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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의 끈질긴 뒷끝 -2-
게시물ID : history_1729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GwangGaeTo
추천 : 10
조회수 : 1006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4/07/24 20:29:06
앞서서 결국 구리 수통이 물건너 갔습니다.
 
아아 님은 갔습니다.
 
돌보다 쉽고 나무보다 튼튼한 나의 구리수통은 갔습니다.
 
.............
 
 
죄송합니다.
 
무튼
 
앞선 일부터 한 2주 정도가 지난 시점입니다.
 
 
통명전(通明殿) 앞의 못에 설치한 구리로 만든 수통(水筩)을 철거하고 돌로써 대치하였다
 
네, 돌로 새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걸 하기 위해서
 
"돌을 운반할 때에 동쪽 담장 두 곳과 난간(欄干)을 헐고"
 
담벼락까지 허물었죠.
 
이거 일이 참 커졌네요.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뒤끝 작렬합니다
 
실록에 기록된 걸 그대로 옮겨오면
 
 
 
구리로 만든 수통을 승정원(承政院)에 내리며 전교하기를,
 
“이것이 정성근(鄭誠謹)이 말한 사치(奢侈)한 물건이니, 승지(承旨)들은 이것을 보라. 지금 만약 깨뜨려버리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반드시 내가 후일(後日)에 쓸 것이라고 할 것이니, 곧 부러뜨려 부수어버리도록 하라.”
 
 
그 구리수통을 신하들 앞에 두고
 
"야, 니들이 원한대로 까부셨다. 됬냐? 이게 사치냐? 사치야??"
 
라고 항변하면서
 
"니들 내가 이거 챙겨두면 나중에 써먹는 다고 또 따질거지??"
 
라면서
 
"니들이 원하는데로 이거 가져가서 부셔버려."
 
라고 꼬장을 부립니다...
 
 
고작 수통 하나로 한 십년은 늙었을 성종의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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