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드라마 미스터션샤인에서 이병헌이 가져다 주는 맥주를 마시면서
김갑수가 이건 얼마정도 하려나 하는 혼잣말 장면이 나온다.
작중에서 맥주는 여러모로 각별하다.
일단 상품으로서의 의미로만 봐도 맥주는 특별하다.
맥주라면 이제 막 미국에서 조선땅에 들어오던 시기였을 것이기 때문에
이병헌 아니었으면 김갑수는 맥주의 그 밍밍한(?) 맛을 알지도 못했을 것이며
알았더라도 구하기란 정말 쉽지 않았을 귀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설사 맥주가 너무나 마시고 싶어서
김갑수가 따로 작중 전직 추노꾼들에게 맥주를 구해달라고 의뢰를 했었어도
김갑수는 아마도 엄청난 돈을 지불 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김갑수가 이것을 추노꾼들이 아니라 이병현 같은 미군들한테 가져다 달라고 의뢰 했다면 더 싸게 구할수 있었을까?
아닐것이다.
맥주를 구하는 단계까지만 본다면 적지않은 돈과 시간과 신경을 쏟아야 하는 추노꾼에 비해
미들군은 큰 비용이 들지 않고 맥주를 구할수 있을 것임에도 말이다.
왜냐하면 추노꾼들은 심부름을 자신의 상품으로 파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어서
자신의 페이스가 그런 심부름에 응하는 것에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받아들일 준비가 다되어 있는 사람인 반면
미군은 심부름이나 장사로 돈을 벌로 온 것이 아니라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이유로 온 것이기에
자기네들 마시려고 가지고 온 맥주들을 남들에게 심부름하며 파는 것에는 의지도 준비도 전혀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거래 자체의 비용만큼이나 거래 대상자의 페이스나 맥락이 중요한데
입고 있는 외투에 붙어 있는 장식품이 맘에 든다고 그 장식품을 시세값으로 팔아라는 것은 무뢰한 것이고,
존윅에서 처럼 누군가 잘 타고 있는 아끼는 자동차를 맘에 든다고 시세값으로 흥정하려다가는 큰일 날 수가 있으며,
지나가는 차를 붙잡고 택시비를 줄테니 집까지 태워달라고 하다가는 경찰서 들어갈 수 있으며,
장만한 집에 이제 막 이사온 사람에게 그 집이 맘에 든다며 시세값으로 집값을 흥정하려는 것은 미친 짓인 것도 이 때문이다.
이것은 같은물건도 팔 준비나 계획이 없는 사람에게 물건의 가치는 팔려는 사람에게의 물건의 가치보다 훨씬 비싸다는 것도 모르는 자가
고작 거래를 위한 배달비용 부대비용 같은 푼돈을 아껴보자고 하는 작태일 것이다.
그런데 김갑수가 알고 싶은 맥주의 가치는 '상품'으로써의 의미가 아니라 '호의'로써의 의미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김갑수가 알고 싶은 것은 이 맥주를 구하는데 얼마정도나 드는지가 아니라
이병헌이라는 특정인물에게 이런 호의를 받으려면 얼마를 지불해야 하는 것인가 가 되겠다.
왜냐하면 맥락상 김갑수에게 중요한 가치는 맥주 그 자체가 아니라 이병현이라는 특정인물이 가져다 준 맥주였고,
작중 캐릭터로 보았을때 어차피 이병헌은 돈으로 움직일수 있는 사람이 아니며
이병헌 또한 그 맥주를 상품개념으로 김갑수에게 준 것이 아니라 호의개념으로 가져다 준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병헌이 베푼 호의는 두가지 점으로 좀더 비싸 다 할 수 있다.
첫째는 이병헌의 작중 캐릭터다.
작중 이병헌은 무뚝뚝하고 베타적이고 절제되어 있으며 자존심이 강하고 자존감 높은 캐릭터로 설정되어 있다.
그래서 특별히 맘이 통하거나 인연이 엮이거나 하지 않은 다음에야
아쉬운 마음에 누군가와 일부러 연을 맺으려 하지도 않을 것이며, 또한 일부러 친해지려고 다가가기도 쉽지 않은 인물이다.
이런 인물에게 인연도 아니고 호의를 받을수 있게 되는 것은
일반적인 사교적이고 수용적이고 인물에게서 받는 호의보다는 조금이라도 희소하고 특별하다 할 수 있다.
이병헌의 호의가 특별한 두번째 이유는 그 호의가 선제적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이병현이 김갑수에게 맥주를 가져다 준 것은 김갑수가 맥주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김갑수를 즐겁게 해주려는 능동적인 마음에서 그렇게 한 것이다.
돈을 받고 맥주라는 상품을 가져다 주는 사람이 자신과는 사회적, 사무적 관계이고
맥주 가져다 달라는 부탁에 기꺼이 호의를 베푸는 사람이 자신과 가깝게 교감하는 신뢰 관계라고 한다면
좋아할 것 같아서 말하지도 않았는데 맥주를 가져다 주는 선제적 호의를 베푸는 사람은
자신을 아끼고 자신에게 좀더 적극적으로 보답하고 싶고 자신과 더 가까워 지고 싶은 추종? 또는 following 관계라 할 수 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누구에게나 사무적 관계 보다는 신뢰적 관계가 더 특별하고 귀하며,
신뢰적 관계보다는 following관계가 더 특별하고 드물다 할 수 있다.
다시 돌아와, 김갑수의 혼잣말 질문인 '이건 얼마정도 하려나' 를 좀더 자세히 다시 풀어쓰면 그것은
'이병헌이라는 인물에게 선제적 호의를 받을만큼 진실된 신뢰와 추종받으려면 얼마를 지불해야 하는가?' 가 되겠다.
물론 지불은 돈의 형태는 아닐 것이다.
이병헌같은 인물은 물론이거니와 보통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 일것이다.
누군가에게 추종 까지는 아니더라도 진실되게 교감하며 신뢰를 형성하기 위해서
자신이 그 사람에게 지불해야 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자신의 시간과 신경, 그리고 자신의 페이스이다.
그 사람에게 관심을 두고, 그사람의 취향과, 그 사람이 좋아하거나 두려워 하는 것, 그 사람이 원하고 추구하는 것들을 파악한 후,
그에 맞게 자신의 시간과 신경을 쏟아서 자신의 페이스를 그 사람의 페이스에 배려해서 맞춰 주는 것이다.
그런것이 반복되고 누적되면서 진정한 신뢰나 충성은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작중 김갑수나 추노꾼은 이미 과거에 큰거 한방으로 이병헌에게 그렇게 했었다.
문제는 그게 그렇게 까지 할 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것이다.
자신의 시간과 신경을 소모하고 자신의 페이스를 포기하는 것은 자신에게는 큰 희생일텐데
타인과의 신뢰관계란 것이 그렇게 하면서 까지 추구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물론 신뢰관계에 있는 사람이 많을수록 삶은 충만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서로 편하게 지내며 기쁨과 슬픔도 함께하고 가끔은 맥주 부탁도 할수 있을 것이고 말이다.
그런데 인연이든 신뢰관계든 이렇게 가치를 염두해 두고 진행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그러니까 막연히 자신의 삶을 충만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어떤 사람과 인연과 신뢰를 맺으려고
그 사람에게 자신의 시간과 신경을 쏟아붇고 자신의 페이스를 포기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그것은 단연컨데 적자다.
신뢰관계인과의 교감을 통해 자신의 삶은 어느정도 충만해 질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확실히 보장된 것도 아닌 반면 그를 위한 지금 당장의 확실한 희생은 너무나 크다.
아마도 인연이든 신뢰관계든 이렇게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는 판단 하에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상황이나 상태가 맞아 떨어져서 자신에게 특별히 의미있는 인물과 엮이면서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것일 것이다.
이런 인물과 이런 상황이라면 그 사람과 교감하며 쏟는 시간과 신경은 아까운 비용이 아니라 즐거운 보상이 될 것이고,
그렇게 서로간에 이로움이 반복되고 누적되면서 신뢰는 자연스럽게 형성이 되는 것일 것이다.
그대는 나를 즐겁고 이롭게 하는 소중한 사람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