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겐 마법을 부릴 줄 아는 친구가 있다. 25년간의 인내 끝에 드디어 마법을 쓸 수 있게 된 친구였다.
하지만 친구는 자신의 힘을 내색하지 않는 참된 마법사였다.
술자리에서 우리가 마법 좀 보여달라고 깐족거리면 친구는 척추가 뒤로 접히기 싫으면 닥치라는 점잖고 품위 있는 대꾸만 할 뿐이었다.
사실 이 친구가 연애를 하지 못한 건 우리 동기들의 가장 큰 미스테리였다.
외모가 수학귀신을 닮긴 했지만 참 재미있고 착한 븅신인데. 도대체 왜 이 녀석은 한 번도 연애를 못해봤을까. 우리들은 항상 의아해했다.
그러다 한 번은 다른 친구가 이 친구에게 소개팅을 주선해줬다. 결과는 참담했다.
평소에 순발력 넘치고 감탄스러울 정도로 드립을 잘 치던 친구는 멍석을 깔아주자마자 벙어리가 됐다고 한다. 실전에 약한 타입이었다.
우리는 친구의 비보에 '으이구... 모의고사만 잘 치르는 븅신...' 하면서 위로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친구에게 아무래도 봄날이 온 모양이다.
2.
이번엔 소개팅이 아닌 같은 교양 수업을 듣는 여자였다. 한예전부터 친구가 그 여자분께 호감이 있다는 소식을 듣긴 했다. 이번에도 그냥 스쳐 지나가겠거니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일단 여자분이 상당히 적극적인 성격이신 것 같았다.
건너 들은 소식에 따르면 친구가 같이 저녁 먹지 않을래? 라고 밥약속만도 간신히 용기내어 물어봤다고 한다. 친구의 질문에 여자분은 내가 들어 본 대답 중 가장 적극적이고도 센스 넘치는 대답을 했다.
'그런데 술 마실거면 차는 두고 갈게~'
그녀의 답에서 페레로로셰같은 품격 있는 달달함이 느껴졌다.
그 와중에 친구는 이거 가면 장기 팔리는 거 아니냐고 우리에게 물어보는 수준급의 모쏠병신미를 보여줬다. 내가 보기에 이놈은 이 여자분을 놓친다면 연애를 포기하고 대마법사가 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드래본볼을 모아서 용신을 만나는게 빠를 것 같았다.
3.
친구의 달달한 봄날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점심시간에 갑자기 걸려온 여자분의 전화에 우리를 팽개치고 나가서 전화를 받는 친구의 모습이 새삼스러웠다.
'왜 전화했대?'
'그냥? 밥먹는다고 했더니 맛있게 먹으라던데ㅎㅎ'
'....병신아... 애슐리에서 배터지게 밥을 먹고 있더라도 아직 공복이라고 해야지...'
아직은 서투르지만, 친구는 한 번도 느껴보지 않은 봄날에 취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 같다.
친구의 봄날에 꽃이 피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