카메라 영상만이 용역깡패를 위한

유력한 증거가 될 거라고 자신만만해 했습니다.

 

촛불시민들은 용역깡패가 먼저 불법채증을 했기 때문에 경찰이 오면 시비가 가려질

것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경찰이 오자 기세등등해진 용역깡패들이 자신들의 불법채증이 무슨

문제냐며 오히려 사건의 증거를 남기기 위해 촬영중인 제 카메라도

불법 아니냐며 따지고 들었습니다.

 

어쨌든 이 영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용역깡패들은 자신들이 지나가는

시민들을 상대로 불법채증을 했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촛불시민들은 용역깡패들의 입에서 자신들의 채증 사실이 자백 되었기

때문에 경찰이 당연히 용역깡패의 채증 카메라를 압수해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촛불시민들은 경찰에게 용역깡패가 촬영한 카메라가 두 대라는 사실을

계속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그런데 경찰은 시민들의 증언은 무시한 채

용역깡패들이 시민들과 몸싸움을 촬영했던 카메라만을 증거로 가져갔습니다.

 

촛불시민들이 사건의 발단이 된 용역깡패의 불법채증 카메라가 있는데 왜

제일 중요한 증거인 그 카메라는 가지고 가지 않냐고 따지자 경찰은 오히려

시민들에게 화를 내면서 자신이 카메라를 압수 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경찰이 압수했다는 그 카메라는 아까 위에서 용역깡패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영상만을 촬영한 채 시민을 협박하며 사용했던 그 카메라였습니다.

애초에 사건의 발단이 된 용역깡패들의 불법 채증 카메라는 용역깡패들이

자신의 사무실에 가져간 뒤였습니다.

 

촛불시민들이 용역깡패의 불법채증 카메라도 증거로 가져가라고 계속

이야기 했지만, 경찰은 용역깡패의 말에만 귀를 기울이고 촛불시민들의

증언은 계속 무시한 채 결국, 용역깡패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증거로

만들기 위해 촬영한 카메라와, 불법채증 카메라의 영상을 지우라고 항변했던

목사님과, 용역깡패 한 명을 경찰차에 태운 후 경찰서로 사라졌습니다.

 

 

 

 

촛불시민들이 경찰서로 찾아가 왜 용역깡패들이 불법채증한 카메라는 압수하지

않냐고 따지자 경찰은 조사에 방해가 되니 참고인만 남고 나가라는 말만을 반복했습니다.

 

용산참사 때 경찰이 용역깡패와 한통속이 되서 함께 작전을 진행했던 PD수첩의 영상을

보고 대한민국 경찰이 썩어도 너무 썩었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눈 앞에서 그때와 똑같은

일이 다시 발생했습니다. 용역깡패가 경찰 앞에서 스스로 불법채증을 한 카메라가 있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용역깡패의 불법채증 카메라는 증거로 가져가지 않고, 용역깡패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상황만을 증거로 담은 카메라를 가져가는 경찰의 작태는 지금,

지금 명동 3구역의 철거민들이 경찰의 방조 속에서 행패를 부리는 용역깡패들에게

어떤 위험을 겪고 있는가를 잘 알려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깡패와 경찰이 한통속이 되어 있는 것이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이런 경찰이 수사독립권을 자신들에게 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이런 경찰에게 수사독립권을 주면 경찰이 용역깡패의 편을 들며 죄없는 선량한 시민과

철거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연행해 갈 것이 분명합니다.

 

 

집으로 돌아와 용역깡패들과의 다툼이 있었던 증거 영상을 편집하면서 계속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저렇게 법을 무시하며 경찰과 한통속이 된 용역깡패들에게 철거민과

어린 학생들을 그냥 두고 온것 같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너무 마음이 불편해서

집 앞에 있는 24시간 마트에서 씨 없는 수박 한 통을 사서 새벽 3시에 다시 명동 3구역의

농성장인 카페 마리로 달려갔습니다.

 

때마침 학생들이 농성장에서 야식으로 라면을 먹고 있더군요. 그래서 라면을 먹고 있는

약 스무명 가량의 학생들에게 씨 없는 수박을 줘서 조금이라도 응원을 했습니다.

 

 

 

 

학생들이 씨 없는 수박을 '심영 수박'이라며 "내가 고자라니~"를 외치며

맛있게 먹더군요. 수박을 맛있게 먹는 학생들을 지켜보면서 함께 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삭힌 후,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경찰과 한통속인 용역깡패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는 명동 3가 철거민들과

그들을 지키기 위해 행동에 나선 학생들에게 관심을 가져주길 부탁드립니다.

특히, 반값등록금 촛불집회를 주도하고 있는 한대련에서도 똑같이 권력의 핍박을 받고

있는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명동 3가 철거민들과 그들을 지키기 위해 나선 학생들에게

관심을 가져주길 부탁합니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를 잡아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사민주의자를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민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체포했을 때

나는 항의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유대인을 잡아갔을 때

나는 방관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나를 잡아갔을 때는

항의할 수 있는

그 누구도 남아 있지 않았다

 

 

독일의 마르틴 니묄러 신부가 쓴 <그들이 찾아왔을 때>가 주는 교훈을

모든 사람들이 가슴 깊이 새겼으면 좋겠습니다.

 

MB가 반값등록금 공약을 지키지 않았을 때

나는 대학생들과 함께 촛불을 들었다.

대학을 이미 졸업한 나는 등록금에 시달릴 일이 없지만

반값등록금이 실현 되고 학생들이 경제적 부담에서

벗어나는 것이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함께 행동했다.

 

그들이 명동 3구역 철거민들을 위협할 때

나는 철거민들과 함께 하기 명동 3구역으로 달려갔다.

나는 명동 3구역의 철거민이 아니지만,

명동 3구역의 철거민들이 법의 사각지대에서

거리로 내쫓기는 일이 잘못 된 일이기 때문에

철거민들을 위해 행동했다.

 

그들이 나를 위협할 때,

나를 지키기 위해 누군가가 나서줄 수 있는

사람 사는 세상이 되길 꿈꾸며

오늘도 행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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