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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가수...
게시물ID : nagasu_147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ㄱㄱ
추천 : 2
조회수 : 534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1/06/20 00:37:50
얼마전에 어떤 방송분이 가장 인상적인지를 묻는 게시글이 있었는데, 대부분 5월 22일 방송분을 꼽으시더군요. 저도 그랬고요.

그런데 오늘 방송분은 제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5월 22일까지는 아니라도 그에 버금가는 손에 꼽을만한 방송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방송이, 아니 방송보다는 '공연'이 제 궤도를 이제 찾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처음의 긴장감. 몇번의 경연을 거치면서 쌓이는 살인적인 피로. 색다른 시도가 다시 틀에 박힌 것이 되어버리는 좌절감 등등의 장벽을 깨고 가수들이 점차 안정적인 리듬을 찾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회한회 공연 자체가 드라마로군요.

오늘 가수들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사람은 옥주현씨였습니다.(가장 잘 부른 가수라는 얘기가 아니고요. 개인적인 순위로는 박정현씨를 1위로 꼽고 싶네요.)
지난 몇주동안 엄청난 소용돌이의 중심이었던 옥주현씨. 저도 그 소용돌이 속에서 계속 옥주현씨에 대한 비판을 많이 늘어놓았었는데요. 사실 처음의 생각은 아직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순간의 옥주현씨는 분명 프로그램과 어울리지 않는 상태였으니까요.

오늘 방송분 인터뷰에서 그런 얘기를 하더군요. 노래를 가지고 이렇게 해석할까 저렇게 해석할까 편곡자와 의견을 나누는 것이 너무 즐거웠다고. 가수라면 누구나 하는 그것을 처음 그런 것을 해보는 것처럼 이야기하더군요. 그도그럴 것이. 공산품처럼 찍혀나오는 노래를 부르는 아이돌 가수가 작곡자에게 자신의 의견을 제시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겠지요. 뮤지컬 배우 역시도 이미 있는 곡을 소화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었겠지요. 자기가 곡을 만들거나, 편곡자와 의견을 나눌 수 있을 정도로 내공있는 가수가 되지 않는 한은 하지 못할 경험들이겠지요. 물론 지금 출연하는 다른 가수들은 다들 하고 있었겠지만요.(비교적 어린 김범수는 빼고...)

노래 자체 정면으로 만나는 경험. 오늘 새롭게 보인 것은 그 경험에 대한 옥주현씨의 태도입니다. 새로운 세상에 첫발을 디디는 설렘과 의욕이 보였거든요. 이 사람이 지금껏 그렇게 살지 않았을 뿐이지 가수로서의 삶에 목이 말랐던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계속 말씀드렸지만, '가수'란 앨범 수나 가요프로 순위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노래에 대한 '태도'로 정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이전까지 옥주현씨에게서는 가수로서 노래와 정면승부하는 태도보다는 기교로 빗겨나가면서 틀에박힌 타협을 하는 모습만 보였고, 가수로서의 자신을 보여주기 보다는 '연기'하듯 거짓 감성을 내세우고 그 뒤로 자신을 숨기는 모습만 보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방송분을 보니 진짜 가수로서 청중과 함께 호흡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깨달아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물론 이번 노래에서도 계속 걸리적거리던 부담스런 감정의 과잉이 요소요소 보이기는 했습니다만, 전보다는 훨씬 줄어들었습니다. '이 노래가 나의 노래다.'라는 것, 자기 자신의 노래를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가수로서의 무대에 첫발을 딛었다는 느낌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지 기대하게 하는 무대였습니다. 그 수많은 비난들 속에서 조금씩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김범수씨 이번 무대는 개인적으로 아주 좋았습니다만 6위 했네요.^^; 노래 듣고 상위권이라고 생각했는데...
푸릇푸릇한 늦은 봄에서 초여름으로 넘어가는 풋풋상큼한 느낌을 제대로 살린 노래였습니다. 폭발하는 감정도 멋지지만, 이렇게 차분하면서도 우울하지 않고, 발랄하면서도 너무 경박하지 않은 감정선을 지키는 노래는 또 그것대로 절묘합니다. 종이 한장 차이로 지루한 노래가 될 수 있거든요. 

사실 그런면에서 보자면 편곡자의 공이 크지요. 박정현도 인터뷰에서 음악적으로 고급스러운 편곡이었다고 얘기했습니다만, 김범수랑 짝을 이룬 돈스파이크라는 편곡자는 정말 매 공연마다 감탄하게 합니다. 어쩜 그렇게 원곡의 느낌에 새로운 느낌을 잘 조화시키는지... 최고의 편곡자와 최고의 '노래 자판기'의 만남이니 이팀은 어찌보면 최강인듯...

박정현씨는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를 연상시키는 최고의 무대였습니다. 다만,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가 반짝반짝 빛나는 여신이었다면 '바보'는 차분하게 가라앉은 깊은 연못 속의 님프 같은 느낌이더군요. 화장에 표정연기에 헤어스타일까지 비극적인 노래와 혼연일체가 된 무대였습니다. 언제나 느끼지만 박정현씨의 감정표현은 정말 대단합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의 감정선을 자제하는 모습... 감정에 취하면서도 냉철함을 잃지 않고, 선을 넘지 않고 언제나 선 위에서 아슬아슬 춤추는 노래가 듣는 사람을 전율하게 합니다.(가끔씩 균형을 잃을 때도 있더군요. '소나기'나 '내낡은 서랍속의 바다'처럼 노래를 제대로 자기것으로 만들지 못했을 때.^^;)

BMK는 지난 방송분부터 어린애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커다란 바위나 뿌리깊은 고목이어서 중심을 잡고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정말 여리고 천진난만한 모습이고 그게 또 의외로 잘 어울립니다. 그런 밝은 모습이 계속되는 실패에 대한 방어기제처럼 보이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꿋꿋한 모습이 보기 좋더군요. 이번 무대에서는 약간 의욕이 과잉되어서 스캣이 가끔 위화감을 느끼게 했던 점을 빼고는 여전히 폭포수처럼 시원한 무대였습니다. 

무엇보다 나름대로 자신의 스타일을 선보이려고 시도하는 모습이 느껴져서 이번 무대가 좋았던 것 같네요. 첫 경연에서 본인 스타일의 재즈를 선보였다가 대중의 외면을 받고, 그 다음 무대들에서는 대중의 기호에 따라 화려한 무대를 시도하다가, 이번 무대에서는 다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대중적 기호와 자신의 음악스타일 양자를 조화시키는 시도가 보이는 것이. 역시 어린애 같이 보여도 BMK는 듬직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윤도현은 아직도 좀 피로가 가시지 않은 것 같더군요. 신나는 무대기는 했지만, 그 신나는 흥을 윤도현 자신의 체력이 못따라가는 느낌이랄까요. YB만의 색깔이 묻은 편곡도 좋고 신나는 퍼포먼스도 좋긴 하지만 이번 무대는 그렇게 크게 감흥을 받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윤도현 말마따나 매번 하던 걸 했기 때문일까요.

새로 오신 두분은 역시 무대에 적응을 잘 못하시는 모습이 보여 많이 아쉽더군요. 두 분 다 편곡이 평이하고... 장혜진씨는 노래하면서 계속 감정선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고요... 하지만 고음 올라갈 때 장혜진만의 독특한 느낌. 청아하면서도 동시에 야성적인 보이스는 역시 백미더군요.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대가 되는 가수입니다.

조관우씨 무대도 아쉬움이 많았습니다만, 역시 그 목소리의 유니크함은 충분히 느꼈습니다. 조관우만이 가지고 있는 창법. 흉내낼 수 없는 창법이라는 점에서 어쩔 수 없이 임재범씨와 많이 비교가 되네요. 이런 유니크한 목소리는 양날의 검입니다. 무슨 노래를 불러도 똑같은 느낌이라 지루해질 수 있는 반면에 그 목소리를 제대로 살릴 수 있는 재료들과 만나면 말 그대로 대박일겁니다. 제대로된 편곡자와 원곡을 만나면 조관우씨에게도 임재범의 '여러분'을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혜진씨 조관우씨 두 분 다 '이정도면 되겠지...'하고 오셨다가 대기실에서 앞의 가수들의 무대를 보면서 '아 이게 아니구나' 싶었을 겁니다. 두 분 공연을 보면서 김연우씨가 생각나더군요. 무대의 무게와 성격을 실감하지 못하고 첫 무대에서 소극적인 시도를 하다가 외면당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요. 그래서 나름대로 자신을 깨고 새로운 시도와 가능성을 보여주자마자 탈락해버린 김연우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빌 뿐입니다. 그렇지 않을만한 내공이 있는 분들이라 다음 무대가 기대되고요.

이런 점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경연 끝나고 새 가수 들어올 때 공연이 한번씩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가수 무대는 가수들에게, 특히 장혜진이나 조관우씨처럼 '도전'이라는 것을 오래도록 잊고 '챔피언'의 자리에 계속 앉아있던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낯선 무대거든요. 거기 적응할 시간, 챔피언 벨트를 내려놓고 도전자의 마인드를 되새길 시간이 필요할 거 같습니다. 

얘기가 쓸데없이 길었네요. 이렇게 애정이 가는 가요프로그램은 참 오랫만인 것 같습니다.(어쩌면 처음일수도) 프로그램의 컨셉과 진행방향에 대해서는 아직도 불만이 많습니다만, 그것들을 전부 날려버리는 가수들의 멋진 무대 덕분에 일주일 내내 가슴이 든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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