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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정가제 단상.
게시물ID : readers_1732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파스타리안
추천 : 3
조회수 : 52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11/21 22:26:55
개인적인 의견은 역시 두 번째 단통법이 될 거라 생각하지만, 나름 타당한 견해를 들어서 옮겨 봅니다.

도서 정가제는 크게 보면 대형마트 규제법과 같은 맥락의 법안입니다.

먼저 대형마트는 소비자 관점에서 상당히 편리합니다. 물건은 저렴하고, 재래시장과 같은 실랑이를 할 필요가 없으며, 그 가격대에서 상당히 합리적인 품질의 물건을 제공합니다. 종합적으로 말해서 대형마트는 소비자들에게 재래시장보다 더 큰 이득을 줍니다. 그런데 왜 대형할인점을 규제할까요?

재래시장의 수익은 지역사회로 환원됩니다. 반면 대형할인점의 수익은 노동급여 등으로 지역사회에 일부 환원되나 대부분이 본사로 들어갑니다. 이 돈은 지역사회에 재투자되는 대신 본사의 사내유보금으로 굳어서 움직이지 않거나 최선의 경우라도 주주에게 배당되어 주주들이 거주하는 곳, 보통은 서울을 위시한 대도시의 부만 가중시킬 뿐입니다. 즉 소수의 부자를 만들 뿐입니다.

또한, 다양한 중소기업 대신 대형할인점에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대기업 제품 위주로 유통되면서 지역의 특산품들을 생산하는 소규모 공장들 또한 큰 위기가 오게 됩니다. 즉 대형할인점은 소비자들에게 큰 이익을 제공하지만, 이는 지역 경제 생태계를 망치는 대가이며 지역의 중산층들을 모두 다 서민으로 전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서민들을 위해서라는 이유 뿐이라면 오히려 대형마트를 육성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일 수 있습니다. 재래시장의 상인들은 어쨌거나 사업주며 그들에게 물건을 공급하는 공장주 역시 서민과는 거리가 있는 중산층의 사람들이니까요. 대형할인점은 규모에서 이미 재래시장 각각의 교섭력을 월등히 압도하며 이 교섭력을 바탕으로 저렴한 가격에 안정적으로 소비재를 공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소비자들이 비싼 값을 치르더라도 재래시장에서 구매하는 것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나아가 중산층을 육성하여 경제의 순환과 세수 확보에 보탬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대형마트를 규제합니다.

단기적으로는 소비자들에게 손해입니다. 대형할인점은 어쨌거나 더 저렴하게 상품을 공급하며 평균적으로 더 나은 소비경험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큰 그림 하에서 재래시장을 육성하는 게 지역사회, 중산층을 육성하고 경제 생태계를 튼튼하게 유지하는 것에 도움이 되기에 정책적으로 재래시장을 육성하고 대형할인점을 규제합니다.

재래시장을 동네서점으로, 대형할인점을 온라인 서점으로 치환하면 도서정가제의 목표가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온라인 서점이 저렴하게 책을 공급할 수 있는 까닭은 규모에 따른 교섭력이며 체급이 맞지 않아 할인을 제공할 수 없던 동네 서점은 참고서나 문제집 파는 곳으로 전락해 왔습니다.

이렇게 동네서점에서 온라인 서점으로 규모가 집중되다 보니, 사재기를 통한 인기도서 조작이 횡횡하고, 동시에 규모가 되지 않는 소규모 출판사의 책들, 기획 도서들, 학술서는 사라지고 잠깐 반짝하는 스타성에 의지하는 자기개발서, 힐링, 이러한 책들만 찍어내는 모순점을 만들어 냈습니다.

도서정가제는 온라인 서점의 할인 폭을 틀어막아 동네서점과 같은 조건으로 경쟁하게 합니다. 체급이 달라 경쟁이 되지 않았던 동네서점과 온라인 서점의 체급을 강제로 맞춤으로 다양한 경쟁자를 통해 건강한 경쟁을 유도하고, 출판 생태계의 다양성을 육성하려는 의도가 있습니다.

물론 이중에는 닭이 먼저이냐 계란이 먼저이냐 하는 논쟁이 분명 있습니다. 동네서점이 몰락하면서 온라인 서점의 규모가 점점 커진 것인지 온라인 서점의 규모가 커지면서 동네서점이 점점 몰락한 것인지 우리가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악순환은 분명하며, 이를 끊어내야 합니다.

다만 개인적인 의견으로 두 번째 단통법이 될 거라 생각하는 이유는, 동네서점을 육성하는 비용이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소비시장은 얼어붙었다고 표현하는게 정확하며 특히 독서를 위해서는 돈은 커녕 시간조차 내기 어려운게 사실이니까요. 당장 책값은 오를 것입니다. 그리고 소비자들은 이러한 비용을 부담하면서까지 동네서점을 육성할까요, 아니면 독서를 포기할까요. 이런 점을 보완하기 위한 법이나 다른 정책이 없기 때문에 이건 좀 많이 무리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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