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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맹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겨울날
한 청년이 얼음장 같은 자취방에서 이불을 둘둘 만 채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다.
여느 날과 같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똥 싸는 얘기들이나 관망하던 청년은 여자친구 자랑, 섹스 얘기 같은 거 하면 끼어들 말 없어 손톱만 물어뜯으며 어서 빨리 내가 끼어들 수 있는 이야기 나오길 기다리는데, 다음 대화의 주제가 연봉, 학력 같은 것만 반복되니 허탈하게 키보드에서 손 뗀 채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있는지도 까먹고 살던 전화기가 갑자기 울려 벌떡 일어난다.
술 마시러 종로로 나오라던 친구 녀석의 말에 기대감에 들떠 달려가니 친구 새끼는 자기 여자친구랑 둘이 물고 빠는데 바쁘고, 도대체 난 왜 부른 걸까? 생각한다.
청년은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의 대화만 주고받은 후 눈치 보여 안주는 집어보지도 못하고 쏘주만 연신 들이킨 다음,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냐며 서둘러 모텔촌으로 사라지는 친구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마도 녀석은 그닥 이쁘지 않은 여자친구를 자랑할 친구가 청년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뭔가 살아 숨쉬고 따듯한, 대화가 가능한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녀석은 승리자라고 생각했다.
술기운이 확 오르는 것을 느끼며 터덜터덜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오늘 운행 끝났습니다.”
역무원 아저씨의 말에 청년의 얼굴에 나라 잃은 표정이 스친다.
집까지는 지하철로 21정거장, 가진 건 지하철을 한 번 탈 수 있는 돈이 전부였다.
아까 안주도 거의 먹지 못한, 아니 오늘 하루 종일 먹은 거라곤 쏘주 두 병과 땅콩 세 알, 한치 두 조각이 전부였기에 텅 비어버린 속의 쓰림이 밀려옴과 함께 청년은 갑자기 서글퍼졌다.
“아저씨...”
“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반사적으로, 그리고 사무적으로 대답한 역무원 앞에서 한참 동안 흔들거리며 말을 잇지 못하던 청년의 입에서 툭 터져 나온 한마디.
“저 아단데요.”
이 무슨 해괴한 소린가... 어쩌란 말인가?
서른이 훌쩍 넘어 보이는 청년이 던진 한마디에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우던 역무원은 또 다른 취객이 개찰구를 훌쩍 뛰어넘자 운행 끝났다고 소리 지르며 뒤쫓기 시작하고, 다시 돌아왔을 때 청년은 사라지고 없었다.
금일 지하철 운행이 모두 종료 되었다는 안내 방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오라는 곳도, 갈 곳도 없는 청년은 아직 온기 남은 지하철역 화장실 변기 위 끄트머리에 쭈그리고 앉아 몸을 앞뒤로 흔들면서 ‘난 춥지 않다... 난 춥지 않아...’라며 자기 최면 걸기 시작하고
100년 만의 한파로 보일러 틀어놓은 집 수도관까지 다 얼어터진 그날 아침.
싸늘히 식은 채 쭈그린 자세 그대로 바닥에 굴러 떨어진 청년은 입에서 흘러나온 차디찬 한 숨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호흡하지 않았다.
사람들을 헤치고 나온 역무원 아저씨는 싸늘히 식은 그 청년을 알아보고는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그 청년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 그의 마지막 말과 표정이 뇌리 속에서 계속 메아리쳤고 아저씨는 근무교대를 마치자마자 집장촌으로 달려가 굳게 닫힌 문들 두들긴다.
“내 영업시간 아닌 건 아는데, 한 번만 열어주시오! 이렇게 사정하오! 열어주시오!”
이름도 모르는 청년이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건넌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아저씨는 무어라도 대신하며 그의 명복을 빌고 싶었다. 그러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반라의 여인이 나타나자 아저씨는 북받치는 왠지 모를 감정에 오열하기 시작하는
뭐 그런 어느 겨울날
그리고 밝은 길을 따라 천국문 앞에 당도한 청년이 천사에게 조심스레
“저 다음 생엔 섹스할 수 있나요?”
라고 묻자 천사가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환생은 이단입니다.”라고 대답하고
“대신 그 문 들어오시기 전에 딸이라도 한 번 치시지요...”
하면 청년 멋쩍게 웃으며 바지내리는
그런 어느 천국의 해피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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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과거의 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