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得黑猫兒
게시물ID : humorbest_174407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89.1㎒
추천 : 36
조회수 : 2244회
댓글수 : 4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23/10/19 20:00:42
원본글 작성시간 : 2023/10/19 18:3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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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냥줍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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得黑貓兒[득흑묘아]   李奎報[이규보]

검은 고양이 새끼를 얻다.

 

細細毛淺靑[세세모천청] : 가늘고 가는 짙은 옥색의 털과 
團團眼深綠[단단안심록] : 동글 동글한 눈은 짙게 푸르네. 
形堪比虎兒[형감비호아] : 모양은 뛰어나 범 새끼를 견주고 
聲已懾家鹿[성이섭가록] : 소리는 이미 집의 사슴이 겁내네. 
承以紅絲纓[승이홍사영] : 붉은 실로 노끈 이어서 거느리고
餌之黃雀肉[이지황작육] : 미끼로 쓰는건 노란 참새 고기네.
奮爪初騰蹂[분조초등유] : 힘써 할퀴며 시종 빠르게 오르고 
搖尾漸馴服[요미점순복] : 꼬리 흔들며 점차로 복종을하네. 
我昔恃家貧[아석시가빈] : 나 옛날엔 가나한 집에 의지하며 
中年不汝畜[중년불여휵] : 중년까지 너를 양육하지 못했지. 
衆鼠恣橫行[중서자횡행] : 쥐 무리가 제멋대로 횡행하더니
利吻工穴屋[이문공혈옥] : 날카로운 입이 집에 구멍을 뚫었네. 
齩齧箱中衣[교설상중의] : 상자 가운데 옷가지 씹어 깨물고 
離離作短幅[이리작단폭] : 가르고 떼어놔 폭을 짧게 만드네. 
白日鬭几案[백일투궤안] : 대낮에 책상과 안석에서 싸우고
使我硯池覆[사아연지복] : 나를 시켜 벼룻 물 엎지르게했네.
我甚疾其狂[아심병기광] : 나는 심하게 그 미친짓이 괴로워 
欲具張湯獄[욕구장탕옥] : 장탕의 옥사를 갖추려 했었다네. 
捷走不可捉[첩주불가착] : 빨리 달아나니 가히 잡지 못하고
遶壁空追逐[요벽공추축] : 에워싼 벽 공연히 쫓을 뿐이었네. 
自汝在吾家[자여재오가] : 자연히 너는 내 집에 있고부터는
鼠輩已收縮[서배이수축] : 쥐들 무리는 이미 움츠러들었네. 
豈唯垣墉完[기유원용완] : 어찌 다만 담장과 벽만 온전할까 
亦保升斗蓄[역보승두축] : 또한 한되와 한말도 모아 지켰네.
勸爾勿素餐[권이물소찬] : 네게 권하노니 공밥만 먹지 말고 
努力殲此族[노력섬차족] : 힘껏 노력하여 이 무리 섬멸하라. 


 

위의 시는 고려 시대의 뛰어난 대문호 이규보가 지은 고율시(古律詩)이다. 이규보의 자는 춘경(春卿)이고,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 지헌(止軒)이라고 하였는데, 후에는 시와 거문고, 술을 즐긴다고 하여 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이라고 자호하기도 하였다. 그는 일찍부터 문장으로 명성을 떨쳐 죽림회(竹林會)의 모임에도 참여할 정도로 인정을 받고 과거에 장원급제도 하였지만, 벼슬길은 순탄치 못하였다. 32세의 나이에 뒤늦게 얻은 전주목(全州牧) 사록(司祿)의 자리마저 다른 이의 모함으로 파직되고 다시 경주로 내려와 불우하게 지내던 시기에 위의 시를 지었다.

  일단 고려 시대에도 고양이를 키웠던가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삼국 시대부터 고양이를 길러왔다. 농경사회에서 곡식을 좀먹는 가장 큰 적인 쥐를 없애기 위해서라는 실용적인 효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 도입부에는 쥐잡이를 위해 얻어온 검은 고양이의 모습이 생동감 있게 표현되어 있다. 검푸르고 보송보송한 털을 지닌 초록 눈의 아기고양이가 붉은 실을 목에 두른 채 뛰어다니는 앙증맞은 모습이 눈앞에 완연하게 그려진다.
  처음에는 발톱을 세우며 뛰어오르다가 길들여지면서 꼬리를 살랑거리며 따른다는 표현 등 고양이를 길들이는 과정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는 실제 저자가 고양이를 키우며 느낀 점을 시로 적은 것이다. 반갑게도 어린 고양이는 활발하게 다니며 벌써 쥐떼를 내몰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어서 중반부에서 저자는 자신의 집을 구멍 내고 살림살이를 축내며 멋대로 날뛰는 쥐떼에 대한 증오를 매우 노골적으로 강렬하게 묘사하고 있다. 쥐는 보통 현인을 모함하는 소인배들을 비유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시에서도 실제 쥐의 해악을 자세히 서술하면서 여기에 자신을 모함하고 방해하는 무리의 모습을 은연중에 투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규보의 집안을 해치는 쥐떼를 몰아낼 구세주로 얻어온 이 작고 귀여운 고양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불행하게도 이규보의 희망대로 되지는 않은 듯하다. 왜냐하면, 그의 문집에는 다음과 같은 시도 실려 있기 때문이다.

     「고양이를 꾸짖다[責猫]」
  감춰 둔 내 고기 훔쳐 배를 채우고            盜吾藏肉飽於膓
  이불 속에 잘도 들어와 고르릉대는구나       好入人衾自塞聲
  쥐떼가 날뛰는 게 누구의 책임이냐           鼠輩猖狂誰任責
  밤낮을 가리지 않고 버젓이 횡행하네         勿論晝夜漸公行

  쥐떼는 여전히 창궐하지만, 고양이는 더 이상 힘들게 쥐를 잡지 않는다. 주인의 고기로 배불리 먹는 보다 편한 방법을 찾았으며 따뜻한 이불 속에서 편히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쥐를 잡아야 할 고양이가 자신의 책무를 방기하고 자신의 안일만 추구하는 모습에는 또 당시의 무책임하고 탐욕스러운 벼슬아치들의 그림이 겹쳐지기도 한다. 그런 고양이를 보며 내쫓기는커녕 이를 두고 시를 지었으니 이규보의 고양이는 아마 끝내 편히 살 수 있었을 듯하다.

 
글쓴이 : 김성애(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

출처 https://www.instiz.net/pt/7452609
https://www.itkc.or.kr/bbs/boardView.do?id=75&bIdx=16633&page=2&menuId=127&bc=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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