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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어치킨의 사랑
게시물ID : humordata_174876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박준준준
추천 : 17
조회수 : 3053회
댓글수 : 28개
등록시간 : 2018/04/24 16: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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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님 말씀을 안 듣고 공부를 게을리 한 덕에, 결국 늦은 나이에 경상도 어느 시골마을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매일 매일 왜 부모님 말씀을 듣지 않았나 후회로 점철된 날들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난관은 거의 외국어에 가까운 사투리였다. 
젊은 사람들은 좀 나았지만 나이 든 분들, 특히 시골 할아버지들의 말은 절반도 알아들을 수 없었기에 영업 나갈 때마다 녹음기를 들고 다녀야 했다. 
그리고 회사로 돌아와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 직장동료들에게 물어봐야했다. 

두 번째 난관은 보일러도 없는 거지움막급 자취방. 

세 번째 난관이 바로 ‘먹을 것’이었다. 
시골이다보니 배달음식이 제한적이었기에 변두리에 위치한 회사 점심은 항상 유일하게 배달되는 순댓국이었다. (이걸 7년 동안 매일 먹고 지금은 순댓국 끊음) 

게다가 젊은 놈이 혼자 자취를 하다 보니 뭘 제대로 챙겨먹을리 만무하고, 처음엔 밥도 지어먹고 반찬도 사먹곤 하다가 에라 시불 모르겠다 하고 언젠가부터 오직 컵라면과 치킨으로만 연명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혼자 일 년에 치킨을 200마리씩 처먹는 미친 치킨인생이 시작되었다. 
그곳에선 퇴근 후 치킨을 먹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시골엔 그래도 꽤 여러 종류의 치킨집이 난립해 있었는데 대부분 양만 많았지 질은 형편없었다. 
 
장사가 잘 안되니 오래 묵은 기름에 오래된 고기를 튀겨 만들어낸 콘돔맛 치킨이나 비에 젖은 군화맛 치킨을 흔하게 접할 수 있었다. 게다가 온도와 시간개념이 잘 없어 돌같이 딱딱하거나 물컹하게 핏물이 줄줄 흐르거나 둘 중 하나였다.
 
거기에 니들이 언제 배때기에 기름칠 해보겠냐?는 주인장의 세심한 배려인지 닭을 한 입 베어 물면 입 안에서 만두 육즙 터지듯 기름이 흘러 넘치던 그런 치킨인생이었다.  

  
사건의 시작은 어느 날 회사 여직원의 호들갑에서 시작되었다.
 
“조 아래 새로 생긴 치킨집 무봤나? 완전 써울 케이에푸씨서 묵던 그 맛이라!”
 
한 달 반의 서울생활이 그녀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외지생활이었음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의 말을 전부 믿지는 않았지만, 지옥 같은 시골치킨에 물린 내게 매우 신선한 뉴스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렇게 찾아간 곳에는 처음 보는 간판이 하나 서 있었다. 

‘부어치킨’

당시 7,50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도 놀라웠지만, 냉골 같은 자취방에서 살얼음 낀 맥주와 함께 치킨조각을 베어 무는 순간 모든 것이 정지했다. 
저 멀리 눈이 마주친 거울 속 나는 그제껏 보지 못한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리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맛이었지만 그곳에선, 그 상황에선 아니었다.
그날 밤 치킨다운 치킨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신께 진심으로 감사드렸다. 
 

이후로 “퇴근길에 찾아갈거니 간장치킨 하나만 포장해주세요”라고 전화하는 것이 삶의 낙이 되었고, 나중에는 전화하자마자 ‘퇴’하면 아줌마가‘네’하고 알아서 포장해둘 만큼 단골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따라 닭에서 비린내가 좀 나는 게 분명 시간이 좀 지난 닭이 틀림없었다.
순간 땅이 꺼지는 듯한 절망감을 느끼며 맥주잔을 든 채 한참을 망연자실하게 앉아있었다. 
이 시골땅 마지막 신뢰와 믿음이 단숨에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어찌나 상실감이 컸는지 무려 삼일 동안 치킨을 끊고 우울증에 빠졌다. 

하지만 사흘 째 되던 날, 금단증상을 이기지 못하고 난 다시 부어치킨 간판 아래 서 있었다. 
그렇게 닭에 간장을 바르고 있던 30대 중후반의 아줌마에게 아무생각 없이 던진 말.
 
“근데 저번에 먹은 게 좀 오래됐나봐요? 비린내가 좀 나던데”
 
순간 아줌마의 동작이 우뚝 정지하더니 날 바라보며 슬픈 얼굴로 말한다.
 
“정말 미안해요... 내가 안 그래도 그 날 마음에 걸렸는데...”
 
“아뇨 괜찮아요...”
 
너무 솔직한 아줌마의 사과에 갑자기 내가 더 죄송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아니 그래도 우리가게 최고 단골인데 내가 그 날 따라 이걸 쓸까 말까 하다가 어휴 내가 미쳤지...”
 
“정말 괜찮아요. 그냥 앞으로 맛있게 해주세요”
 
“아니에요. 내가 진짜 한 마리 맛있게 해서 내일 사무실로 배달해드릴께 공짜로”
 
“아니 아니, 진짜 괜찮아요.”
 
“아냐 내가 진짜로 해줄게. 내일 꼭” 
 
거듭 사양하며 자취방에서 쓸쓸히 닭을 뜯은 후 마침 다음날부터 일이 바빠 며칠 동안 집에 들어가질 못한 채 회사 라꾸라꾸 침대에서 새우잠을 자야했다. 
그렇게 남들 다 쉬는 일요일 오후에서야 겨우 퇴근하게 된 나는 당연하게 치킨집을 찾았고, 날 보는 순간 아줌마가 내 눈을 슥 피한다. 
 
“아휴.. 미안해요 내가 간다 간다 하다가 바빠서 못 갔네...”
 
“아니에요 괜찮다니까요. 진짜 안 오셔도 돼요”
 
“내가 음식장사 하면서 크게 배운바가 있어서 그래. 내일 꼭 한 마리 들고 갈게”
 
“하하 괜찮은데...”
 

아줌마의 사과를 거듭 듣다보니 내가 더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아줌마는 다음날도 오지 않았고,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뭔가 민망한 마음에 일주일 정도 그 치킨집을 찾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잊었어도, 몸은 잊지 못한다고 했던가. 어느 날 나도 모르게 퇴근길에 치킨집 전화번호를 눌렀는데 뭔가 부시럭부시럭 거리는 소리만 나고 대답이 없었다.
 
“여보세요?”
 
“여...여보흐으응세요?”
 
“저... 퇴근하는데 간장치킨 한 마리만 포장해주세요”
 
“예흐으응? 간장? 아! 그 간장총각이구나?”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바빠서 그런가보다 하며 시간에 맞춰 치킨집에 들어서자 아줌마가 선반에 기댄 채 벌건 얼굴로 날 맞는다.
 
 
“아이구, 간장총각 왜 이리 오랜만에 왔어응”
 
“아, 술 드셨나보다.”
 
“아니 아니 안 먹었어. 근데 저쪽 손님들이 억지로 줘서 두 컵으흐응”
 
안쪽 테이블을 보니 할아버지들이 자리한 테이블 위로 빈 소주병이 여러 병 놓여있었다. 
여자라곤 할마시들뿐인 이 시골에서 아주 젊은 축에 속하는데다 이쁘장하게 생긴 아줌마다 보니 자주 수작 걸리는 모양이었다. 
 
마침 ‘띠 띠 띠’거리며 치킨이 다 튀겨졌다는 알람이 울리자 아줌마가 연신 불안스런 손질로 치킨들을 건져내더니, 이내 우르르 닭을 쏟아버린다.
 
“아이, 내가 우원래흥 술 안 먹는데”
 
“뭐 안 좋은 일 있으셨어요?”
 
잠시 손을 멈추더니 뭔가를 생각하는 눈빛으로 창밖을 쳐다보다 “뭐 그냥...”하며  말을 흐린다.
 
“정말 미안해 내가 꼭 갖다 줄라 그랬는데흥... 이게 쉽지가 않으네”
 
닭조각들에 간장을 바르며 어느새 말을 놓더니 다시 그 지겨운 사과반복이 시작된다.
 
‘아니에요’를 반복하며 빨리 집에 가고만 싶은 생각이 들 즈음.
 
 


“총각, 우리 담에 데이트 함 하자”
 
“네?”
 
“아니 오해는 하지 말고 내가 진짜 동생 같아서 그래”
 
 
날 쳐다보는 아줌마의 눈은 흔들리고 있었고, 그렇게 눈을 마주친 채 짧은 시간 망상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래 이 아줌마 정도면 충분히 젊고 이쁘다. 그리고 이 외딴 섬 같은 시골동네서 유일하게 내게 살갑게 정주는 사람 아닌가? 정이라는게 영어로 하면 러브고, 러브면 사랑 아닌가? 아줌마가 유부녀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데이트만 하는 사이라면 괜찮을 것 같다. 
그 허용 한계는 어디일까? 손까지 잡는 것?, 아니면 팔짱까지로 봐야할까?
첫 데이트에는 그렇게 맛있다던 숭어회를 먹으러가자. 게다가 취중진담이라고 했어, 이미 옛날부터 내가 마음에 있었다는 얘기지 난 젠틀한 도시출신남자니까 틀림없어’
 
하며 오만가지 상상을 부풀리고 있던 순간 갑자기 벨소리와 함께 문이 벌컥 열리며 마도로스처럼 수염이 북실북실한 사내가 들어선다.

“여편네 얼굴이 왜 그려? 술 처먹은겨?” 

순간 기우뚱한 자세로 위태롭게 치킨을 조물락대던 아주머니가 정자세로 꼿꼿이 서더니 붓이 보이지 않을 속도로 치킨에 간장양념을 바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종이 박스를 척척 접어 닭을 담더니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손님 간장치킨 나왔습니다. 8,500원입니다.” 라고 또박또박 말한다.
 
“저기....”

조심스레 입을 열자 아줌마가 고개를 미세하게 흔들며 빨리 꺼져버리라는 듯한 눈길을 쏘아대기 시작한다. 
‘단무지 안주셨는데...’라는 말을 입속으로만 중얼거리며 문을 열고 나와 부어치킨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왠지 매일 보던 간판이 낯설게 느껴졌다. 
 

자취방에서 부시럭부시럭 쓸쓸하게 치킨을 뜯고 있으려니, 오늘따라 유난히 방이 더 추운 것 같아 전기장판 스위치를 올리고는 냉장고에서 소주를 한 병 꺼낸다.
 
 
차가운 술잔 위로 잠깐 치킨집 아줌마의 얼굴이 비치더니 이내 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간다.
 

뜨거운 것이 울컥 올라오는 것은 

아마도 술기운이리라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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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과거와 오늘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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