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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게시물ID : lovestory_3518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하바나
추천 : 0
조회수 : 58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1/06/26 22:45:17
괴물

*앞서 줄거리는 예전 MBC '테마게임'에서 가져왔음을 밝힙니다.

이야기는 내가 약 일년정도 전에 겪은 일이다.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답답하고 지루한 직장 일을 마치고 퇴근길에 있는 작은 칵테일 바에 들렀었다. 
건물의 2층을 차지하고 있는 작은 가계였는데, 조용하고 아늑했으며 주인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찾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아 내가 즐겨 찾는 곳이었다.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가자 몇몇의 사람들이 제각기 구석을 차지하고 칵테일 향기와 녹아 흐르는 듯한 재즈 음악에 취해, 간혹 짙은 색스폰 소리에 손을 몸을 흔들며 그렇게 앉아 있었다. 나는 바로 걸어가 높은 의자로 자리를 잡고 바텐더와 눈을 맞추었다. 단골이었던 나와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을 정도로 친해진 사람이었다.

"언제나처럼, 마가리타로 하실 거죠."

"그렇게 주세요."

이 사람은 내가 마실 것까지 이미 꿰뚫고 있다. 그는 높고 투명한 유리잔을 하나 꺼내어 들고는 잔의 주둥이를 레몬 조각으로 한차례 닦아 내었다. 약간의 소금을 뿌리자 작은 입자들은 젖은 부분위로 내려앉았다. 나는 그 것을 취한 듯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는 엷은 미소를 띄며 쉐이커를 꺼내어 들었다. 몇 가지 병을 들어 쉐이커 안으로 따라 넣고는 잠시 흔들었다. 마침내 완성된 작품은 맑은 우윳빛을 띄며 유리잔으로 흘러들었다.

"주문하신 마가리타 나왔습니다."

바텐더는 유리잔을 내 앞에 밀어내었다. 나는 잔의 아랫부분을 살며시 잡고 한 모금 마셔 보았다.

"언제나처럼, 맛이 좋군요."

"항상 같은 맛이죠."

"요즘 장사는 잘 되시나요?"

"간신히 유지할 정도지요."

그는 몇 가지 안주가 담겨 있는 쟁반을 내 앞에 내려놓았다. 한 곡의 재즈가 끝나고, 또 한 곡의 재즈가 전주와 함께 시작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곡이라 조금씩 술을 마시며 눈을 감고, 색스폰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하루의 피로가 풀리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갑자기 '쾅'하는 소리와 함께 나의 조용한 사색이 깨져 버렸다. 나는 천천히 눈을 뜨며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바텐더도 닦고 있던 유리잔을 들고 그 쪽을 바라보았다. 소리는 복도로 나있는 문에서 들려왔는데, 격하게 열린 문이 흔들리고 있었다. 한 명의 사내가 서 있었는데, 헝클어진 머리와 낡은 옷과 함께 격한 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그는 불안한 듯 주위를 둘러보고 문을 통해 밖을 한번 내다보고는, 살며시 문을 닫았다. 잠시 자리에 서서 숨을 고르더니 나와 눈이 마주쳤다. 불안한 눈이다. 무언가에 쫓기고 있는 듯 하다.
그는 이 쪽으로 뚜벅뚜벅 소리를 내며 걸어오기 시작했다. 취객일까, 무언가에 홀린 듯한 눈이 나를 두렵게 만든다. 귀찮은 일에 말려드는 것은 질색이다. 잠시 자리를 옮길까 하다 바텐더에게 무언가 말이라도 해 보라는 눈치를 주어 보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 저... 죄송합니다. 여기가... 술집인가요?"

그는 당황한 듯, 여전히 격한 숨을 내쉬며 물었다. 술집에서 술집이라고 묻다니 황당한 사람이었다. 분위기를 보면 모르나? 내 앞의 술잔을 보라고.

"여기는 칵테일 전문바랍니다."

"아, 칵테일이요. 저도 칵테일을 좋아합니다. 한잔 주십시오."

그는 내 옆의 의자에 앉았는데, 내심 불쾌했다. 단정치 못한 옷차림에 빗지도 않은 머리, 면도를 하지 않아 난 짧고 짙은 수염이 그의 모든 인상을 망치고 있었다.

"무엇으로... 드릴까요?"

"카, 칵테일로 주십시오..아니, 이분과 같은 것으로 주십시오."

"마가리타 말씀이시군요. 알겠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고, 불안한 눈빛으로 문을 가끔 흘겨보았다. 그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저기 선생님, 문이 열리면 저에게 꼭 좀 말씀해 주십시오."

"문이요?"

"아 네, 저 문 말입니다."

"누구 일행이 있습니까?"

"그런 건 아닙니다만..."

나는 이 사내에게 약간의 호기심이 생겼다. 초췌한 모습이긴 했지만, 불안한 목소리이긴 했지만, 그 말에 쫓기는 토끼와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글세, 손님이 들어와도 말입니까?"

"그게, 저..."

사내는 잠시 머뭇거리며 말을 끊었다. 나에게 말을 해야 될까 말아야 될까 하는 고민을 하는 것 같았다.

"선생님, 제 말을 농담으로 듣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사실 저는 괴물에게 쫓기고 있어요."

"네? 괴물? 무슨...?"

"괴물 말입니다. 괴물. 온 몸은 굵고 검은 털이 나 있고, 붉고 빛나는 눈에, 그 이빨은 마치 상어의 그것과 같지요. 또 그 입에는 붉은 피가 흐르는 고깃덩어리가 끼어 있고, 그 격한 숨소리에는 가래 끓는 소리가 난답니다."

나는 이 사람이 어떤 폭력배를 그렇게 말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사채를 쓰셨나 봅니다?"

"아닙니다. 정말, 정말 괴물이라는 말이에요."

사내는 또 한 번 문을 불안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바텐더가 마가리타 한 잔을 사내 앞으로 밀어내었다.

"손님, 주문하신 마가리타 나왔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사내는 유리잔을 쥐고는 한 모금을 크게 마셔버렸다. 그리고 입술로 흐른 술을 소매로 스윽 닦아 버리고는 두 손으로 잔을 잡을 채로 가만히 있었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괴물이라구요?"

나는 호기심이 동해서 사내에게 다그치듯 물었다. 사내는 나를 보며 불안한 눈을 빛냈다.

"선생님, 정말입니다. 정말 괴물 말이지요. 그 놈은 이 동네를 밤만 되면 돌아다니는데, 제가 전에 그 녀석에게 죽을 뻔했을 때 말입니다. 제가 그 녀석을 쇠몽둥이로 크게 후려치고는 도망갔었지요. 그 때부터 그 놈은 저만 보면 기를 쓰고 쫓아온답니다."

"커다란... 떠돌이 개인가 보군요."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것은 정말 괴물입니다. 덩치는 큰 사람만 하구요, 생김은... 말로 표현 할 수가 없군요."

"그렇다면 경찰에 신고를 하셔야죠."

"물론 경찰서에도 가 보았습니다만... 몇 번 나를 따라 나서주긴 했지만, 녀석이 도망가는 바람에 그 다음부터는 저를 믿어주지도 않습니다."

나는 이 사내가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사내는 무언가 환각을 보는 것일까. 더 이상 말을 걸어 보았자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이라 생각되어, 나는 다시 조금씩 술잔을 기울이고 음악에 귀를 기울이려 노력해 보았다. 옆의 사내의 큰 숨소리 때문에 음악이 잘 들리지 않았다. 조금씩 짜증이 나고, 나의 소중한 시간을 이 사내가 망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자리를 옮기려 잔을 들고 일어나려 했다.
문 쪽에서 '끼이익'하는 소리와 함께 두 명의 사람이 걸어 들어왔다. 사내는 흠칫 놀라며 문 쪽을 쳐다보았다. 사내는 불안한 듯, 바텐더에게 말을 물었다.

"여, 여기 화장실이 어디 있습니까?"

"저 쪽 모퉁이를 돌아가시면 됩니다."

사내는 벌떡 일어나 그 쪽으로 뛰어갔다. 나는 잠시 그를 멍하게 바라보다가 바텐더에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상한 사람이구만, 괴물이 자기를 쫓고 있다는군요."

"저도 조금씩 들었는데, 좀 이상한 얘기로군요."

한참의 시간이 흘렀는데도 사내는 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바텐더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나에게 말했다.

"무슨 일인지 한번 가 봐야겠군요."

바텐더는 화장실 쪽으로 걸어갔다. 나도 약간 궁금해지던 차라 바텐더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잠시 후, 바텐더는 자리로 돌아와 말했다.

"그 사람, 없어져 버렸군요. 화장실 창문으로 달아난 것 같아요. 그것 참...."

"그래요?"

이 작은 사건은 나의 기분을 확실히 이상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 날은 더 이상 술을 마시고 싶지 않았다. 자리에 일어나 나는 돈을 지불하고 이만 가겠다고 말했다.

"두 잔 값이군요?"

"아, 저 사람 몫까지 받아두세요."

"그러실 필요는 없는데."

"괜찮습니다."

바텐더는 나를 향해 웃으며 인사를 했고 나 역시 작은 눈인사로 가계를 빠져 나왔다. 거리로 나와 건물을 한번 올려다보았는데 사내는 이층에서 뛰어내렸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정말 급했던 모양이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몇 일이 지나도록 나는 그 사내 생각에 빠져 있었다. 도대체 뭐에 쫓기고 있었던 걸까. 정말 괴물일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지만 결론은 언제나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군 하는 쪽으로 끝나 버렸다.

한동안의 시간이 흐른 후, 나는 그것에 대해서는 까마득히 잊고 있을 때 즈음이었다. 직장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저 쪽에서 뛰어 오고 있던 사내를 보게 되었다.
나는 약간의 반가운 마음이 들어 그 사내에게 손짓을 해 보였는데 그는 역시나 무엇에 쫓기듯 나를 보지 못하고 지나쳐 뛰어가 버렸다. 약간의 무안한 생각이 들어 그를 조금씩 쫓아가 보았다.
사내는 골목골목을 따라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나도 약간은 흥분된 마음으로 사내를 뒤쫓아 걸어가고 있었다. 가끔 그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지만 그때마다 나는 다른 곳을 보며 딴청을 피우곤 했다. 사내는 더욱 빠른 걸음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나는 이 사내가 달아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이 이상의 추격전은 전혀 상식적이지 못하는 생각과 함께 크게 말했다.

"이보세요!"

사내는 걸음을 멈추었다. 어깨를 들썩이며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조금 빠른 걸음으로 사내에게 다가갔다.

"전에 술집에서 만난 적이 있죠? 괴물에 쫓기고 있다던..."

"아, 그 선생님이시군요. 누군가 쫓아 오길래 놀랬습니다. 지금 괴물이 이 근방을 돌아다니고 있어요. 선생님도 어서 자리를 피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사내는 다시 달아나려고 했다. 나는 그의 팔을 잡아채고 놓아주지 않았다.

"아니에요, 내가 있으면 녀석도 다가오지 못할 겁니다. 잠시 얘기하지 않겠어요?"

"그, 그게..."

"둘이 있는 편이 안전할겁니다."

"...그러지요."

그는 몇 일 새에 많이 야윈 것 같아 보였다. 내가 식사는 제대로 하느냐고 물었더니 말을 하지 않아 근처의 식당으로 그를 데려갔다. 식사를 시켜 그와 함께 먹게 되었는데, 그는 몇끼를 굶은 듯 허겁지겁 먹어 치우는 바람에, 나는 일인분을 하나 더 시켜주었다.

"요즘도 괴물에게 쫓기고 계신 모양입니다.:

"그 괴물은 너무 집요합니다."

"생활은 바로 하십니까? 돈은 벌고 계세요?"

"그 놈에게 쫓기고 나서, 제 생활은 엉망이 되어버렸습니다."

"가족은요?"

"늙은 어머니가 계시는데, 몸이 안 좋으시죠. 제가 불효자입니다."

"앞으로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아직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사내가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갑을 펴 보고 몇 장의 지폐를 사내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명함 한 장을 사내에게 건내며 말했다.

"큰 힘은 못되겠지만, 필요하다면 연락주세요."

"아, 정말 감사합니다. 그저 한번 마주친 사람에게 이렇게 친절히 대해 주시다니요."

그와 나는 식당에서 나와 잠시 서 있었다. 내가 담배를 하나 내 밀자 그는 양손으로 그것을 받아 쥐고는 내가 붙여주는 불에 불을 붙였다. 몇 번을 소리나게 담배를 빨던 사내는 길의 한 쪽을 보고는 나에게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놈입니다. 가래 끓는 소리, 거친 숨소리, 놈이라구요. 선생님 피하세요. 저는 먼저..."

"아니, 무슨 소리가 들린다고."

"이 소리가 들리지 않으세요? 맹수가 사냥감을 노리는 목소리입니다. 선생님과 함께 있으면 피해가 갈 것 같군요. 제가 가겠습니다."

"아니, 잠깐..."

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사내는 반대쪽으로 달려가 버렸다. 나는 사내의 뒷모습을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그리고 또 한동안의 시간이 흘렀다. 두 번째의 만남은 더욱 깊은 인상을 주었기 때문에 나는 그 사내에 대한 생각이 자주 떠올랐다. 가끔 그 쪽 골목을 찾아 가 보았지만 더 이상 그를 만날 수는 없었다.


오늘 나에게 전화가 한 통 왔다. OO씨를 아느냐고 묻는 전화였지만, 나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전혀 모르겠다고 대답을 했지만, 그 쪽에서는 가능한 지인이 필요하다고 하며 자리에 참석해 달라는 말을 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그 사람의 장례식이라는 것이었다.


전화로 알려 준 어느 병원의 영안실을 찾아가게 되었다. 차가운 영안실은 죽은 영혼이 떠도는 곳이다. 섬뜩한 기분이 나의 뒷덜미를 움켜쥔다. 내가 들어간 작은 방에는 검은 관 위로 검은 줄이 두 가닥 쳐진 흑백 사진이 놓여있었다. 그 얼굴은 내가 아는 얼굴이었다. 괴물에게 쫓긴다던 사내. 짧은 만남이었지만 깊은 인상을 남긴 이 사내가 죽은 모양이다. 약간은 슬픈 마음이, 약간은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주변을 둘러보자 많지 않은 사람들이 각자 떨어져 말 없이 앉아 있었다.

그의 어머니인 듯한 늙은 노파는, 심한 가래 끓는 소리와 함께 연신 기침을 해 대고 있었다. 주름진 노파의 눈가에는 이미 말라 버렸는지 더 이상의 눈물은 흘러나오지 않았다.

짙은 회색의 옷을 입은 중년의 한 사내는, 반쯤 벗겨진 기름진 이마와 충혈 된 붉은 눈이 사내의 사진을 보며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는 가끔 화 난 목소리로 노파를 향해 '빌린 돈은 갚아야 될 것 아니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검은 양복을 입은 두 명의 건장한 사내는, 이미 유행이 지나 버린 낡은 썬그라스와 짧은 머리로 서로 마주 앉아 화투를 치고 있었다. 그 둘의 걷어올린 팔뚝에는 짙고 짧은 검은 털이 수북하게 나 있었다.

글세, 사내는 정말 괴물에게 쫓기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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