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제대 11년뒤 또 영장이…황당하고 기막힌 입영통지
[동아일보 2005-11-03 10:25]
[동아일보]
《의병제대 후 10년 동안 민방위 훈련까지 받았는데 입영통지서를 받은 30대. 주한미군에서 4년간 근무했으나 한국군 병역 기피로 처벌받게 된 30대 이중국적자…. 병역의무를 둘러싼 희한한 사연들은 우리 주위에 여전히 많다.》
“10년 동안 민방위 훈련까지 받았는데 다시 군대를 가라니요….”
9월 24일 집으로 날아온 징병검사통지서를 받은 강모(30) 씨는 처음에는 단순히 병무청의 실수로 생각했다. 그는 11년 전인 1994년 4월 고등학교 군장학생으로 입대해 육군부사관학교에서 훈련 중 허리부상으로 2개월 만에 의병제대를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병무청에 물어봤다가 “올해 안에 반드시 입대해야 한다”는 날벼락 같은 말을 들었다.
그는 “신병훈련을 마치고 교육 중 허리부상으로 의병제대를 했고 민방위 훈련을 10년이나 받았다”고 항의했으나 병무청 관계자는 “관련 서류가 없다”고 대답했다.
자신의 군 생활을 증명하는 사진과 10년간 꼬박꼬박 나갔던 민방위 서류를 들고 병무청의 모병과, 총무과, 신검과를 돌아다녔지만 강 씨의 말을 들어주는 곳은 없었다.
병무청이 뒤늦게 보낸 경위서에는 ‘당신의 주장이 맞더라도 11년 전에 의병제대가 아닌 퇴교를 한 것이기 때문에 만 30세가 되기 전에 복귀해야 한다’고 되어 있었다.
“제대가 아니라면 어떻게 민방위 훈련까지 받겠습니까. 10년 동안 민방위 훈련을 받을 때는 아무런 이야기가 없다가 9월 초 병무청 감사에서 확인했다며 군대를 다시 가라니 황당할 따름입니다.”
다급해진 그는 의병제대를 하면서 관련 서류를 제출한 서울 종로구 창신2동 동사무소를 찾아가 기록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동사무소, 국방부, 육군본부 어디에도 그가 제대했음을 보여 주는 서류는 없었다.
강 씨는 행정심판청구위원회의 판결을 기다리는 중이다.
그는 “정부의 실수에 대해서는 아무도 사과하는 사람이 없고 병무청에서는 법령만 따지고 내 이야기는 아예 듣지 않는다”며 “현재 신용불량자로 개인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데 군대에 가면 가족의 생계가 어렵게 된다”고 하소연했다.
강 씨는 육군부사관학교, 육군본부, 국방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낼 예정이다.
▼주한미군 제대자에 “입대하라”▼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석동현·石東炫)는 병역기피 혐의로 기소중지됐다가 붙잡혀 구속된 이모(35) 씨를 2일 이례적으로 석방해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2년여 동안 군 입대를 기피해 온 이 씨가 검거된 것은 지난달 27일. ‘나이 초과’로 병역 면제를 받을 수 있는 만 36세를 2개월가량 남겨둔 시점이었다. 이 씨는 35세의 나이에 군대에 다시 가야할 처지가 됐다.
이 씨를 조사하던 검찰은 이 씨의 사연을 듣고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7세 때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이 씨는 미국 영주권자였다.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아 이중국적자가 된 이 씨는 1996년 미 남캘리포니아대 재학 중 미군에 입대했다.
주한미군 근무를 자원한 이 씨는 미8군 용산 기지에서 4년간 근무한 뒤 2000년 제대했다.
그는 부모가 있는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여자 친구 때문에 한국에 남았는데 그것이 화근이었다. 곧바로 입영통지서가 날아든 것. 30세 때였다. 이 씨는 “한국어가 서툴다”며 2차례 입영을 연기했다.
그러나 2003년 더는 연기할 수 없게 되자 숨어 지내기 시작했다. 골프장 등에서 골프 지망생들을 상대로 영어 지도 등을 하면서 2년여를 버텼다. 그는 “한국말도 잘 못하는 상황에서 군대에 간다는 것 자체가 두려웠다”고 말했다.
검찰은 병무청에 선처 방안이 있는지 문의했다. 그러나 병무청에선 “미군에선 직업군인으로 복무한 만큼 한국군에서 병역을 마쳐야 한다”고 대답했다.
당초 이 씨는 나이가 많아 공익근무요원에 배치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공익근무요원이 무엇인지조차도 몰랐다고 한다.
이 씨에게 다행인 것은 재판이 2개월 이상 진행될 경우 만 35세가 넘어 병역이 면제된다.
조용우 기자
[email protected] 정세진 기자
[email protected]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