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일은 내가 일병 휴가 때 겪었던 일이다. 난 가끔 이 일을 생각하면 몸에 오한이 들곤 한다. 애써 기억을 지우려 노력해봐도 펜으로 내 머릿 속에 새겨놓은 듯 그 기억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 쉽사리 지워질리가 없지
내가 기억하기도 싫은 일을 어렵사리 머릿 속에서 끄집어내어 이렇게 풀어놓는 이유는 다만 누군가에게 말함으로써 마음 속 부담감을 덜었으면 해서 말이야 내가 이 기억을 그렇게 꺼려하는 이유는 공포때문만이 아니야 바로 죄책감이지 2년이라는 짧다면 짧은 시간이 흘러 그 때 그억은 여전히 또렷하지만 시간 때문일까? 공포는 점점 옅어지지만 죄책감은 점점 짙어지는 느낌이야 어떤 느낌인줄 알겠어?
때는 2009년 내가 막 일병을 달고 휴가를 나올 때 쯤이니까. 7-8월쯤 될것이다. 딱 2년전 요맘때군..
나는 작은 해방감과 부푼 기대를 갖고 휴가를 나왔어 집에서 반기는 사람도 없고 만나 놀 친구도 별로 없었지만 그럼 어때? 휴가야... 휴가라고.. 나는 휴가를 나오자마자 얼마 안 되는 친구들 중 한명인 동혁이 한테 전화를 걸었어. 그런데 이 녀석 반응이 시원찮더라고 그 반응에 솔찍히 실망했지만 아쉬운건 나잖아- 그냥 불렀지 뭐
휴가 나오면 제일 먼저 술 한잔 해야하지 않겠어? 그것도 여자와 함께라면 금상첨화겠지만 나와 친구는 여자에 대해선 워낙 쑥맥이라서 말이야 친구와 둘이서 술을 마시는데 솔찍히 궁상맞지만 난 그래도 좋았어 그런데 그날 따라 친구 놈이 좀 이상한거야 아니 많이 이상한거야 이 자식이 왜 이러지?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동문서답하는 건 기본이고 혼자서 뭐라 뭐라 중얼중얼 거리는데 친구 놈이 정말 이상한거야 눈에 촛점도 맞지않는 것 같고..
친구 놈 상태가 저래 안 좋으니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들어가야 되겠어. 친구놈 한테 작별인사를 하고 들어가려 하는데 친구놈이 자기 집에 가자는거야. 솔찍히 귀찮기도 해서 안 가려고 했는데 이 녀석 표정이 뭔가 다급하고 애절한게 무슨 사고를 치지 않을까 심상치가 않은거야
몇 안되는 친구 놈으 버릴 수는 없으니 그놈 따라 집에 갔는데 뭐랄까. 문을 여는 순간 습한 열기가 얼굴을 때리면서 뭔가 달달한데 맡기 싫은 그런 냄새가 나는거야 근데 나는 군인이잖아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 이놈 집은 고급 오피스텔이야 원룸인데 엄마랑 단둘이 사는 모양이야 그런데 오늘따라 친구놈 엄마가 안 보이는거야. 나는 그려려니 하고 시간도 늦고 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어.
한참 잠을 자다가 목이 너무 타서 살짝 일어났는데 어느새 비가 주적주적 내리고 있더라고 나는 식탁 위 주전자 물을 통채로 벌컥벌컥 마시는데 갑자기 번개가 번쩍 하는데 커텐이 쳐져있는 창문에 사람 그림자가 보이는거야 깜짝 놀래서 눈을 비비고 다시 봤는데 아무것도 안 보이더라고...
아.. 잘못 봤나보다.. 하고 다시 잠이 들었고 나는 별탈없이 놀다가 부대에 복귀하게 되었어.
복귀하고 옷을 갈아입는데 TV에서 마침 뉴스를 하더라고 웬 여자가 커텐 뒤에서 목 매달고 자살한 모양이야
그런데 뉴스에서 나오는 장면이 너무나 눈에 익은거야 그러다가 퍼뜩 떠올랐지 아! 친구놈! 동혁이 오피스텔!
난 그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몸에 소름이 돋는걸 느꼈어.
그 여자는 동혁이 어머니였어.
악취가 너무 심하게 난다는 이웃의 신고로 오늘에서야 발견이 되었는데
시체가 이미 부식이 진행되어 많이 썩어 있었데...
-- 뒷 이야기
그 이야기가 있고 난 뒤에 나는 무섭기도 하고 그때 그놈의 표정만 생각해도 몸에 소름이 돋아서 연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랜시간이 흘러 이제 그 공포가 서서히 옅어질 때 쯤 연락을 해보았는데 연락이 되질 않았습니다. 여러 사람들에게 수소문도 해보고 이것 저것 안 써본 방법이 없었지만 친구 놈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친구 놈이 없어졌는데 아무도 관심 갖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요 친구와 저는 소위 말하는 소외계층이니까요 사회에 적응하지도 못하고 연락 하는 사람도 없는 저희니까요. 사람 한명 실종됐는데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그런 저희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