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수다> '루저의 난'은 핑계일 뿐이다! [기자의 눈] 부메랑이 된 '외모 지상주의' 기사입력 2009-11-12 오전 9:37:56
한국방송(KBS) 2TV 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가 또다시 논란에 휩싸였다. 한 여대생이 지난 9일 방송된 가을특집 '미녀, 여대생을 만나다'편에 나와 "키는 경쟁력이다. 키 작은 남자는 '루저'라고 생각한다", "내 키가 170센티미터다보니 남자 키는 최소 180센티미터가 돼야 한다"라고 말해 시청자들의 공분을 샀다.
누리꾼 사이에서는 '루저의 난'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반발이 엄청나다. <미녀들의 수다> 프로그램 홈페이지 게시판은 물론 이 여대생의 '미니홈피'도 폐쇄된 상태고 각종 패러디물이 난무한다. 온라인 청원 사이트에서는 '이 여대생을 학교에서 제적시켜야 한다'는 서명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여성 상품화의 두 얼굴…'미녀'와 '된장녀' 사이
두 말 할 것도 없다. 그 여학생의 "키 작은 남자는 패자" 발언은 상식 이하다. 그러나 '남성' 누리꾼의 '공격'은 지나치다. 그의 발언은 대다수 여성을 대표한 발언도 아니고 그저 한 여학생 개인의 발언일 뿐이다. 그 개인을 두고 마녀사냥식 인신공격으로 몰아가는 것이 과연 적절할까?
사실 여학생의 소속과 이름을 모두 공개하면서 이 발언을 편집하지 않고 오히려 영어로 'loser'라는 자막까지 넣어 부각한 제작진의 책임이 더 크다. ('대본'을 놓고 진행 중인 진실게임은 논외로 하자.) 한발 더 나아가면 이들이 만든 프로그램의 구조, 맥락에 근본적인 책임이 있다. 벌써 3년차를 맞는 이 프로그램에 '외국인의 시선에서 본 한국'이라는 기획 취지가 살아 있나?
제목에 나타난 것처럼 이 프로그램의 중심은 '여성'이 아닌 '미녀'다. 그것도 남성의 판타지를 자극할 수 있는 '외국인'이다. 이 프로그램의 초점은 이들의 이국적인 외모와 '섹스 어필'을 부각시키는데 있다. 카메라는 이들의 스타일에 집중한다. 이들과 함께 등장하는 남성 패널은 이들을 소비하는 남성의 대변자가 된다.
논란이 된 9일 편은 이런 남성 중심의 시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다 사고가 났다. 이번에는 아예 외국 여성에 더해서 그들의 '거울 이미지'인 한국 여성까지 등장했다. 더군다나 '명품백'을 좋아하고 키 큰 남자를 밝히는 생각 없는 '된장녀'다.
이런 구조 속에서 '사고'가 난 것은 필연적인 결과다. '키 작은 남자보다 폭력남이 좋다'는 '막장' 질문으로 채워진 앙케이트를 보라. 결과적으로 이러한 프로그램 구도는 이른바 '루저의 난'에서 보이듯 '여성 비하'를 최고도로 이끌어냈다. <미수다> 제작진이야말로 여성에게 사과해야 한다.
과연 '루저의 난'인가?
따지고 보면 '루저' 발언에 분개하는 남성들이야 말로 '얼굴 예쁘면 최고'라는 외모 지상주의를 유감없이 표출해온 당사자들이다. 이 발언은 이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확대 재생산된 '외모 지상주의'가 철없는 한 여성을 통해 남성에게 되돌아 간 것에 불과하다.
남성 누리꾼들이 표출하는 분노의 실체는 무엇인가? 철없는 여학생의 말이 그렇게 분노할만한 일인지 동의하기 어렵다. 스스로 패러디를 만들어 올리고 있는 것처럼 한국 사회에는 무수한 '180센티미터' 이하의 '성공남', '매력남'들이 넘치지 않은가?
혹시 자신의 일상을 옥죄는 '정글의 법칙'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 만만한 상대를 이참에 찾은 것은 아닌가. 혹은 이미 온라인 공간에서 거침없이 내뱉어온 '여성 비하'와 여성에 대한 적개심을 '루저 발언'을 기회삼아 또다시 전면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아닌가?
근거없는 분노와 공격, 마녀사냥만을 반복하는 한 우리 모두는 외모 지상주의 사회의 영원한 '루저'다. 이번 기회에 외모를 가지고 여성을 비하, 비난해온 남성 '키보드 워리어'들이 자신의 언행을 성찰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일까.
/채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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