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그렇게 친하지도 멀지도 않은 관계에 있습니다.
굉장히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라왔고
그런데에 비해 저는 너무 망나니인 딸이고
그렇게 스물 여섯살이 되었는데
엄마는 여전히 제 일기장을 훔쳐보네요...
저는 항상 수첩에 붙어있는 고무줄을 끼워놓는데
(그 고무줄로 수첩을 닫으며 마음을 정리하는 느낌인데)
평소와 다르게 고무줄도 풀어져 있고 수첩을 넣어 놓는 책들 사이의 종이도 흩뜨러져 있네요
방에서 혼자 술을 마시다가 갑자기 확 깹니다
저도 저만의 동굴이 필요하고 저만의 대나무숲이 필요한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지나치게 과잉보호를 받고 있는 느낌입니다
부모가 되기 전까지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모른다고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고
이럴 수록 더 도망가고 싶어지고 어떤 속마음도 얘기하고 싶지 않아진다는걸 모르는 걸까요
방이 좁아 숨길 곳이 마땅치도 않고
숨겨 놓을만한 곳이면 제가 편하게 꺼내 쓰지 못해
핸드폰에만 적어두다가 오랜만에 일기장을 꺼내니 이런 일이 생기네요..
사실 이 전에도 몇번이나 일기를 훔쳐본 결정적이 증거들이 있었고
그 일들로 정신적으로 많이 혼란스러웠지만
또 이렇게 정말 오랜만에 일기를 쓰려고 수첩을 꺼내다
이런 흔적들을 발견하니 그저 착잡할 뿐입니다
차라리 이 모든게 저의 추한 상상력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병이라도 있어서 이 모든게 나아질 수 있는 상황이면 좋겠습니다
일기를 갈기갈기 찢어서 버리고 싶지만 차마 그러지 못하는것 같이
나 자신도 다 찢어버리고 싶지만서도 그러지를 못하는게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