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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합] 박제
게시물ID : animation_17332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해태멜론캔디
추천 : 1
조회수 : 570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4/01/16 03:38:35
밤에 취해서 쓴 어둠의 연성물입니다.
도대체 왜 갑자기 백합? 저도 모릅니다.
분명한 건 오늘 해가 밝으면 내가 죽고 싶을 거라는 것.
 
그러면 올리지 않는 게 당연한 생각의 귀결이 아닌가 싶지만
올리지 않으면 어찌 흑역사가 되겠습니까?
 
한국적인 소재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을 하는데, 혼자 백합을 쓰는 보쿠란..
 
 
 
 
 
 
 
 
 

 
“소중하니까 말이야.”
 
“네?”
 
 
뜬금없는 대공녀의 말에, 아샤는 화들짝 놀라며 반문했다. 안 그래도 감히 하녀로서 위치로 자신이 모셔야 할 분의 침대에, 명령이라지만 누워있는 상태였으므로 긴장한 몸은 움찔 떨었다. 공녀의 말에 반문하다니, 평범한 하녀와 공녀 사이라면 죽어 마땅할 죄였다.
 
 
“소중하단다.”
 
 
공녀는 푸근히 웃으며, 침대에 걸터앉아 아샤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마치 정말 자식을 아끼는 어미의 그것과도 같이, 그녀의 눈빛은 따뜻했고 손길은 부드러웠다. 공녀는 너무 즐거운 일을 하는 양, 귀여워하는 애완동물을 쓰다듬는 것처럼 아샤의 머리를 계속 쓰다듬었다. 미소를 계속 띤 채로 말을 이었다.
 
 
“소중한 건 영원히 곁에 남기고 싶은 법이거든.”
 
“네... 네...”
 
 
아샤의 몸은 공녀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을 때마다 작게 떨었다. 아무리 자신에게 자비로운 공녀라도 그녀와 자신의 신분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갑자기 시작된 공녀의 말은, 도대체 영문을 알 수 없고 어찌 끝맺음이 날 것인지도 알 수 없어 두렵기 그지없었다. 차라리 매질을 하거나 찻잔을 던져 줬으면. 그건 신경질적인 귀족 영애들이 흔히 하는 행동이다. 하녀라면, 비록 자신은 겪지 않았아도 언제나 감내하고 있는 일이기도 했다.
 
 
“너는 아름다우니까 말이야.”
 
 
물론, 눈앞에 있는 아름다운 금발의 공녀는 성품 또한 외견 못지않아, 사교계는 물론 하인들 사이에서도 성정이 자비롭기로 유명했다. 그러니 당연히 이곳 목련관에서 일하는 하녀들은 그런 불상사를 겪은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저길 보렴.”
 
 
침대에 걸터앉아있던 공녀는 누워있던 아샤의 어깨를 잡아 일으켰다. 마치 깨지기 쉬운 귀중품을 대하듯 그 손길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눈앞에 공녀의 침실이라는 목적에 걸맞는 화려한 풍경이 펼쳐졌다. 장인이 만든 호사스런 가구, 명공이 하나하나 그렸을 벽지. 그리고.. 벽에 걸린, 아름다운 새의 박제.
 
 
“오월조란다. 알고 있니?”
 
 
어느새 침대 위로 올라온 공녀가 등 쪽에서 앨리스를 껴안으며 말했다.
-섬칫
오한이 들었다. 옷으로 덮여 보이지 않는 온몸에서는 이미 식은땀이 찔끔찔끔 나긴 시작했다.
 
 
 
“네.. 공녀님이.. 어리실 때 기르시던.. 매우 희귀한 새라고 들었습니다.”
 
 
 
공작가의 하녀쯤 되면 소소한 몸가짐은 물론, 기본적인 교양지식과 모시는 분이 묻는 말에 이상적으로 답하는 법까지 철저히 배운다. ‘똑바른 답을 또렷한 어조로 명확하게.’ 아직도 기억나는, 늙고 깐깐한 교육 담당 하녀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 그래도 도무지 침착할 수가 없었다.
 
 
“내가 어여삐 여기던 아이란다.”
 
 
이런-
 
 
“너처럼 말이야.”
 
 
-상황에서는.
 
공녀가 아샤를 넘어뜨려서 도로 눕게 했다. 전신에 힘이 빠진 그녀의 몸은 인형처럼 가볍게 넘어갔다. 공녀는 태양빛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리며, 침대 위에 쓰러진 아샤 위까지 무릎과 손을 써서 엉금엉금 기어왔다. 아샤는 두 뼘 정도를 두고, 공녀와 마주보게 됐다. 그녀의 양 팔이 아샤의 귀 옆을 집고 있었기 때문에 시선을 돌릴 수는 없었다.
 
 
 
“아아.”
 
 
 
공녀의 얼굴은, 꿈에 빠진 듯 몽롱했다. 어릴 때 하층민 거리의 뒷골목에서 마약을 한 남자들의 얼굴을 본 적이 있는데, 꼭 그들과 같았다.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그 남자들의 눈은 몽롱하니 풀려 있었고,
 
 
“아름다워..”
 
 
공녀의 눈은, 확실히 자신의 얼굴에 촛점을 잡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취한 듯한 그녀의 보랏빛 눈에 바들바들 떠는 자신의 얼굴이 비쳐보였다. 그 얼굴은 마치, 걸작을 보는 예술가와도, 자식을 보는 어미와도, 사랑하는 연인을 보는 남자와도 닮았지만 그와는 다르기도 했다.
공녀는 힘들게 그녀로부터 시선을 떼어내더니, 침대 밖으로 나가 사람 손이 들어갈 만한 크기의 주머니를 들고 왔다.
 
 
“이걸 보렴.”
 
 
공녀는 주머니 안의 내용물을, 여전히 누워있는 상태인 앨리스의 얼굴 옆에옆에 쏟아냈다. 차르르르르, 소리를 내며 쏟아진 그것들은 녹색 빛으로 빛났다.
 
 
“에메랄드..?”
 
“그래.”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말에 공녀가 밝게 웃으며 답했다.
 
 
“왕국 전역의 보석상과 수집가들에게 사오라고 한 것들이란다. 가장 아름다운 것들로.”
 
 
과연 그 말을 증명하듯, 그녀의 얼굴 옆에 수북이 쌓여 녹색으로 빛나는 보석들은 하나같이 알이 굵고 영롱했다. 저 정도면 도대체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 것인지, 아샤는 감을 잡을 수조차 없는 고가의 것들이었다.
 
 
“귀엽게 여기던 것들은 언젠가 죽는단다. 난 그게 너무나도 슬펐어.”
 
 
공녀의 말에 아샤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런데 공작 각하.. 아버지의 서재에서 독수리 박제를 봤거든. 그 이후론 박제로 만들면, 아름다운 상태로 영원히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슬프지 않게 됐어.”
 
 
아샤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많은 아이들을 박제로 만들었단다.”
 
 
확실히 목련관 곳곳에는 눈토끼 따위의, 예전에 공녀가 기르던 동물들의 박제가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서재를 청소하다 박제를 떨어트려 경을 칠 뻔한 적이 있어, 앨리스는 그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너도 박제로 만들려고 했어.”
 
 
놀람? 당황? 경악? 공포? 알 수 없는 감정들이 그녀의 마음을 휩쓸었다. 눈앞의 공녀는 사교계와 재계의 총아이며, 신분에서 알 수 있듯 왕국에서 다섯 손가락에 들어가는 실력자였다.
그녀가 원하면 원하는 데로 이루어진다. 마법 같은 문장이지만, 아샤에겐 뼛속깊이 전해지는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이런, 이런, 놀라지 말렴. 만들려고 했을 뿐이니까. 인간은 새보다 오래 사는데, 너무 빨리 만들어버리면 같이 있는 시간이 아깝잖니?”
 
 
공녀가 마치 넘어져서 눈을 글썽거리는 아이를 달래듯 아샤를 달랬다.
그래, 만들려고, 만들려고 했을 뿐이다. 만들지 않는다. 아샤는 숨가쁜 자신을 천천히 진정시켰다.
 
 
“그래서 대신에, 네 아름다운 눈, 눈을 만들어보기로 했어.”
 
“제.. 눈이요?”
 
 
의아해하는 아샤의 물음에, 공녀가 밝게 웃으며 양 손으로 아샤의 양 볼을 감쌌다.
 
 
“그래! 네 눈! 어두운 곳에서는 감람석처럼, 밝은 곳에서는 에메랄드처럼, 황혼이 내릴 때에는 스피넬처럼 빛나는 네 눈!”
 
 
공녀의 눈이 반짝였다.
 
 
“그런데.. 오만가지 빛을 내는 오팔도, 보석의 왕인 다이몬드도, 이국의 상인이 가져온 이름모를 보석들도 네 눈만큼 아름답지 않더구나.”
 
 
아샤의 눈이 살짝 돌아가서, 자기 얼굴 옆에 수북이 쌓인 에메랄드를 살폈다.
 
 
“아, 물론 그 에메랄드들도 말이지.”
 
 
지극한 칭찬에 아샤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박제로 만들지 않는다니 식은땀으로 젖었던 몸의 긴장도 그제야 풀렸다.
 
 
“감사합니다..”
 
 
아샤의 입에서 나온 것은, 말이라기보다는 하루 일을 다 끝낸 인부의 한숨과도 같은 것이었다.
 
 
“아, 아니야. 네 눈을 네게 보여줄 수 없으니 안타깝구나. 정말로 아름답단다.
게다가, 박제로 만들지 않으면 네 눈을 내가 가질 순 없으니, 이런 돌멩이들이라도 찾아봐야지 않겠니?”
 
 
아샤는 이제 마음속 깊이 안심했다. 영애는 보석을 찾는 것으로 만족한 듯 싶었다.
공녀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하얀 뺨을 상기시킨 상태로 그녀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아무리 값진 보석이라도 네 눈만큼 아름답진 않더구나.
그리고.. 네 눈, 두 개가 있으니, 나를 보기 위한 한쪽 눈은 남겨두고, 다른 눈은 나에게 내줘도 되지 않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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