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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생이라서 행복합니다
게시물ID : gametalk_17408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오니쯔
추천 : 5
조회수 : 826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4/04/10 11:46:14
어린시절

동네 형집에 APPLE 8비트 컴퓨터(모델명을 모르겠어요)가 있어서

조이스틱으로 게임을 처음 접하고

다른 형집에 286XT, 재믹스가 있어서 놀러가서 순서 기다리면서 게임을 하고 그랬죠

그때가 7,8살적..

친구가 알라딘 보이를 사서..

친구집에 놀러가서 1,2시간 게임을 하고..

물론 당시 게임하는거보다는 뛰어노는게 더 좋아서 온 동네 국민학생들이 1~4,5학년까지 같이 뛰어 놀았었죠..

다망구니, 여의봉이니, 오징어집이니 동네마다 다른 명칭을 가진 놀이들을 주로하고, 게임은 짜투리시간에 조금하는 정도..

그러다 91년도 저희 집에도 컴퓨터가 생기게 됩니다.

국민학교 1학년시절

세진컴퓨터의 286AT였어요.. 당시 기준으로는 파격적인 69만원의 가격

그때부터 페르시아의 왕자, F1, 테니스 게임등 게임을 조금씩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시절은 피아노랑 만화가 재미있어서.. 게임보다는 텔레비젼의 만화를 더 열심히 보았더랬죠..

국민학교 3학년시절, 컴퓨터 학원을 다니게 됩니다.

당시 컴퓨터 학원의 커리큘럼은

타자연습 => GW 베이직 => 포트란 => C언어 이런 식이었지요.

베이직용 프로그래밍 책들도 많았던 시절이라

사운드 카드도 없는 컴퓨터의 비프음을 가지고 음악을 만들거나, 간단한 게임을 만드는 일들도 했었어요..

그리고 그때에는 하드볼이란걸 접하게 되어...마구를 쓰면서 키보드 하나로 두명이서 게임을 즐겼었지요..

94년도 486DX2를 아버지께서 사셨습니다.

사실 아버지가 쓰실 용도보다는...저나 누나들의 장난감...

옥소리 사운드 카드에 모뎀도 달려 있었더랬죠..

이 모뎀은..저희를 PC통신의 세계로 데려다 줬습니다..

하이텔, 케텔, 아이즈 등에서 활발하게 많은 자료를 다운받고 정보를 얻었었어요..

그리고 96년 누나가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노트북이라는게 집에 생겼습니다.

처음 접하는 펜티엄..

하지만...결론적으로는 버츄어파이터, 각종 에뮬게임을 하기 위한;;;;

96년도 이후 에뮬게임들이 본격적으로 구동되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패미컴 에뮬을 시작으로 8비트 게임들의 롬이 피씨통신 자료실에 올라왔었죠.

게임보이의 롬들도 올라와서, 일본어도 모르고 한자도 모르는데 2차슈퍼로봇대전 같은 게임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세이브파일 에디트도...

97년도..

펜티엄의 전성시대가 도래합니다. 물론 당시 타 브랜드의 586 cpu도 있었지만...바야흐로 펜티엄 MMX가 널리 보급되고

소켓형이 아닌 슬롯형의 펜티엄 2도 나왔었죠..

삼성 세턴이 나오기도 하여 버츄어 파이터 등이 널리 알려졌는데..철권이 나옵니다...

96년도까지는 킹오파의 시대였는데 본격적으로 3d 격투게임들이 나오기 시작한거죠..

지금은 심하게 아케이드 시장이 코인머신으로 가고 있지만..당시 별 희안한 격투게임이 다 나왔습니다.

희안하다는건 아이디어가 좋거나 아니면 아류작이거나...

게임잡지도 호황이던 시기고요...

하지만...이 게임잡지들이...

특히 PC PLAYER, 게임피아가... 번들게임 경쟁에 들어가면서...

안그래도 안팔리던 정품게임들이..번들신세 혹은 그냥 폭망하게 됩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스팀으로 지르는 것처럼 게임잡지를 사면 정품게임이 따라 오니... 많이들 지르고 게임시장은 망하고...

그리고 대망의 97년말..

스타크래프트가 등장합니다...

이전 워크래프트의 경우 1,2를 해봤던지라..크게 기대는 안했지만...

국내에서 푹발적인 인기를 끌게되고, 피씨방의 보급화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죠...

98년 레인보우식스의 등장으로 피씨방은 스타크래프트와 레인보우 식스로 유망한 창업 아이템이 됩니다...

당시 iTV에서는 스타크래프트와 레인보우식스의 경기를 중계(그냥 정규방송편성이라고 보심이)하고 게임 팁등을 알려주기도 했었죠..

그렇게 피씨방은 커가고 스타크래프트의 인기도 높아지는데..

고속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합니다.

99년, 2000년에 걸쳐 ADSL, 케이블 등으로 대표되는 고속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가정에 보급되기 시작합니다.

이로써 키보드 하나로 두명이서 하던 게임들은 컴퓨터 한대당 1인이 플레이하게 되었지요..

이 시기에 파이널 판타지7, 8이 나와서 큰 인기를 끌었던 사실은 잠시...(파팥8의 경우 타이틀곡을 배경으로 편집한 매드무비가 큰 인기를 끌어
39홈쇼핑, 현재 CJ 오쇼핑의 컴퓨터 판매시에 동영상으로 많이 쓰이기도 했었더랬죠)

그리고 대망의 2000년대..

게임환경이 정말 급격하게 바뀝니다.

플스2가 정식 발매되고, 플스방이 생겨 위닝일레븐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저는 플1용 3부터 10까지 즐기고..2008부터는 피파로..)

게임 방송국들이 개국하였으며(온게임넷, 엠비씨게임), 프로게이머라는 직업들도 생겼습니다.

디아블로 2의 인기로 온라인 RPG의 인기가 높아짐에 따라 아류작들, 혹은 MMORPG장르의 게임들이 크게 들어났죠..

한국 게임사에서 중요한 게임중 하나인 창세기전도 오랜 침묵을 깨고, 서풍의 광시곡, 창세기전 3등으로 나름 성공했었지만,, 결국
대부분의 제작사들이 온라인으로 넘어갑니다.

초기 캐쥬얼게임과 외국 게임 중심이던 온라인 게임시장은 점점 여러장르(라고 쓰고 돈되는 장르)로 성장하고 한때 세이클럽 맞고(피망 맞고)는
안하는 성인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할 정도로 국민게임이 되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차세대 게임기라고하던 플스3, 엑박360등이 발매하고 난 뒤 급격하게 높아진 비쥬얼, 피씨 성능도 고성능이 되면서 차세대기 못지않은
영상을 보여주는 게임들이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지금사용중인 데스크탑은 지금 보시는 화면의 도트보다도 엄청큰 도트를 가진 그래픽의 게임을 즐기던 시절의 워크스테이션보다 더 좋은
성능일지도 모르겠네요.

하루하루 눈은 높아지지만 80년대생으로서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어서 행복하네요

못적은 글들이 많지만 너무 길어지면 지루하실까바 줄입니다.



어떻게보면 지금 30대가 대한민국 게임 유저로써 역사의 산 증인이 아닐까하고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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