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봄. 신입생 때의 가슴 아픈 짝사랑을 멀리 떠나보내고, 나는 하루하루 술과 게임과 담배에 찌들어 살았다. 그때 그녀가 나에게로 다가왔다. 이육사 시인이 광야에서 노래한 백마타고 오는 초인. 그녀는 나를 구원하러 온 백마탄 초인 같았다. 아니, 그 당시엔 확실히 초인이 맞았다. 20년을 모태솔로로 살아온 나에게, 가난한 노래의 씨만 수없이 뿌린 나에게, 천고의 뒤에도 들을 수 없을 것같았던 '사랑한다'란 소리를 그녀는 해주었다. 술에 취한 그녀를 집에 데려다 주는 길에 슬며시 내 손을 잡던 그녀의 손도, 영화관에서 팝콘은 자기가 산다며 내 옷깃을 잡아채던 그녀의 손도, 평생 잡으며, 잡아주며 살고 싶었다. 정말 그랬다. 그랬기에 2년간의 군생활도 참아내고 그녀의 유학도 기다리고, 참아내며 살았으리라. 그렇게 나와 그녀는 4년 2개월 하고도 3일을 만났다. 길다면 길고 짧으면 짧은 연애기간 동안 나는 면벽수련을 하는 달마의 심정으로 연애했다. 섹스가 무섭고, 정말 결혼을 하게될 남자와 하고 싶다던 그 말을 4년 2개월 3일을 이해하고 살았다. 결국에 그 남자가 내가 되리라는 자신이 있었다. 그만큼 그녀를 좋아했고, 사랑했고, 그녀가 내 남은 평생의 반려자가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고한 모진 한 마디, '오빠가 공무원이 되면 생각해보겠다' 라는 한 마디에 내 연애도, 면벽수련도, 봄도, 첫사랑도 끝났다. 저 말마저도 이해하고 용서하고 싶을 만큼 그녀가 좋았다. 하지만 4년간의 연애를 무너뜨려버린 말을 참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내 자신이, 내 사랑이 불쌍해서 견딜 수 없었다. 연애를 스님처럼 한 남자는 지금껏 쭉 스님처럼 살고 있다. 첫사랑을 마지막 사랑으로 두고 싶을 만큼. 아, 오늘이 대설이란다. 정말 겨울이 온 모양인데 내 마음은 한참 전부터 겨울이었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